경전 아닌 역사 문헌으로 읽는 신약성서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마틴 데일 예일대 교수는 성서는 하느님의 영감이 추동한 문서지만, 긴 세월 동안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쓴 인간의 기록물이라며 올바른 해석은 하나밖에 없다는 생각을 경계하라고 조언한다. 사진은 2000년 전 성경 두루마리. 자료 사진

- 신약읽기:역사와 문헌 / 마틴 데일 지음, 권루시안 옮김 / 문학동네

거대한 종교의 권위 벗어내고
역사적 실체로서 ‘예수’ 탐문

마태오복음선 스승으로 기록
요한복음선 ‘하느님과 동등’

성서는 거룩한 ‘섭리와 성령’
인간의 다양한 경험 담겨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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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일대의 저명한 신약학자 마틴 데일의 ‘신약 읽기: 역사와 문헌’은 종교의 권위를 걷어내고 역사적 실체로서 ‘예수’는 누구인가를 탐문한 책이다. 그는 책 서두에 독자들에게 이런 방향에서 함께 읽어볼 것을 권한다. “이 책은 신약을 경전이나 권위적이고 성스러운 글이 아니라 역사 문서로 접근한다. 따라서 신약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고 이제까지 신약에 대해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읽기를 독자에게 권한다.” 신약을 경전이 아닌 ‘나중에 그리스도교가 된 운동에서 만들어진 고대 문서’로 접근함으로써 예수에서 비롯된 그리스도교를 통해, 거기서 파생된 지금 서구 문명의 자리를 찾아보자는 것이다.

저자는 신약에 포함된 27권의 책이 지금과 같은 형태로 진행된 과정, 즉 ‘정전(正典)의 역사’를 먼저 정리한다.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다양한 인물들이, 다양한 목적으로 ‘기록’했을 뿐인 문서들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경전이 된 이유를 밝히기 위해서다. 마태오복음·마르코복음·루가복음·요한복음이 신약의 첫머리를 장식하지만, 이 책들보다 먼저 쓰여졌고 성도(聖徒)라 불린 사람들에게 가장 널리 읽힌 책들은 사도 바울로의 편지들이다. 저자는 바울로의 편지들이 “제자 한 사람이 바울로의 이름으로 편지를 위조하면서, 역시 바울로의 이름으로 위조된 다른 편지를 견본으로 삼고 복제됨으로써 유명해졌고 적어도 어떤 집단에서는 그 자체로 ‘경전’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초기 두루마리 형태로 각지를 돌던 문서들이 정전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것은 ‘코덱스의 발달’이 한 요인이었다. “낱장의 가장자리 부분을 풀로 붙이거나, 꿰매거나, 아니면 낱장을 접어 가운데를 함께 꿰매 앞뒤로 뒤적이며 읽을 수 있도록 만든” 코덱스는 읽기의 혁명을 가져왔고, 읽는 이들을 신앙으로 이끌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어떤 글들은 정전에서 탈락했다. ‘거룩한 영감’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쓰인 시기와 예수와의 근접성, 전반적 활용도와 지리, 교리와 신학’ 등이 원인이었다. 저자는 오늘날 우리가 읽는 성서가 ‘정통 그리스도교를 정의하는 역사적 논쟁에서 승자가 된 책들의 목록’이라고 강조한다.

신약을 경전이 아닌 역사 문헌으로 읽는다고 할 때, 보통의 독자들이 가장 궁금해할 지점은 역시 ‘예수의 역사적 실제성 혹은 실체’일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교를 믿는 사람들은 복음서가 그 여실한 증거라고 이야기하지만, 저자가 보기에 신약의 복음서들은 ‘서사를 능숙하게 주물러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명확히 한 문서들이다. 마르코복음은 ‘고난받는 구세주’, 마태오복음은 ‘스승이자 교회의 설립자’ 예수를 뚜렷하게 보여주도록 편집됐다. 그런가 하면 요한복음은 ‘예수와 하느님을 동등하게 놓는 높은 그리스도론’을 주장한다.

복음서들이 내놓는 ‘신학적 예수’와 달리 ‘역사적 예수’는 그리스도교에서 ‘신성(神聖)할 수 없는 존재’이기에 언급 자체를 꺼린다. 이 대목에서 저자는 성서가 말하는 “예수의 재판 자체가 없었을 가능성도 매우 높다”고 주장한다. 예수는 면류관을 쓰고 채찍에 맞고, 끝내 십자가에 매달렸는데, 이는 당시 ‘로마인이 흔히 쓰던 고문과 처형 방법’이었다. “골치 아픈 유대인 시골뜨기를 죽이는 데는 재판이 필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예언자·유대인의 왕·하느님의 아들·주님’ 같은 표현들은 숭배를 위한 것이며 ‘예수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처벌하기 위해 진짜로 사용한 죄목’이라는 주장을 빌려 예수의 역사성만큼은 인정한다.

저자는 다수의 편지를 통해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세운 바울로의 사상을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그중 흥미로운 지점은, 짧은 언급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학문적 관심사인 ‘고대 세계의 성(性)과 가족, 초기 교회에서 여성의 역할과 지위’를 언급한 대목이다. 독신이었던 바울로는 고대 세계의 흔한 생각처럼 결혼을 ‘정욕이라는 감정을 미리 배제하는 방편’으로 생각했다. 한편 바울로는 남성과 여성을 동등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여성에게 교회의 핵심적인 역할뿐 아니라 지도자 역할까지 맡겼다. 사도와 예언자로도 인정했다. 저자는 이를 ‘친(親)집안적 바울로’라고 명명한다.

마틴 데일은 성서 해석에 있어 ‘올바른 해석이 하나밖에 없다’는 생각을 경계할 것을 주문한다. 신약, 아니 성서가 ‘하느님의 영감’이 추동한 문서임에도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쓴, 인간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후기 그리스도교’에서 ‘보편적 영향력을 지니는 종교’로 발전한 그리스도교는 신앙적으로 보면 ‘거룩한 섭리와 성령의 작용’으로, 인간적 측면에서는 ‘인간의 다양한 믿음과 경험’이 배태한 ‘얽히고설킨 역사’가 만들어낸 것임을 강조한다. 거룩한 섭리와 성령의 작용을 선택할 것인지, 얽히고설킨 역사를 선택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읽는 이들의 자유에 속한다. 752쪽, 2만5000원.

장동석 출판평론가·‘뉴 필로소퍼’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