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3·1 정신의 정파적 악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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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종 사회부 부장

최근 이화여대가 펴낸 ‘이화 출신 독립운동가’를 봤다. 호가 심숙인 리애라(1894∼1919)는 일경(日警)에게 품에 있던 갓난아기를 빼앗겨 땅에 내던져지는 일을 당했다. 만주 간도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그는 국내 지사에게 비밀문서를 전달하러 잠입했다가 헌병에게 붙잡혀 끝내 자신도 목숨을 잃었다. 25세 청춘이었다.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인 조신성(1867∼1952)은 여러 차례 투옥당했고 광복의 기쁨을 누렸지만 그도 잠시, 부산 피란 생활 중 돌봐주는 이 없던 노년은 눈을 뜨고 볼 수 없었다. ‘모시 치마 밑의 광목 고쟁이가 오줌에 절어 쥐어짜게 되었다’는 표현이 이를 함축한다. 개항, 신문명의 흡수를 실기(失機)한 후 일제에 병탄 당해 겪은 고난, 수많은 독립투사가 가산을 팔고 초개처럼 목숨을 던진 데 대한 숙연함을 감출 수 없다.

역사엔 가정(假定)이 없다고 하지만 식민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을 순 없었을까. 지난 2009년 서울시청 건립공사 도중에 발견된 조선 시대 유적인 군기시(軍器寺)는 이를 묵묵히 말해주는 듯싶다. 군기시는 개인 무기부터 갑옷, 깃발, 군악기 등 다양한 병기와 군수물자를 연구하고 제작·관리했던 곳이다. 최근 들렀더니 발견된 유구, 유물 중에 지금도 날이 예리하게 선 날카로운 화살촉 뭉치와 함께 화약 무기 개발에 대한 설명에 자장(磁場)처럼 눈길이 쏠렸다. 조선 3대 태종(1400∼1418) 말기에 약 7000근(4000㎏)이었던 화약 생산량은 임진왜란(1592∼1598) 직전에는 2만7000근(1만6000㎏)에 달했다고 한다. 중화기인 총통도 10만 자루 이상을 생산했다. 최근 원형 그대로 발견돼 화제가 됐던 비격진천뢰, 총통과 가공할 화약 무기로 무장한 정예부대가 제대로 가동됐더라면, 국토를 7년간이나 철저히 유린당했던 임진왜란의 전세는 초기에 크게 바뀌지 않았을까 자문했다. 분파, 갈등, 고립을 자초한 정교하지 못한 국정운영 시스템이 남긴 상처의 여운은 짙고도 깊다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됐다.

정부가 며칠 남지 않은 3·1운동 100주년과 관련해 26일 국무회의를 이례적으로 백범(白凡) 김구 기념관에서 열었다. 100년을 맞아 정부는 물론, 당·청까지 가세해 3·1절 띄우기에 총력을 거는 모양새다. 3·1운동을 3·1혁명으로 바꾸자는, 그릇된 정명(正名) 작업도 공론화했다. 범부처가 28일에는 100주년 전야제, 1일에는 만세 행진과 함께 광화문에서 중앙기념식을 연다. 임시정부 수립기념일인 4월 11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 검토 중이란 소식도 들린다. 3·1운동을 정권의 정통성 확립과 정책 추동력 확보 전략의 하나로 삼는 것 아니냐, 민주당 판 대한민국 정통성 바로 세우기란 해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3·1운동은 ‘선조들이 벌인 촛불 혁명’이란 납득하기 힘든 주장마저 등장했다. 기념행사는 독립에 대한 의지, 헌신을 기리고 다지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100주년을 정권 안위(安危)와 재창출의 기화(奇貨)로만 본다면, 결박당한 자유 의지에 대한 자발적이고도 치열한 역동인 3·1운동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독립국으로서 국방, 안보, 외교, 경제, 사회 전반의 현주소를 겸허히 되돌아보고 무환(無患)의 시스템이 정착되도록 검증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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