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취지도 정당성도 무너진 패스트트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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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국회 정치개혁특위에서 발동을 걸었던 선거제도 개혁이 표류하고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대한 오랜 논의와 소수 3당 대표의 단식투쟁까지 겪은 후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5당 원내대표의 합의가 있었다. 하지만 그 내용과 방식에 대해 여야 4당과 자유한국당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해 장외투쟁으로 이어지면서 정국 파행의 주된 원인이 된 것이다.

현행 선거제도가 국민의 정당지지도와 정당 의석수 사이에 심각한 오차를 보이고 있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필요하다는 소수 3당의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급격한 의석수 변화를 우려하면서 이른바 50% 연동형을 주장한 더불어민주당의 입장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그리고 선거를 앞두고 일방적으로 게임의 룰을 바꾸는 것은 문제라는 한국당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

이처럼 각각 일리 있는 주장들이 대립할 때는 합리적 절차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최선이다. 대화와 토론을 통해 타협하려 하지 않고 다수결을 앞세워 소수자를 일방적으로 억압한다면 이는 민주주의가 아닌 다수의 독재일 뿐이다. 그런데 현재의 정국은 패스트트랙을 앞세운 여야 4당에 한국당이 장외투쟁으로 맞서는 상황이다. 이른바 국회선진화법 이전의 ‘동물국회’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2012년 도입돼 지난 7년 동안 나름으로 기능해 온 국회선진화법의 핵심 요소인 패스트트랙에 결함이 발생한 것인가? 아니면 국회선진화법으로도 막을 수 없을 정도로 대한민국의 정치가 퇴행하고 있는가?

여기서 먼저 짚어야 할 것은 패스트트랙의 본래 의미다. 국회선진화법의 핵심 요소의 하나인 신속처리절차(패스트트랙)는 그 용어가 주는 인상과는 달리 다수파가 일방적으로 토의를 중단시키고 의안에 대해 결정하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다. 즉, 5분의 3 이상이 결의하기 전에는 회기 종료까지 계속 토론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한 것이며, 설령 패스트트랙에 의해 처리한다고 하더라도 상임위원회는 180일 이내에, 법사위원회는 90일 이내에 안건을 처리하도록 하고, 이후 60일 이내에 본회의에 상정되도록 정한 것이다.

그로 인해 최장 330일이 걸리는 안건 처리가 ‘신속’ 처리가 맞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하지만 패스트트랙이 과반수 의석을 가진 정당이나 정당 연합이 독선적으로 안건을 처리하려 할 경우에 발생하게 될 물리적 충돌의 재연을 막기 위해 도입된 것이란 점에서 이 정도의 시간이 불가피한 점도 있다.

더 중요한 점은, 국회가 최대한 합의를 통해 안건을 처리해야 하며, 51 대 49의 근소한 다수로써 일방적인 의사 진행을 해서는 안 된다는 데 그 취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화와 타협을 앞세우라는 민주주의의 정신, 패스트트랙의 취지는 간 곳 없으니, 동물국회가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라도 국회가 정상화되기 위해서는 모든 정당이 대화와 타협의 자세부터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총선을 앞두고 선명하고 강경한 태도만이 지지세력을 결집시킨다는 낡은 생각은 버려야 한다. 오히려 여야 모두에 비판적인 다수의 국민은 합리적인 대화와 타협에 앞장서는 정당을 선호할 것이다. 여야 4당은 한국당이 장외투쟁을 접을 수 있는 명분을 주기 위해서라도 패스트트랙만을 고집하지는 말아야 하며, 한국당도 무조건 장외투쟁만을 고집할 일은 아니다.

민주적 대의를 위해 멋지게 양보하는 모습을 통해 국민의 마음을 먼저 가져갈 수 있는 정당, 과연 어느 쪽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