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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지식카페 게재 일자 : 2019년 06월 12일(水)
40만평에 펼쳐진 식물 컬렉션… 대영제국이 빚은 ‘地上 에덴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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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큐 왕립식물원의 팜 하우스(Palm House). 야자나무는 왕립식물원의 위엄을 표현했다. ⓒWikipedia

■ 김광현의 건축으로 읽는 일상 풍경 - (18) 英 ‘큐가든’ 통해 본 식물원의 역사

런던 교외 위치 ‘큐 왕립식물원’
식물 2만종… 난초만 3000종
세계 最古 온실 ‘팜 하우스’ 도
열대 지역 지배 제국 위상 상징

첫 식물원 기원은 고대 그리스
알렉산더 대왕은 정복한 땅서
바나나·마늘 등 가져오기도
18세기 유럽 ‘식물사냥꾼’ 활동
전세계 돌며 희귀식물 등 수집

온실은 로마 시대 처음 만들어
15세기 佛엔 오렌지 재배 온실도


지난 5월 서울 마곡지구에 서울식물원이 정식 개원했다. 서울식물원은 축구장 70개 넓이에 식물원과 공원을 합친 ‘보타닉(botanic) 공원’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주제원, 열린숲, 호수원, 습지원 4곳이 있는데, 주제원은 식물원이고 나머지 3개 공간은 공원이다. 그러나 이 식물원의 더 큰 목적은 식물종 다양성을 연구하고 보존하며 토종 종자와 세계 식물문화를 널리 알리는 것이다. 지름이 100m인 식물원 온실에는 국내에서 보기 드문 식물 500여 종이 전시돼 있다. 지금 보유한 식물은 3100여 종이지만 2027년 8000종까지 늘어날 것이라 한다.

본래 식물원은 영어로 ‘botanic garden’, 프랑스어로는 ‘jardin botanique’라 한다. 식물학을 뜻하는 ‘botanic’과 정원을 뜻하는 ‘garden’이 합쳐져 있으니 직역하면 ‘식물학 정원’이다. 그러니까 식물원은 식물학의 관점에서 특성별로 수집된 화초, 나무 등 식물을 재배·보존하고 표본류를 축적·보존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정원처럼 여기고 사용할 수 있는 시설이라는 뜻이다.

물론 근대에 만들어진 식물원은 시민이 여러 식물을 구경하며 자유로이 돌아다니며 쉴 수 있는 공원의 이미지가 강하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식물원은 의학, 식품, 유용식물의 거점, 곧 유전자은행(gene bank) 역할을 하는 학술적인 시설이었다. 영국이 고무나무를 브라질에서 훔쳐 오는 등 국가적인 유전자원 쟁탈전이 전개된 것도 식물원이었다.

먼저 식물원은 식량이 될 식물을 수집·저장했다. 기원전 2500년쯤 중국을 통치한 신농(神農)은 식물을 모아 식량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러나 인간에게 도움이 될 식물을 모아 재배·보존하는 학술적인 목적으로 식물원을 발명한 나라는 고대 그리스였으며, 아리스토텔레스가 만든 것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한다. 기원전 340년쯤 아테네에 만들어진 식물원에는 알렉산더 대왕이 정복한 땅에서 가져온 바나나와 마늘 등의 유용식물이 심겨 있었다.

또한 식물원은 약물을 수집하고 저장하는 곳이기도 했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인접해 있던 식물원은 허브 오일, 치료 등에 쓸 약용식물을 유형별로 수집하고 재배했다고 한다. 중세의 수도원에는 약초원이 마련돼 있었는데, 이것이 터전이 돼 식물원이 발전했다. 13세기에는 교황 니콜라우스 3세가 대규모 약초 식물원을 바티칸에 만들었다.

유럽은 빙하기에 많은 식물이 없어져서 특정 지역에서 생육하는 식물의 종류가 많이 부족했다. 그래서 대항해시대 이후 18세기가 되자 영국이나 네덜란드 등 유럽 국가들은 ‘식물 사냥꾼’을 보내 세계 각지에 있는 유용식물 및 희귀식물을 수집하고 보존하고자 많은 식물원을 만들기 시작했다. 차, 고무나무, 커피, 카카오 등 경제가치가 높은 유용식물 자원은 식물원에서 품종을 개량하고 재배한 후, 식민지에 다시 가지고 가 대규모 농장을 경영했다. 그만큼 다양한 식물을 수집하고 품종을 개량하는 것은 국가 프로젝트였고, 식물원은 확장하는 국가의 경제를 위한 연구 센터였다. 대부분의 아시아 식물원이 유럽의 식민지 정책으로 건설된 것은 이 때문이다.

