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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김효정의 에로틱 시네마 게재 일자 : 2019년 02월 19일(火)
엄마부터 아들·며느리까지 ‘외도’… 결혼·가부장제에 대한 조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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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난 가족

지난 2003년은 한국영화사에 있어 실로 놀라운 해였다.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 김지운 감독의 ‘장화, 홍련’ 등 현재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들의 위상을 만들어준 초기작이 모두 그해에 나오며 이들의 화려한 미래를 계시했다. 이 작품들은 학술지와 영화전문서적에서 2000년대 한국영화의 행보를 완전히 재설정한 지표로 언급됐다. 하지만 이 ‘계보’에서 빠져 있는 또 한 편의 중요한 작품이 있다. 바로 같은 해 개봉한 임상수 감독의 ‘바람난 가족’(사진)이다. 이 영화는 ‘외도’라는 통속적인 소재로 가족제도에 대한 고발과 비판을 담아낸 문제적 수작이다.

변호사인 남편 영작(황정민)과 전직 무용수인 아내 호정(문소리), 그리고 그들이 입양한 아들 수인(장준영)과 영작의 아버지 창근(김인문), 어머니 병한(윤여정)으로 이뤄진 그리 단란하지 않은 5인 가족 이야기다. 알코올 의존증이었던 창근은 간암 말기 판정을 받고 죽어가지만 영작은 퇴근 후 아버지의 병원이 아닌 애인의 집으로 직행한다. 그의 애인은 영작의 몸 곳곳에서 실험적인 방법으로 쾌락을 찾아내는 비범한 재주를 가진 여자다. 남편의 외도를 짐작하고 있는 호정은 가물에 콩 나듯 갖는 남편과의 섹스에서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심지어 그는 남편과의 섹스가 끝난 후에도 자위를 하며 어떻게든 마무리(?)를 해보려고 안간힘을 쓰기도 한다. 호정은 자신의 성적 불능을 틈만 나면 그를 엿보는 고등학생(봉태규)으로부터 치유받고자 한다. 곧 호정은 엿보기만 하는 그를 노골적으로 유혹하기에 이른다. 한편 병한은 초등학교 동창 영감과 한창 물오른 로맨스를 즐기고 있는 중이다. 남편의 병원이 아닌 호텔방에서 병한은 살맛을 느낀다. 결국 병석에 있는 창근을 제외하곤 모든 가족 구성원이 결혼 외 관계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15년 만에 오르가슴을 느꼈다고 폭로하며 가족 모두를 아연실색하게 했던 병한을 보여주는 장면은 코믹하지만 진정한 쾌락이 가정 밖에서만 얻어질 수 있다는 이 영화의 논점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들의 욕구는 가족이 아닌, 즉 제도권 바깥의 상대일 때 해소되며 삶에 대한 개인적인 만족과 정체성까지도 가족이 아닌 관계에서만 실현된다.

임 감독은 바람난 가족 구성원들을 통해 제도권 안에서의 결혼이 얼마나 피상적이고 거추장스러운지에 대한 일침을 보여준다. 이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부부관계를 보여줌으로써 단선적으로만 비쳐지지 않는다. 호정과 수인은 입양으로 맺어진 가족관계지만 혈연을 기반으로 한 모자관계보다 더 살갑고, 서로에 대한 두터운 신뢰를 가지고 있는 이상적인 관계로 보인다. 이들은 사실상 제도권의 가치를 수호하는 관습적 가족관계의 편협함을 드러내고 극복하는 완벽한 가족모델이기도 하다.

한편 영작은 애인과 여행을 다녀오는 길에 만취 상태로 오토바이를 몰던 지루(성지루)와 사고가 난다. 그는 사건을 대충 수습하고는 아버지의 병원에 들르지만 머지않아 아버지는 죽음을 맞는다. 바람난 가족의 비극은 아버지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영작과의 사고로 회사에서 해고당한 지루는 이에 앙심을 품고 영작의 아들을 납치해 건물에서 던져 죽게 한다.

▲  김효정 영화평론가
이 영화가 가족제도를 비판하는 지점은 크게 두 군데에서 드러난다. 첫째는 애정이 부재한, 제도뿐인 결혼이고 둘째는 가부장 신화에 대한 조소다. 이 영화 속 가장들은 모두 위선적이며 치졸하다. 이들의 도덕적 불능에 대한 뒷감당을 하는 것은 언제나 여성이다. 예컨대 아이를 잃은 영작은 자신의 잘못으로 인한 죄책감에 호정에게 애꿎은 싸움을 걸고 호정의 손가락을 부러뜨린다. 반면 호정은 틈만 나면 산에 오르며 죽은 아이에게 용서를 구한다. 또한 지루의 만행에 대해서 용서를 구하는 것도 지루의 아내다. 아이를 둘러업은 지루의 아내는 고개가 땅에 닿을 때까지 머리를 숙이며 영작에게 사죄한다. 영화의 말미에 성불능의 호정이 고등학생과 섹스를 하는 중 절정에 오르며 비명을 지르는 장면은 가부장 중심의 실패한 가족제도에서 해방된 여성의 포효를 빗대는 임상수식 이데올로기적 도발이기도 하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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