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웹 | 지면보기 PDF | 기사 상세 찾기 | 2019.10.21 월요일
전광판
Hot Click
영화
[문화] Her Story 게재 일자 : 2019년 06월 26일(水)
“얼떨결에 영화일하다 운명처럼 기생충 만나… 영문 이름도 ‘Cine’”
  페이스북트위터밴드구글
▲  곽신애 대표가 자신의 사무실 벽에 붙여놓은 ‘기생충’ 포스터 옆에 서서 포스터 속 배우들처럼 검은 띠로 눈을 가리고 있다. 곽 대표는 “이 영화를 통해 처음으로 함께 만들어가는 기쁨을 맛봤다”고 말했다. 신창섭 기자 bluesky@

‘기생충’ 제작자 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

학창시절 작가 꿈꾸다 출판일
어쩌다 영화잡지 ‘키노’ 기자로
명함받아간 정지우 감독과 결혼
봉준호 감독과의 인연도 시작

친오빠는 ‘친구’의 곽경택 감독
가족과 만든 영화, 흥행엔 실패
세번째 찾아온 작품이 ‘기생충’
시놉시스 상태서 느낌이 딱 와

황금종려상 수상은 ‘초현실적’
무대 한쪽에서 객석 둘러보니
기뻐해주는 관객들 표정에 체감
명함에 새긴이름 Cine ‘상징적’


제72회 칸국제영화제 폐막식이 열린 5월 25일(현지시간) 프랑스 칸 뤼미에르극장. 총 8개 본상 중 7개 부문 발표를 마친 후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심사위원장이 무대로 나가 황금종려상 시상자인 프랑스 배우 카트린 드뇌브 옆에 섰다. 마이크를 잡은 이냐리투 위원장은 “팔름도르(황금종려상) 고스 투 코리아 봉준호”라고 ‘기생충’의 황금종려상 수상을 발표했고, 봉준호 감독은 무대에 올라 트로피를 받은 후 객석을 향해 손짓했다. ‘기생충’ 주연배우 송강호와 제작자인 곽신애(51) 바른손이앤에이 대표를 부르는 손짓이었다. 봉 감독과 송강호가 차례로 수상 소감을 말할 때 곽 대표는 무대 왼편에 조용히 서 있었다. 그는 쟁쟁한 전 세계 영화인들이 모여앉은 2300여 석의 넓은 객석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서울 용산구 한남동 바른손이앤에이 사무실에서 문화일보와 만난 곽 대표는 “초현실적, 비현실적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하며 다시 감정이 북받치는 듯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면서 기택(송강호)네 반지하 집이 침수되는 장면 촬영 때를 떠올렸다. 희극으로 빠르게 흘러가던 영화가 비극으로 급선회하는 순간이다. 그는 그날 자신의 눈앞에서 펼쳐진 모습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기생충’을 촬영하던 순간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어요. 그러다가 기택네 반지하 집이 침수되는 장면에서 멈췄어요. 수조가 좁아서 저는 밖에 나와서 바라보고 있었어요. 여러 대의 크레인에 매달린 강우기가 넓은 동네세트에 비를 뿌리고 있었고, 가슴까지 오는 ‘어부 장화’를 신은 미술감독님이 바쁘게 움직였어요. 제작부 스태프들은 작은 보트에 소품을 실어날랐고, 배우들은 몸을 물에 담그고 연기를 하다가 ‘컷’ 소리가 나면 체온유지를 위해 뜨거운 물을 뒤집어썼어요. 또 박사장(이선균)네 부잣집 세트에서 촬영팀이 모두 한 방향을 보고 있는 장면도 떠올랐어요. 그러고는 칸에서 공식 일정을 함께 소화하다가 먼저 귀국한 배우들의 얼굴이 생각났고, 홍경표 촬영감독, 이하준 미술감독의 얼굴도 그려졌어요. 짧은 시간이었는데 많이도 떠올렸네요(웃음). 현실로 돌아와 객석을 바라보니 모든 사람이 무대를 응시하고 있었어요. 누군지는 모르지만 ‘상을 받을만한 사람이 받았다’는 표정으로 기뻐해 주는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꼼꼼히 봤어요. 뤼미에르극장 무대 위에서 객석을 보는 ‘뷰’는 아무나 볼 수 있는 ‘뷰’가 아니잖아요(웃음).”

그는 이어 폐막 당일 낮 12시 41분에 수상권에 들었다는 통보를 받은 후 황금종려상을 받기까지의 감정 변화를 소개했다.