▲  지난 5월 정식 개원한 서울식물원 온실. 김동훈 기자 dhk@

온실은 꽤 오래전에 만들어졌다. 기원전 30년쯤 로마 티베리우스 황제가 겨울에 빛이 통과하는 듯한 얇은 석판을 덮은 재배실에서 오이를 키웠으며, 폼페이의 유적에서도 이런 재배실이 발견됐다. 그 후 작물과 원예식물을 촉성재배하거나 겨울을 보내려고 남쪽을 향해 나무틀에 유리를 끼워 넣은 작은 온실을 건물 벽 앞에 만들었다. 오늘날의 비닐하우스 같은 것이다. 근대적인 온실은 15세기 말 프랑스의 루이 12세가 만든, 오렌지 나무를 키우는 온실인 오랑주리(orangerie)다. 오랑주리는 18세기에 유럽 귀족 등 특권 계급의 독점물이었다.

남쪽에 창문만 크게 만들었던 오랑주리와는 달리, 19세기부터는 영국을 중심으로 전체가 유리로 덮인 온실이 나타났으며 1840년대에는 기술적으로 일단 완성됐다. 영국의 식민지가 크게 확대되면서 식물 수집 전문가인 ‘식물 사냥꾼’이 열대 지역의 식민지에서 가지고 온 유용식물과 감상식물을 재배하고 연구하려면 더 높은 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 유리온실이 지어져야 했다. 이 무렵 런던원예학회(1805년)나 왕립식물학협회(1839년)의 설립으로 식물학이 융성해진 것도 이 시기에 온실의 수요가 늘어난 요인이 됐다. 산업혁명 이후 1851년에는 세계 최초의 박람회에서 철과 유리로 만들어진 수정궁이 등장했고, 식물원에도 해외의 희귀식물을 전시하는 근대적인 온실이 만들어졌다.

개성적인 식물과 화려한 열대·아열대의 꽃이 가득 있는 온실의 이국적인 공간은 이윽고 식물원의 상징이 됐다. 이런 국가의 경제적 야망에 진기하고 아름다운 꽃을 비정상적일 정도로 희구하고 자기 나라에 없는 다양한 유용 식물을 얻고자 열심이었던 영국의 상류층의 호사가적인 취미가 더해졌다. 그리고 이것에 ‘영국다움’을 과거 회귀적인 전원 풍경에서 찾고자 하는 움직임이 보태졌다. 이런 요인들이 합쳐져서 번영하던 빅토리아 여왕의 통치 시기(1837∼1901)에 나타난 식물원이 바로 ‘큐 왕립식물원’(Royal Botanic Gardens, Kew)이었다. 이 식물원은 ‘큐 가든’(Kew Gardens)이라고도 한다.

‘큐 왕립식물원’은 런던 교외 템스강변의 남서부에 있으며, 1년에 135만 명이 찾을 정도로 유명한 식물원이다. 1759년에 튜크스베리의 카펠 경(Lord Capell John of Tewkesbury)이 각지의 식물을 모아 놓은 정원에, 국왕 조지 2세의 황태자비 오거스타가 창설한 작은 식물원이 더해지면서 확장됐다. 지금은 런던에서 지하철로 40분이면 가지만 당시는 템스강에서 배를 타고 가는 곳이었다. 40만 평의 광대한 땅에 펼쳐지는 뛰어난 풍경정원(landscape garden) 안에 여러 온실 등이 있다. 그 안의 2만 종 이상 식물, 특히 3000종에 8000그루나 되는 난초 등은 세계 최대의 컬렉션을 자랑한다. 이 식물원은 700만 종 이상을 보유한 대표적인 밀레니엄 종자 은행이기도 한데, 이는 세계 식물 종의 10분의 1이 넘는 숫자다. 이렇게 영국이 세계에 자랑하는 식물 연구기관인 큐 왕립식물원은 2003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그러나 큐 왕립식물원의 이 방대한 컬렉션은 아무도 모르는 세계의 식물을 수집해 온 식물표본 중에서 자원이 될 품종을 영국에 가져와 개량하고, 다시 이것을 기르기에 적합한 다른 영국령 식민지에 이식하는 과정에서 얻어진 것이다. 이를테면 1876년 브라질의 천연고무나무 종자를 대량으로 영국에 반입해 이곳의 온실에서 생육시킨 모종 1900개를 스리랑카로 운반한 후 싱가포르 식물원에 들여 키우고는 다시 그 고무나무를 말레이시아 반도에 이식했다. 또한 중국에서 수집해 온 차의 모종을 이 식물원에서 육성한 다음, 이를 인도 다르질링이나 스리랑카와 같은 영국령에 이식해 대량 생산했다. 그러니까 지금도 즐겨 마시는 다르질링 홍차는 큐 왕립식물원이 만들어낸 것이다.

