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정태춘·박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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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논설위원

‘저기 떠나가는 배／ 거친 바다 외로이／ 겨울비에 젖은 돛에 가득 찬 바람을 안고서／ 언제 다시 오마는 허튼 맹세도 없이’. ‘노래하는 시인’ ‘한국의 밥 딜런’ 등으로 일컬어지는 포크 가수 정태춘(65)이 1980년 결혼한 박은옥(62)과 처음으로 나란히 이름을 내걸고 1984년에 내놓은 앨범 속의 ‘떠나가는 배’ 시작 부분이다. 이들처럼 대다수 노래가 가슴을 울컥하게 하는 가수는 극히 드물다. 삶의 쓸쓸함, 사랑의 애틋함, 뒤틀린 사회 현실에 대한 울분과 저항 등을 얹은 서정적인 가사와 선율, 그리고 가슴을 파고드는 가창력 때문이다. ‘소리 없이 어둠이 내리고／ 길손처럼 또 밤이 찾아오면’ 하는 ‘촛불’, ‘눈물에 옷자락이 젖어도 갈 길은 머나먼데／ 고요히 잡아주는 손 있어 서러움을 더해주나’ 하는 ‘서해에서’, ‘강물 속으론 또 강물이 흐르고／ 내 맘속엔 또 내가 서로 부딪치며 흘러가고’ 하는 ‘북한강에서’ 등이 대표적이다. ‘나 차라리 저 파도에 부딪치는／ 바위라도 되었어야 했을 걸’ 하는 ‘회상’으로 1979년 데뷔한 박은옥 노래들도 마찬가지다.

‘사랑하는 이에게’ ‘봉숭아’ 등 박은옥 작사도 일부 있지만, 혼자 또는 같이 부른 노래를 거의 모두 작사·작곡한 정태춘의 데뷔 앨범 ‘시인의 마을’은 1978년에 나왔다. 당시 ‘색안경’을 쓴 공연윤리위원회가 전면 개작을 요구해, 타이틀 곡부터 가사를 바꿀 수밖에 없었다. ‘우뚝 걸린 깃발 펄럭이며’를 ‘푸른 하늘 구름 흘러가며’로, ‘고독의 친구, 방황의 친구’를 ‘자연의 친구, 생명의 친구’로 등. 그 일은 정태춘을 가요 사전심의제 폐지 투쟁에 나서게도 했다. 그는 마침내 비합법 음반인 ‘아! 대한민국’(1990년)과 ‘비에 젖은 이 거리 위로 사람들이 흘러간다／ 흐르는 것이 어디 사람뿐이냐／ 우리들의 한 시대도 흘러간다’ 하는 ‘92년 장마, 종로에서’(1993년)도 내놓았다. 결국 사전심의제는 1996년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폐지됐다.

‘정태춘·박은옥 40주년 프로젝트 사업단’까지 꾸린 가까운 예술인들의 성화에 떠밀린 두 사람은 전국 순회공연 ‘날자, 오리배’를 지난 13일 제주에서 시작했다. 서울 무대는 오는 30일부터 5월 7일까지 세종문화회관이다. 생각을 담아내는 그릇을 ‘붓글’로 바꿨다는 정태춘이 음악 활동도 더 이어가기를 바라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도 재확인되는 자리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