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김정은 ‘국빈’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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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숙 논설위원

하노이에서 열릴 미·북 2차 정상회담을 위해 베트남을 방문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방문 형식’은 또 다른 관심사다. ‘국빈 방문’이 성사될 경우 1958년과 1964년 김일성 주석 이후 55년 만의 국빈 방문이 된다. 그러나 조부가 받았던 환영을 재현하려면 해결해야 할 숙제가 있다. 김정남 살해 사건에 연루된 베트남 여성 도안 티 흐엉(30) 문제다. 흐엉은 2017년 2월 13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인도네시아 여성 시티 아이샤(27)와 김정남을 맹독성 신경작용제 VX로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김정남 살해는 북한 요원의 조직적 살해 음모에 따른 사건이라는 게 말레이 당국의 결론이다. 그런데 살해에 관여한 북한 요원들은 1명도 단죄되지 않았다. 사건을 모의한 4명은 사건 직후 도주했고, 은신처에서 체포된 화학 전문가 리정철은 증거불충분으로 추방됐다. 주말레이시아 북한대사관에 남아 있던 3명은 북한 당국이 주북 말레이 대사관 직원과 가족 9명을 억류한 채 맞교환을 요구하자 말레이 정부가 백기를 들고 출국시켰다. 살해 주범이 사라진 상태에서, 단순 가담자들에 대한 재판은 2017년 여름 시작됐다. 그러나 말레이정부가 북한 요원을 풀어준 순간 이 재판은 정당성을 상실했다. 흐엉과 아이샤가 살해 음모를 사전에 인지한 흔적은 없다. 사례금이 100달러였다는 것을 보면 몰래카메라 촬영인 줄 알았다는 피해자들의 주장이 사실에 근접한다.

북한이 김 위원장 방문을 앞두고 베트남에 김정남 살해 사건에 베트남 여성이 연루된 문제에 대해 비공식 사과를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베트남 외교부는 부인했지만, 사실이라면 북한 당국이 김정남 살해 사건에 관여했음을 인정한 셈이 된다. 사과한 일이 없더라도 자국민 연루는 엄연한 사실이다. 흐엉과 아이샤 문제를 덮고 갈 수는 없는 일이다. 가난하고 배경도 없는 이들은 누가 봐도 김정남 살해 사건의 희생양이다.

베트남은 민족적 자존심이 강한 나라다. 한때 총부리를 겨눈 미국과 한국에도 사과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리 관대한 민족이라 해도 자국민이 영문도 모르고 살해사건에 연루돼 사형 위기에 처했는데, 그걸 지시한 장본인을 웃으면서 국빈으로 맞을 수는 없는 일이다. 이 문제는 북한과 베트남 양국에 글로벌 스탠더드의 또 다른 시험대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