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美·中 화웨이 충돌 최전선 韓…동맹 우선 원칙 밝힐 때다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를 둘러싼 미·중 충돌로 한국의 대표 기업들이 압박을 받고 있다. 중국 당국은 최근 삼성전자, SK하이닉스 관계자를 불러 ‘심각한 결과’ ‘처벌’ 등의 표현까지 동원해 강력히 경고했다고 한다. 청와대 당국자는 지난 7일 화웨이 5G 장비 문제에 대해 한·미 안보 분야에 미치는 영향이 없다면서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결정해야 할 사안”이라고 했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화웨이를 “신뢰할 수 없는 공급자”라며 배제 요구를 한 데 대한 반응인데, 화웨이에 ‘보안 문제 없음’이라는 면죄부를 주면서 대응을 민간에 떠넘기겠다는 입장까지 밝힌 셈이다.

한국은 미·중 화웨이 충돌의 최전선이자 가장 격전지가 될 가능성이 크다. 두 패권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지정학적 숙명에 더해,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을 구축한 한국이 어느 편을 드느냐에 따라 승패가 결정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엄중한 상황이 닥쳤는데도 문재인 정부가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한다. ‘안보는 미국과, 경제는 중국과 협력한다’는 안미경중(安美經中)의 관성적 대응으로 보인다. 1992년 한·중 수교 이래 지속된 이 원칙은 2016년 사드 사태를 계기로 의미를 상실했다. 그런 양다리 전략도, 균형 대응도 이젠 가능하지 않다. 신냉전 시대로 진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 국방부는 국가방위전략 보고서에 이어 인도·태평양전략 보고서에서 중국의 패권 도전을 좌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중국도 6·25 때 상감령 전투까지 거론하며 ‘항미원조’ 정신을 들고나올 정도로 결연하다.

문 정부가 화웨이 사태에 따른 대응을 기업과 시장 판단에 맡기겠다는 것은 ‘국익 외교’ 포기 선언과 다름없다. 그 파장은 폭과 깊이를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할 것이다. 그런 만큼 사드 경우처럼 ‘전략적 모호성’ 미명 하에 우물쭈물하면, 중국은 한국을 더 대놓고 압박할 것이고, 한·미 동맹은 위기에 빠질 것이다. 서방도 분열되고 있다. 한국이 당장 칼로 무 자르듯 선택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동맹 우선’ 대원칙을 견지하면서, 화웨이 기업 및 제품과 관련된 미국의 안보 우려에 대한 확인 노력을 계속하고, 그것이 입증되면 미국의 제재에 동참한다는 원칙 정도는 천명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