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北 도발에 식량지원 나서는 文정부…核무장 더 거들건가

국제사회의 북핵 제재로 북한 내부 어려움이 가중되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문재인 정부가 식량 지원 의사를 밝히고 나섰다. 북한에 아주 잘못된 신호를 주는 것은 물론, 한·미·일 공조를 주축으로 하는 국제 공조를 허물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일이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7일 전화 통화에 관한 서면 브리핑을 통해 대북 식량 지원에 대한 미국 측 동의를 받은 것처럼 밝혔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의 브리핑 자료에 따르면, 한·미 정상은 북한이 비핵화 대화 궤도를 이탈하지 말아야 한다는 데 공감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의 인도적 차원의 식량 지원이 시의적절하고 이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백악관은 대북 식량 지원에 대한 언급은 없이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북한 비핵화(FFVD) 달성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고만 발표했다. 양측 뉘앙스가 완전히 다른 것이다. 전날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통화에 대한 양국 발표가 FFVD에 초점이 모아진 것만 봐도 그렇다.

국가가 도발을 당하면 응징하거나 최소한 항의라도 하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지난 4일 북한이 방사포와 미사일을 섞어 무더기로 발사하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와 9·19 남북 군사합의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모욕을 당했는데도 군과 국가정보원, 여당까지 나서 ‘미사일이 아니다’‘낮에 했으니 도발이 아닌 단순 훈련이다’‘북한 매체 보도 태도를 보면 판을 깨려는 의도는 아닌 것 같다’ 등 적극 감싸기에 나섰다. 여기에 더해 식량 지원까지 공식화하고 나섰다. 대북 저자세와 무조건 퍼주기 행태 아니고는 설명하기 힘들다.

태영호 전 북한 공사는 “적절한 수준의 도발로 ‘식량을 제공하면 평화를 준다’는 식의 식량 공작 방법을 다시 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정일이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절에 했던 것처럼 도발로 식량 지원이 이뤄지면 김정은에게 모든 공이 돌아가고 체제 안정은 물론, 핵(核)을 포기할 이유가 없어진다. 여권 전체가 한목소리로 식량 지원에 나서겠다고 하니 이미 그런 효과를 거둔 셈이다. 한국 정부가 이런 식이니, 북한에 강경했던 일본 정부도 무조건 대화 쪽으로 돌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내 정치 때문에 충돌을 피하고, 아베 총리는 ‘한국 패싱’을 노린다. 한·미·일 공조가 근원에서 붕괴하고 있다.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