“사실 황금종려상까지는 생각하지 않았고, 2등 격인 심사위원대상을 기대했죠. 그 아래 심사위원상은 조금 섭섭할 것 같았고요(웃음). 폐막식 때 송강호 선배 바로 옆에 앉았어요. 수상자들이 한 명 한 명 불려 나가자 송 선배가 ‘거장들이 일찍 나가네’라고 의아해했어요.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페인 앤 글로리’ 주연배우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남우주연상을 받을 땐 ‘작품에 대한 평이 좋았는데 알모도바르 어르신이 좀 아쉽겠다’는 얘기를 나눴고요. 그러다 보니 우리밖에 안 남았더라고요. ‘뭐지?’하는 느낌으로 배우들 단톡방에 ‘황금종려상을 받을 것 같아’라고 올린 후 이냐리투 위원장의 발표가 나왔죠.”

▲  봉준호 감독, 배우 송강호와 함께 칸영화제 폐막식 무대에 오른 곽신애(왼쪽) 대표.

한국영화 최초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거머쥔 ‘기생충’은 흥행에도 성공했다. 25일 누적 관객 수 923만1166명을 기록했다. 이 영화가 작품성과 상업성을 인정받으며 한국 최고의 제작자로 떠오른 곽 대표의 살아온 과정이 궁금해진다. 그의 친오빠는 ‘친구’의 곽경택 감독이고, ‘은교’의 정지우 감독이 남편이다. 어린 시절부터 영화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을 것 같지만 사실 그는 얼떨결에 영화계에 발을 들였다.

“오빠와는 사이가 좋지만 어릴 때부터 따로 놀았어요. 오빠는 어른스러운 경상도(곽 대표의 고향은 부산이다) 장남이었죠. 제가 신경 쓰였는지 데리고 다니지 않았어요. 저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아서 동화책, 소설책을 주로 읽었어요. 영화를 찾아서 보진 않았지만 외화보다는 한국영화를 좋아했고요. 고등학생 때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위대한 작가를 꿈꾼 건 아니고, 대중소설이나 드라마 각본을 쓰는 작가가 되려 했죠. 그래서 국문과에 진학했어요. 작가는 20대 때 되는 게 아니라 삶의 연륜이 쌓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대학 졸업 후 직장을 찾았어요. 출판사에 취업하려고 부산에서 출판아카데미를 다녔는데 서울에 오니 인정해주지 않더라고요(웃음). 그러다가 아카데미 강의에 오셨던 서울 출판대행사 과장님이 불러주셔서 1990년 그 회사에 입사했어요. 근데 그 과장님은 대학 영화동아리 출신이었고, 그 위 실장님은 한국영화아카데미 1기였어요. 그분들과 틈만 나면 영화를 보러 다니다가 아예 회사가 드라마제작사로 바뀌었고, 과장님은 후에 영화사를 차리셨죠. 그 과장님이 시네마서비스 대표를 지낸 김인수 충남문화산업진흥원 원장이에요. 저는 그때 영화잡지 키노 창간 기자로 합류했고요.”

그는 영화 기자로 일한 1994∼1997년 4년 동안 “영화가 내 몸에 딱 붙어버렸다”고 말했다. 기자를 하며 남편 정 감독을 만났고, 봉준호 감독과의 인연의 끈이 이어졌다.

“키노 정성일 편집장님이 ‘영화 할 거냐’고 물으셔서 ‘하면 좋죠’라고 답했던 기억이 나네요. 영화에 인생을 걸겠다는 게 아니라 하게 되면 좋다는 생각이었죠. 제인 캠피언의 ‘피아노’와 임권택 감독님의 ‘서편제’ 리뷰를 쓰며 기자 훈련을 받았어요. 출판사에서 일하던 경험을 살려 잡지 대지 작업도 했고요. 키노 창간 후 인기가 절정에 달했을 때 영화행사에 가면 단편 감독들이 명함을 달라고 했어요. 그중 한 명이 지금의 남편이 됐죠(웃음). 정 감독과 첫 데이트를 한 후 4개월 만에 결혼했어요. 오빠는 그때 뉴욕대에서 연출 공부를 하고 귀국해 데뷔작인 ‘억수탕’을 준비하고 있었어요. 봉 감독님은 키노 창간호부터 폐간호까지 모두 모은 열혈 독자였고요. 폐간호에 저와 정 감독, 봉 감독의 기사가 나란히 실렸어요.”

결혼 후 잡지사를 그만둔 곽 대표는 그해에 영화 홍보대행사를 차렸고, 영화마케터로 경험을 쌓다가 제작사에 입사해 대표가 됐다.

