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北 식량지원論의 3가지 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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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 워싱턴 특파원

“북한이 한국의 식량 지원을 조공(tribute)으로 여기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등 도발에도 대북 식량 지원으로 대화의 물꼬를 트겠다는 문재인 정부 정책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미국 내 한반도 전문가인 브루스 베넷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이 답한 말이다. 주민의 삶은 안중에 없이 핵·미사일 개발에 돈을 쏟아붓는 북한 정권과 이에 대한 비판 없이 대북 지원 필요성만 주장하는 한국 정부에 대한 시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북한은 지난 4일 로켓과 미사일 발사에 이어 9일 탄도미사일 발사 등 미국의 양보를 요구하는 벼랑 끝 전술을 쓰고 있다. 이 도발은 한·미 정상 간 통화 이후 논의되던 대북 식량 지원 문제에 찬물을 끼얹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와 여당은 대북 식량 지원 시급성과 이를 통한 대화 재개 효과를 다시 강조하고 있다. 미국 내 분위기는 대북 식량 지원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지원이 북한 정권의 무기 개발이나 주민 통제를 돕는 현재 상황의 반복은 안 된다는 것이다. 미국 내 전문가들의 말을 들어보면 대북 식량 지원의 조건은 대략 3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주민 생존은 국제사회에 떠넘기고 무기 개발에 자원을 투입하는 북한 정권의 현 정책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로버트 매닝 애틀랜틱카운슬 선임연구원이 문화일보 인터뷰에서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이 핵·미사일 프로그램용으로 많은 자금을 갖고 있으면서, 북한 주민의 식량 지원은 세계에 떠넘기는 것은 아이러니”라며 “식량 지원은 김 위원장이 군사 부문에 자원을 전용하도록 해주는 대체물”이라고 비판한 것이 이러한 분위기를 보여준다.

둘째는 식량이 주민에게 직접 전달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점이다. 4월 말 북한 자유 주간 행사에서 김일성대학을 졸업한 탈북자 김지영 씨는 “북한에 전달된 수많은 물자가 일반 주민들에게는 전달되지 않고, 간부들만 먹었다. 간부의 딸인 저의 증언이다”고 밝혔다. 수잰 숄티 북한자유연합 대표가 문화일보 인터뷰에서 대북 식량 지원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단지 트럭에서 쌀을 내려놓고 돌아가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 것도 이러한 문제점 때문이다.

셋째는 한국 정부의 대북 식량 지원은 한국 내 여론 합의하에 이뤄져야 한다는 점이다. 남북 관계 개선을 겨냥한 대북 식량 지원이 자칫 북한 정권이 노린 남남갈등과 이에 따른 한·미 동맹 균열로 이어지면 득보다 실이 크다는 판단에서다. 이미 그럴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스콧 스나이더 미국 외교협회 한미정책국장이 11일 미국의소리(VOA) 인터뷰에서 “(한국) 국민이 어디까지 지지할 수 있는지 한국 정부는 신중하게 살펴봐야 한다”고 한 조언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굶주리는 북한 주민들에 대한 지원을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김 위원장의 미사일 발사 시험 참관과 고급 상품이 진열된 평양 대성백화점 방문에서 나타나듯 식량난의 가장 큰 원인은 북한 정권의 잘못된 자원 배분에 있다. 이 구조적 문제 해결을 요구하지 않는 대북 지원은 북한 주민이 아니라 핵·미사일 개발과 주민 탄압을 하는 북한 정권을 지원하는 퍼주기에 불과하다.

su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