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北의 공허한 제스처에 속아 제재 풀어줘선 안 된다”

미국 하원의 엘리엇 엥겔 외교위원장은 25일 미국진보센터 토론회 기조연설을 통해 “북한의 공허한 양보와 무의미한 제스처에 넘어가 제재를 해제하면 안 된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하노이 회담 직전에 나온 엥겔 위원장의 입장은 전세계 전문가·당국자들의 우려를 대변하는 것이다. 여소야대로 바뀐 미 하원이 본격적 업무를 시작하고 있는 데다, 외교위원장은 정부 정책을 좌우할 정도의 영향력도 갖고 있다. 이 밖에 많은 의회 인사들과 전문가, 언론들도 같은 입장이다. 이를 의식한 듯 백악관은 26일 북핵 불용 입장을 재확인하며 “김 위원장이 비핵화 약속을 이행하면 북한 경제개발을 위해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미국 의회가 제동을 걸면 미·북 정상회담의 합의라고 해도 실천이 불가능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미·북 2차 정상회담이 27일 만찬을 시작으로 막이 오른다. 실무 차원에선 중요한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 측의 핵 신고·검증·폐기 확약과 로드맵 요구에 대해 북한은 제재 완화를 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중요한 합의는 정상 담판으로 넘겨지게 됐다. 제재 허물기에 집중하는 김 위원장이 풍계리·동창리·영변 폐쇄에 상응해 유엔 제재 완화와 금강산 관광 재개 등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도 26일 워싱턴 세미나에서 “북한이 영변을 영구 폐기한다면 부분적 제재 완화를 할 만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북한이 영변 폐쇄 등을 제시한다 해도 그것을 실질적 비핵화로 볼 수 없다. 모든 핵 물질·무기·시설 신고 및 검증, 폐기가 전제되지 않으면 영변의 고철 더미와 제재 완화를 맞바꾸는 꼴이 된다. 이 순간에도 영변 아닌 강선 등에서 고농축 우라늄(HEU)이 만들어지고 있다. 부분적 비핵화와 제재 완화를 맞바꾸는 것은 최악이다. 북한은 핵보유국으로 사실상 인정받고 더 많은 핵무기를 만들 수 있으며, 유엔 제재는 붕괴하기 때문이다. 1987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과의 회담이 지지부진하자 회담장을 박차고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도 김 위원장에게 체제 유지와 핵무기 중 택일하도록 단호히 요구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