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文 정권 ‘코드 숭배’와 北의 우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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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논설위원

민주적 절차는 민주주의 요체
이미선 헌법재판관 임명 강행
헌재 사상 최초의 일로 反민주

정권 코드 최우선은 독재 전형
文 정권의 김정은 비판 금기시
황당한 偶像化도 거드는 행태

민주주의의 핵심이 ‘절차의 민주성’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제16대 미국 대통령이던 에이브러햄 링컨의 1863년 게티즈버그연설 중에, 민주주의의 요체(要諦)를 명쾌하게 표현한 대목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에서 ‘국민에 의한’이 다른 두 가지보다 더 중시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헌법에 따른 국민의 대의(代議)기구인 국회의 인사청문 보고서 채택조차 무산된 흠결의 이미선 헌법재판관 후보를 불법 혐의에 대한 제1야당의 검찰 고발에도 아랑곳없이, 헌재 사상 처음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한 것은 헌법 정신에 대한 도전이면서 실질적으론 절차의 민주성까지 거스른 반(反)민주주의이기도 하다.

대법원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이어서 법률의 위헌 여부, 탄핵, 정당의 해산 등을 심판하는 헌재마저 문 정권 코드 인사들이 장악하게 했다는 사실도 심각하지만, 절차적 반민주성은 더 심각하다. 문 정권의 ‘코드 숭배(崇拜)’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정권 코드를 최우선 가치로 떠받드는 것은 독재의 전형이다. 국가기관 구성과 운영도, 정책 입안과 추진도 모두 코드에 꿰맞추게 된다. 법치(法治)마저 들러리이게 마련이다. 이에 대한 합리적 비판은 국정 발목잡기로 매도되거나 적폐몰이 대상으로 낙인찍힌다. 잘못인 줄 알면서도 그러든, 부지불식간이든 정권 코드를 헌법보다 상위 가치로도 여긴다. 친위 쿠데타를 포함해, 권력의 찬탈·확대·유지를 겨냥했던 동서고금의 모든 쿠데타가 헌정 중단·유린을 합리화하며 ‘국가와 국민을 위해’를 외친 것도 그런 예다.

문 정권의 코드 숭배는 헌법재판관 임명뿐만이 아니다. 사실상 국정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심지어 국가 안보도 예외가 아니다. 여전히 핵무장에 집착하는 북한 김정은을 감싸다 못해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떠받들기까지 한다. 김정은은 지난 12일 북한의 최고인민회의에서 29년 만의 시정연설을 통해 “오지랖 넓은 중재자·촉진자 행세를 그만두라”며 문 대통령을 막말로 모욕했다. “민족의 일원으로 (미국에) 할 소리는 당당히 하면서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당사자가 돼야 한다”며 완전한 북핵 폐기를 관철하려는 미국 편에 서지 말고, 북핵을 고수하려는 북한 편에 서라고 요구했다. “장기간의 핵 위협을 핵으로 종식시켰다”며 북한의 핵 보유를 자화자찬했을 뿐 ‘비핵화’는 전혀 언급하지 않은 연설이었는데도, 문 대통령은 3일 후인 15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김 위원장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구축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거듭 천명했다”고 했다.

“근본 이익과 관련된 문제에서는 티끌만 한 양보나 타협도 하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이 올바른 자세를 가지고 우리와 공유할 방법론을 찾은 조건에서 제3차 수뇌회담을 하자고 하면, 한 번은 더 해 볼 용의가 있다”고 한 김정은의 오만도, 문 대통령에겐 선의(善意)로 비친 듯하다. 그렇잖다면 “변함없는 의지를 높이 평가하며 크게 환영한다”고 하진 않았을 것이다. 문 대통령부터 그런 식이니, 문 정권의 고위직 누구도 김정은을 분명하게 비판하지 않는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도 지난 18일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해부터 기존의 핵·경제 병진 노선을 버리고 경제 건설에 총력을 집중하고 있다”며 또 감쌌다. “온 사회의 김일성-김정일주의화는 우리 당과 공화국 정부의 최고 강령”이라며 “최근년간 제국주의와의 결사적 대결 속에서 (핵·경제) 병진의 역사적 대업 성취”를 자랑한 김정은 연설은 없던 일로 친 셈이다.

북한에선 ‘전체 조선인민의 최고대표자’ ‘공화국 무력의 최고사령관’ 등 새 수식어를 붙이기 시작한 ‘김정은 우상화(偶像化)’가 새삼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한다. 지난 12일 평양에서 발행된 책 ‘위대한 인간 김정은’이 적나라한 예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일찍부터 사고와 행동이 남달리 통이 크고 용맹무쌍, 영웅 남아다운 성품과 기질, 모든 것에 능통한 비범한 식견, 천리 혜안의 예지와 과학적 분석력, 비상한 통찰력을 지니셨다’ 운운하며 ‘하늘이 내신 분’이라고 했다. ‘이 세상 그 어느 위인도 따를 수 없는 인간상은 참으로 완벽하고 황홀하다’고도 했다. 문 정권은 김정은에 대한 비판을 금기시하는 것이 북한의 황당한 김정은 우상화를 더 거들기도 한다는 사실이나마 제대로 알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