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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명작의 공간 게재 일자 : 2019년 04월 12일(金)
‘서양문물은 훌륭한 것’ 동경하던 마음 부끄럽게 만든 한국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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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다 그친 10일 오후 허영자 시인이 덕수궁 석어당 앞에서 한국적 조형미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단청이 없는 석어당의 소박한 이미지에 오히려 더 마음이 끌렸던 것 같다. 여기는 경기여고 시절의 추억이 깃들어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김호웅 기자 diverkim@

시 ‘부끄러움’의 모티브 된 덕수궁 석어당

일제 때 ‘조센진’ 놀림받고
해방 후 미군 과자 먹을 때
‘왜 한국서 태어났을까’ 한탄

근대화 과정의 물결 속에서
빌딩·영어·햄버거문화 선망
‘우리 것 = 열등’ 편견에 매몰

간결·그윽한 ‘석어당’앞에서
그 진솔한 아름다움에 매료
부끄러워한 시절이 부끄러워


나는 다시 덕수궁 석어당 앞에 섰다.

단청이 안 된 이 집 앞에서 나는 ‘부끄러움’이라는 자작시 한 편을 떠올린다.

이 시는 흔히 말하는 대표작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한국미의 극치를 보여준다고 나 나름으로 생각하고 있는 석어당 앞에서는 이 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흰 고무신에 쪽을 찐

구식 어머니가

나는 부끄러웠습니다



일요일마다

찬송가 책 옆에 낀

어머니와 손잡고

예배당에 가는 친구가

한없이 부러웠습니다



언문흘림체로만

글을 쓰는 어머니가

나는 부끄러웠습니다



사투리 대신

상냥한 서울말씨를 쓰고

서양과자를 만드는

친구 어머니가

내 어머니이기를 바랐습니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앉아 나는

먼 나라에 있을

멋쟁이 어머니를 꿈꾸었습니다



이제금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앉아 나는

그 많던 부끄러움이 부끄러워

젖은 음성으로 어머니를 부릅니다.



“우리에게 무슨 일이나 일어나게 하옵소서.”

이런 시구가 크게 가슴에 와 닿던 사춘기의 소녀 시절에 까닭 없이 외롭고 슬픈 날이면 나는 홀로 고궁을 찾아가곤 하였다. 그중에도 덕수궁에 제일 많이 갔다. 그곳은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 가까운 궁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곳 석조전이 당시에는 박물관이었기 때문이었다. 박물관에는 우리나라의 보물 유물들이 진열되어 있었고 나는 넋을 놓고 그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

그 뜰에 모란이 필 때, 연못에 수련이 뜰 때, 보랏빛 등꽃이 늘어질 때 나는 언제나 그곳에 있었다.

그런 어느 날 나는 석어당이라는 집 앞에 섰다. 아름다운 단청으로 꾸민 집들 속에 홀로 맨나뭇결을 드러내고 서 있는 석어당! 그 집은 화장과 무색옷으로 호사한 여인들 속에 안동포나 서산 모시로 지은 옷을 입고 있는 조금은 쓸쓸하고 서러운 모습의 여인을 보는 듯 느껴졌다.

그곳이 임진왜란 때 피란지에서 돌아온 선조가 머물다 승하한 곳이며 광해군이 인목대비를 유폐한 곳이기도 하고 인조반정 후 인목대비가 광해군을 그 앞에 꿇어 앉히고 죄를 물은 곳이며 1904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다시 복원한 집이라는 것, 덕수궁 내의 유일한 2층 한옥 구조라는 것 등의 안내문은 실로 진솔한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고 심취한 나에겐 별로 큰 의미가 없었다.

단청이 없는 석어당은 간결함과 그윽함을 머금은 최고의 한국미를 응축한 것이라는 나 나름의 결론으로 나는 무한히 행복할 수가 있었다. 그 사춘기를 지나서 나는 먼 길을 걸어왔으며 아련한 옛날을 돌아보게 된다.

그들은 우리를 조센진이라고 불렀다.

그 이름은 결코 존경의 뜻이 담긴 것이 아니라는 것, 그 이름 속에는 모멸과 멸시와 조롱의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을 어린 나도 알 수 있었다. 그들이 부르는 조센진은 더럽고, 게으르고, 부정직하고, 무식하고, 가난한 인간 이하의 존재였다. 어느 땐가 어머니께서 배급소에서 콩깻묵을 배급받아 오셔서 “조선사람을 짐승 취급한다”고 하시던 말씀이 내 가슴에 그대로 각인되어 오늘까지도 잊히지 않고 있다.

그때 나는 “왜 하필이면 조센진으로 태어났을까, 더 좋은 나라에, 더 부자 나라에 태어났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간절하였다. 겨우 여덟 살밖에 안 된 아이가 그런 생각을 하였다고 하면 그 시대, 그 상황을 겪지 않은 사람들은 아마 믿지 않을지도 모른다.

해방이 되었다.

어머니는 제일 먼저 몇 달 전에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받아온 내 일본어 교과서를 아궁이에서 태웠다.

한글을 배우고 한국말을 학교에서 마음대로 할 수 있었으니 비록 서너 너덧 달이었지만 학교에만 가면 꿀벙어리가 되어 앉아 있어야 했던 답답함이 다 풀렸으니 이것이 해방인가보다 하였다.

