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화웨이 백도어’ 의심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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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

미국의 화웨이 5G 장비 도입에 대한 입장 표명 요구에 정부는 기업의 자율적인 결정에 맡긴다고 발표했다. 이는 5G 안보 환경의 특성에 대한 몰이해와 지나친 낙관에 근거한 ‘나쁜’ 답변이다.

네트워크 장비에 백도어를 설치하는 공급망 공격은 명백히 현실적인 국가 차원의 위험이다. 백도어 설치는 어렵지 않고, 백도어를 설치할 의지를 가진 국가들도 이미 있다. 여러 국가가 법 집행을 위해 자국 장비에 백도어를 설치하는 방안을 고려해 왔고, 적(敵)의 장비에 백도어를 설치하는 공격이 여러 나라의 사이버 작전 플레이북에 포함된 지도 오래다. 특별히 화웨이 장비가 문제시된 것은, 중국이 의지를 가지고 있고, 거기에 더해 의지를 기업에 강제할 수 있는 시스템과 법을 가지고 있으며, 화웨이의 리더십과 거버넌스가 국가권력과 내밀한 관계에 있다고 강하게 의심되기 때문이다.

어떤 국가가 모든 것이 연결된 5G 장비에 백도어를 심어 놓으면 어떻게 될까? 그들은 평시에 타국의 민감한 정보들을 훔쳐 보거나, 자율주행차나 의료 장비를 오작동시켜 인명을 빼앗거나, 전시에 적국의 군사·민간 네트워크를 중단시킬 수 있다. 5G 인프라에 근거한 스마트시티의 안전과 4차 산업혁명의 성공도 보장할 수 없다. 5G 인프라를 지배하는 국가는 정보·기술·군사 경쟁에서 우위를 장악할 수 있으며, 반대로 다른 국가들은 정치·경제·안보적으로 종속될 것이다.

국가의 미래를 결정할 중대한 결정임에도 안보와 안전의 책임을 기업에 전가한 정부의 답변은 ‘최악’일 수밖에 없다. 많은 전문가는 4차 산업혁명을 위한 규제 완화와 기업의 자율성을 강조하면서도 안보와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5G 보안은 규제 강화와 정부 역할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우리는 그 반대로 가고 있다.

화웨이의 실제 백도어 설치 여부는 명확하지 않다. 우리에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새로운 위협 환경에 직면하고 있다는 것과 그에 대한 국가적 대응 체계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우리가 미·중 눈치만 보는 사이에 유럽은 2012년부터 일련의 화웨이 사태를 통해 5G 환경에서의 기술적 종속성에 따른 위험을 인식하고 국가 차원의 다양한 기술·정책·제도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도 서둘러 국가적 대응 역량을 구축해야 한다. 국가 공급망 보안 체계를 갖추고, 장비 취약성 및 백도어 탐지 기술을 개발하고, 국가적 노력을 총괄하는 검증위원회를 설립해야 한다. 국산 스텔스기에 탑재될 차세대 레이더 개발에 수조 원을 투자하듯 사이버 영토에 소리 없이 숨어든 사이버 스텔스기인 백도어 탐지 기술에도 많은 예산을 투자해야 한다. 검증 역량 강화를 위해 한·미 협력 체계를 활용하고, 국가 간 공동 검증 체계 구축도 고려해야 한다. 또한, 주요 기반시설의 장비 검증 의무화를 요구하는 입법을 추진하고, 피해 확산 방지·지연·복구 기술도 개발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대응 역량과 억지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조만간 우리 사이버 영토는 외국 해커들이 쉴 새 없이 드나드는 백도어로 넘쳐날 것이다.

미국은 화웨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민감한 정보를 공유할 수 없다며 우리나라에 또다시 명확한 입장 표명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는 이번만은 국가 차원의 대응 의지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이에 대해 온전히 정부가 책임을 지는 ‘좋은’ 답변을 해야 한다. 더는 국가안보와 국민 안전을 담보로 한 위험한 줄타기로 허송세월(虛送歲月)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