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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주철환의 음악동네 게재 일자 : 2019년 03월 21일(木)
“지금 내 모습은 진짜가 아니야”… 자신과 이별하는 스무살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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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와 아이들 ‘난 알아요’

오늘(3월 21일)은 세계 인종차별철폐의 날이고 내일은 세계 물의 날이다. 음악동네에도 기념일이 많다. 오늘은 가왕 조용필의 생일이다. 유튜브 채널 ‘어게인 가요톱10’에서는 오전 9시부터 무려 12시간 동안 그의 노래만 내보낸다. 기네스북에 오를 만한 일이다.

노래에도 생일이 있다. 이번 주 토요일은 서태지와 아이들(사진)이 ‘난 알아요’를 처음 발표한 날(1992년 3월 23일)이다. 1996년 대학생 1000명에게 ‘20세기 한국 대중음악사에 기록될 젊은이의 노래’를 추천해 달랬더니 대학생들은 이 노래를 으뜸으로 꼽았다. 같은 질문을 PD 100명에게도 했는데 그들은 ‘아침이슬’을 1위로 뽑았다. 공통소재는 밤과 이별이다. ‘아침이슬’은 ‘긴 밤 지새우고’로 시작해서 ‘나 이제 가노라’로 끝나는데 ‘난 알아요’는 ‘이 밤이 흐르고 흐르면’으로 시작해서 ‘오 그대여 가지 마세요’를 메아리처럼 반복한다. 밤이라는 시간을 경계로 떠나려는 자와 안주하려는 자 사이의 긴장이 잘 드러나 있다.

▲  주철환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노래채집가
‘난 알아요’와 반대되는 제목의 노래도 있었다. ‘나는 몰라요/정말 몰라요/밤이 되면 별이 왜 운지’(옥희 ‘나는 몰라요’ 중). 이문세도 ‘난 아직 모르잖아요’에서 두 가지를 ‘모른다’고 했다. ‘세월이 흘러가면 어디로 가는지’와 ‘그대가 떠나가면 어디로 가는지’다. 그렇다면 서태지가 단호하게 ‘안다’고 한 그것은 무얼까. ‘누군가가 나를 떠나 버려야 한다는/그 사실을/그 이유를’ 안다고 했다. ‘나에겐 오직 그대만이 전부’였고 ‘너의 많은 숨결이 내 몸속에 젖어 있는’ 걸 인정하면서도 이별을 다짐하는 이유는 뭘까. ‘나에게 이런 슬픔 안겨주는 그대’의 정체를 규명하는 일이 우선이다. 나는 서태지 자신일 거라 짐작한다. 자기애에 빠진 자신을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지목하고 자신과 결별함으로써 구속에서 해방될 수 있음을 간파한 것이다. 사실 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이별이 아니라 그 이후를 단단하게 준비하지 못한 부끄러움이다. 지금 결행하지 않으면 원초적 욕망 속에 평생 갇혀 살지도 모른다는 절박감은 곧바로 ‘환상 속의 그대’와 고스란히 연결된다. ‘사람들은 그대의 머리 위로 뛰어다니고/그대는 방 한구석에 앉아 쉽게 인생을 얘기하려 한다’고 흔들리는 자신에게 묻는다. ‘단지 그것뿐인가/그대가 바라는 그것은/아무도 그대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결정적으로 ‘지금 자신의 모습은 진짜가 아니라고’ 질책한다. 그리고 스무 살의 젊은이는 다짐한다. ‘그대는 새로워야 한다/아름다운 모습으로 바꾸고 새롭게 도전하자’(‘환상 속의 그대’ 중).

생일은 언제 태어나서 지금까지 얼마나 살았는지 확인하는 날이 아니다. 그 이상의 날이다. 왜 태어났느냐가 중요하고 어떻게 살고 있으며 지금부터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가 중요하다. 가늠해보면 우리는 매일 누군가를 만나는 것 같지만 실은 매일 이별하며 산다.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중략) 또 하루 멀어져 간다/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김광석 ‘서른 즈음에’ 중). 그러니까 ‘난 알아요’가 던지는 최대의 문제의식은 ‘그때 나는 무얼 하고 있었나’다.

오늘은 세계 시의 날(World Poetry Day)이기도 하다. T S 엘리엇은 시를 ‘리듬감 있는 불평’이라고 했다. 내 삶에 리듬만 있고 불평은 없는지, 불평만 있고 리듬은 없는지를 되돌아본다. 2002년 10월에 직접 서태지와 만나 인터뷰한 적이 있다. “노랫말을 보면 상당한 수준인데 음악을 안 했으면 시인이 됐을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건네자 그는 손사래를 쳤다. “난 책도 잘 안 읽는다. 그냥 직접 느낀 것, 그중에서도 답답하다고 느낀 것들을 중얼거리듯이 적어본 것이다.” 어떤 이는 답답한 심정을 댓글로 푸는데 서태지는 그걸 노래로 만들었으니 그 점이 가상하다. 노래의 진짜 생일은 노래를 듣고 부르는 그날이다. 좋은 노래는 오늘도 부활한다. 의미 있는 노래는 내일도 다시 태어난다.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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