그러나 38선이 그어졌고 남북이 갈리는 바람에 남북의 사람들은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

미군이 진주하였고 그들은 너무나 신기한 물건들을 우리에게 선사하였다. 우리는 줄을 서서 D.D.T 세례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받았다. 약도 받고 과자도 받고 밀가루도 받았다.

나는 그때도 생각하였다.

이런 것을 얻어 받는 나라 사람이 아니라 주는 나라 사람이 되고 싶다고.

6·25가 일어났다.

‘전쟁’이란 인간이 저지르는 최고의 악덕임을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참혹한 싸움이었다. 이로써 나의 유년기는 온통 카키색 물감으로 그려졌다. 카키색 옷을 입은 군인, 카키색 군용차, 카키색 무기, 그 속에 우리는, 아니 나는 카키색 먼지를 쓰고 길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작은 목숨이었다. 보거나 듣지 말았어야 하는 것들을 보고 들었다. 몸은 아직 어렸지만 상처 난 영혼은 이미 어린이가 아니었다. 전쟁이 없는 곳에 가서 살고 싶었다. 가난과 전쟁이 없는 나라가 내 나라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였다. 그런 나라에 태어나지 못한 것을 한탄하였다.

드디어 정전이 되고 남과 북의 경계는 38선 대신 DMZ로 바뀌었지만 폐허 위에 나앉은 백성들의 삶의 곤핍과 비참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전사자, 전상자, 고아, 홀몸의 여자들이 넘쳐났다. 그런 속에서 우리는 원조물자의 도움을 받으며 목숨을 이어갔다. 그런 상황이었기에 나의 엑조티즘(이국의 정취에 탐닉하는 경향)은 더욱 강해져 갔다.

‘학교’는 바깥세계를 내다볼 수 있는 최고의 큰 창이었다.

우리는 학교에서 영어를 배웠고 포크와 나이프 쓰는 법을 배웠고 국악 대신 서양음악을 배웠고 한복 대신 양복 입는 법을 배웠고 침대에서 자고 의자에 앉는 법을 배웠고 버터, 커피, 코카콜라, 햄버거 맛을 익혀갔다.

▲  허영자 시인은 “전후 삶의 비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콜라와 햄버거, 고층 빌딩으로 대변되는 서구화의 맛에 쉽게 빠졌던 것 같다”며 “열등하다고 생각해온 우리 문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 끝에 시를 쓰게 됐다”고 설명했다. 연합뉴스

헬레니즘, 르네상스 같은 찬란한 이름에 감복하였고 오르간 소리가 찬송가를 연주하는 교회당의 십자가가 눈부셨다. 서구화가 곧 새로워지는 것이며 훌륭한 지식인이 되는 것이며 나라를 선진화로 이끌 미래의 일꾼이 마땅히 갖추어야 할 공부요 교양이라고 생각하였다.

지난 역사에서도 이런 점은 강하게 부각되어 있었다. 한국의 근대화란 곧 서구화였던 것이며 서양의 발달된 문화와 문물에 비해 우리 것은 보잘것없고, 천하고, 뒤떨어지고, 야만적이라는 고정관념을 심어주는 교육이었다. 어렵게 서양에서 유학하고 오신 선생님들의 서양 찬양 일변도의 강의를 들으면서 나는 동양의 향료와 차, 비단과 도자기, 금은을 찾아 목숨을 걸고 항해에 나섰던 저들이 어찌하여 더 선진하고 더 우월하고 더 부강한지 알고 싶었다.

쑥국 쑥국

쑥국새 운다



쑥국 먹고 낳은 딸

쑥국 먹고 살다가

죽어서는 새가 된

쑥국 쑥국 쑥국새



코크 코카인

맥도날드 햄버거

슬픈 슬픈 아메리카

목이 메는 긴 봄날



쑥국 쑥국 쑥국새가

숨어서 운다.



냉전이 끝났을 때,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체제가 우위에 서서 승리하였다고 생각되었을 때 오히려 나는 이런 시를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그토록 동경하던 서양 문화의 민낯과 결국 그에 쫓겨 매몰되고 야만시 된 동양 문화에 대한 소회를 이런 짧은 시로나마 토로하였던 것이다.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서양에 갔을 때 내 가슴은 설레고 설레었다. 그들 문명과 문화의 실물을 접하였을 때의 충격과 감탄은 이루 다 말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나 곧 과학이 설계한 수백 층 빌딩 앞에서, 쇠로 엮은 탑 앞에서, 남의 나라 보물로 가득 채운 박물관 앞에서 이상하게도 내가 떠올린 것은 나무로 된 집, 그중에도 단청이 없는 덕수궁 안 석어당이었다. 낡아가고 썩기도 하고 벌레 먹기도 하고 무너지기도 하고 불타기도 하는 그것이야말로 생명을 부여받은 유기체로서의 존재이며 내 몸과 하나 되는 집이라는 생각이 간절한 기도의 말처럼 떠올랐다.

생성과 소멸의 운명은 비극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다른 한 편 비장한 극치의 아름다움이기도 하다. 이런 아름다움을 창조하고 향유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문화요, 문화인의 삶이 아닐까.

열등하고 부끄럽다고 생각해온 내 문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 부끄러움에 대한 부끄러움을 어머니라는 귀한 이름을 장치 삼아 ‘부끄러움’이라는 시는 써졌다.

허영자 시인
e-mail 김호웅 기자 / 사진부 / 부장 김호웅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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