식물원은 순수하게 과학 연구만이 목적이 아니었다. 그것은 종교적 신조와도 같은 상징성을 지니고 있었다. 식물원은 볼거리를 제공하는 즐거움의 장소가 되기 이전에 에덴동산의 신비를 재현하는 곳이기도 했다. 식물을 분류하고 이름을 붙이는 것은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하느님이 창조한 피조물에게 이름을 붙여주는 것과 같았다. 그중에서도 야자는 코코넛과 팜오일 등의 효용성 말고도 특별했는데, 야자는 에덴동산의 ‘지혜의 나무’ ‘생명의 나무’를 상징하는 나무였다.

야자는 대부분 열대 지역이었던 식민지를 지배하는 제국의 위신을 상징해 줬고, 그런 큰 나무를 수용할 수 있어야 대온실의 위용을 기술적으로도 자랑할 수 있다고 여겼다. 큐 왕립식물원에는 현존하는 것 중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온실인 팜 하우스(Palm House, 1848)가 있는데 ‘야자의 집’이라는 말이다. 열대 식민지의 귀중한 자원인 야자는 식민지의 산물이며 제국주의의 표현이었다. 그래서 1840년 빅토리아 여왕이 국민에게 식물원을 하사한 것을 상징하고자, 야자나무를 재배함으로써 큐 왕립식물원을 위엄 있게 만들고자 했다. 이 식물원의 상징적인 건물인 팜 하우스는 19세기 중반의 건물인데도 거대한 철제 구조에 정밀한 유리 시공 그리고 내부에 정교한 설비 시설이 완비돼 있음에 놀라게 된다. 정확하게 곡률을 유지하는 무수한 판유리를 모아 마치 물방울이 장력으로 팽창하듯이 보이게 한 형태는 그 자체가 이미 아름다운 근대건축의 조형이었다.

▲  김광현 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
현재 큐 왕립식물원은 위기에 처한 세계의 식물을 보호하고 세계 100개국 500개 이상의 식물원이나 비정부기구(NGO) 등과 제휴 네트워크를 구축해 생태계 보호를 선도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수집한 방대한 식물표본이나, 그것을 수집한 ‘식물 사냥꾼’ 등 수집가들이 큐 식물원과 주고받은 서간 등의 수많은 문서도 도서관·표본실에 보관돼 있다. 그야말로 명실공히 식물 분류학 연구자들이 선망하는 식물학의 메카다.

큐 왕립식물원은 과거에는 대영제국의 번영과 부를 투입한 장대한 국가사업으로서, 확장하는 대영제국의 실험장이기도 했으나, 이제는 세계 생태계 보전에 기여하는 식물 분류학의 첨단 연구소가 됐다. 오랜 것을 남기고 분류하며 정리하기를 좋아하는 영국 사람들의 기질과 적극적인 과학 탐구의 자세를 이 식물원을 통해 배우게 된다.

이 땅에 제일 먼저 세워진 우리의 식물원은 어떠했는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창경궁을 공원으로 만들고 이를 창경원으로 개칭한 다음 박물관, 동물원, 식물원을 만들어 역대 조선왕조의 궁궐을 유원지로 만들어 버렸다. 1909년에 만들어진 ‘창경궁 대온실’은 당시 동양 최대 규모의 대온실이자 국내 최초의 서양식 온실이었다. 식물원 온실은 178평의 목조 유리 건물로 그 이름을 ‘수정궁(水晶宮)’이라 불렀다. 식물원에 식재된 식물은 열대와 아열대종이 다수였으나 1940년에는 바나나, 고무나무, 야자, 파파야 등의 열대식물 등 모두 400여 종 1775주의 식물이 있었다. 그러나 그 이름이 아름다운 ‘수정궁’이고 당시 동양 최대의 식물원이었으면 뭘 하는가? 과학 연구 기반이기는커녕 슬픈 역사를 대변하는 슬픈 시설일 뿐이었다.

서울식물원의 영어 이름은 ‘Seoul Botanic Park’라 했다. 번역하면 ‘서울 식물학 공원’이다. 그러나 인터넷에서 ‘Botanic Park’를 찾으면 ‘Seoul Botanic Park’만 나온다. 왜 굳이 이렇게 표현했을까? 많이 생각해서 만드는 명칭일 터이지만, 큐 왕립식물원이 전 세계에 걸쳐 식물을 수집하고 이를 핵으로 광대한 지적·물적 네트워크가 형성된 것에 주목하면, 식물원의 첫 번째 목적은 식물학 연구를 통해 국가 경쟁을 높이는 데 있지 공원의 대용물이 되는 데 있지 않다. 그래서 유럽이나 일본의 식물원은 대학이나 과학원에 속해 있다. 그러니 서울식물원에 진기하고 아름다운 식물들이 왜 저렇게 심겨 있어야 하는지 넓게 이해하고, ‘창경궁 대온실’도 함께 기억하며 나라와 식물학의 관계를 생각해 보자. (문화일보 5월22일자 27면 17회 참조)

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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