“일자리를 알아보던 중에 남편 친구이며 제 친구이기도 한 김조광수 감독이 ‘같이 해보자’고 해서 홍보대행사 ‘바른생활’ 공동대표가 됐어요. 근데 그 회사는 무늬만 홍보대행사였고, 실제로는 제작사였어요. 나중에 자연스럽게 청년필름이 됐죠. 저는 나와서 2010년까지 LJ필름, 신씨네 등에서 기획마케팅 일을 했고, 중간에 KNJ엔터테인먼트에서 남편 작품 ‘모던보이’로 첫 제작 경험을 했죠. 남편과 함께 일하니 쉴 공간이 없었어요. 너무 힘들었죠. 둘 다 자유직이면 생계유지가 곤란하니 저는 월급 받는 일을 찾아야 했어요. 아들이 일곱 살 때니까요. 그렇게 신씨네에 들어갔고, 계획된 영화가 만들어지지 않아서 그만둘 시점에 같은 건물 옆 동에 있던 바른손 영화부문의 서우식 대표가 자신의 첫 직장 선배인 나를 본부장으로 영입했어요. 그때 제작자로서 다양한 학습을 했죠. 영화부문이 분사해 바른손필름이 되며 서 대표는 독립했고, 2013년에 제가 대표가 됐어요.”

그가 제작자가 돼 오롯이 만든 영화 ‘가려진 시간’과 ‘희생부활자’는 흥행에 실패했다. 그는 “눈물 날지도 모른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엄태화 감독의 ‘가려진 시간’은 지금도 좋아하는 영화예요. 제 판단 중 뭐가 틀렸는지 반성할 수 있는 기회가 됐죠. 오빠가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맡은 ‘희생부활자’를 통해 가족과는 일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어요(웃음). 저는 시나리오가 더 가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오빠는 여기까지가 끝이라고 말했어요. 제가 남이었으면 더 강하게 밀어붙였을 거고 오빠도 맞춰줬을 거예요. 오빠는 ‘어느 감독이 너랑 일하겠냐’고 했고, 저도 ‘감독이랑 일하면 이러지 않지. 오빠니까 이런 거지’라도 맞섰죠(웃음). 좋은 교훈을 얻었으니 됐죠.”

그에게 세 번째로 찾아온 작품이 ‘기생충’이다. 2015년 4월 봉 감독이 ‘마더’를 제작한 인연으로 바른손필름에 ‘기생충’ 제작을 제안했다. 바른손필름은 그해 9월 바른손이앤에이에 흡수합병됐고, 곽 대표는 이듬해 6월 바른손이앤에이 대표이사로 선임돼 ‘기생충’ 제작을 진두지휘했다.

“‘내 인생에 이런 일도 생기는구나’하는 생각을 하며 봉 감독님과 만나 영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때는 기택네와 박사장네가 얽히는 정도의 내용만 있는 시놉시스 상태였어요. 딱 봉준호스러운 느낌이 들었어요. 특이하면서도 익살맞고, 신랄하기도 했어요. 뒤가 너무 궁금했는데 그해 12월에 뒷부분이 완성됐어요. 사무실에 혼자 남아 줄거리를 읽으며 ‘이 영화가 관객과 통하겠구나’하는 생각을 했어요.”

곽 대표는 “‘기생충’을 통해 처음으로 함께 만들어가는 기쁨을 맛봤다”고 말했다.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를 겪으며 영화 일을 그만둘 생각도 했다는 그는 “이제는 ‘하니’ ‘안 하니’ 갈등하진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려진 시간’ 개봉 직전인 2016년 10월에 어머니가 큰 병을 얻으셨어요. 그런 상황에서 영화도 안되며 제 인생이 다시 보였어요. 20년 동안 일만 하며 꿈꾸던 소설도 못 썼다는 생각에 ‘이대로 살아도 될까’하는 고민을 했어요. 1년을 투병하시던 어머니가 봉 감독님이 ‘기생충’ 시나리오를 쓰던 2017년 11월에 돌아가셨어요. 벽 보고 얘기하듯 ‘이 작품만 끝내고 그만두자’라고 결심했죠. 남편에게 ‘병에 걸려서 1년 밖에 못 산다고 하면 당신은 뭐할 거냐’고 물었더니 ‘영화를 찍을 거야’라는 답이 돌아왔어요. 그래서 마지막 작품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기생충’ 제작에 매달렸죠. 어머니 49재를 지내던 2018년 1월에 배우들에게 시나리오를 돌렸고, 5월에 촬영을 시작했어요. 배우들과 친해진 후 제가 그만둘 생각도 했었다고 말했더니 지금 다시 물어보면 뭐라고 답할 거냐고 되묻더라고요. ‘계속한다고 할 것 같다’고 했어요. 송강호 선배가 그 말을 뭉클하게 들어주셨어요. 얼마 전에 뒤풀이 자리에서 이선균 씨가 ‘우리 영화를 그런 의미로 받아들이는 당신이 좋아’라고 말하더군요. 그때 제 말을 기억하고 있었나 봐요. 제 이름을 소리 나는 대로 발음하면 ‘영화’를 뜻하는 프랑스어 ‘시네(Cine)’와 비슷해서 명함에 영문 이름을 ‘Cine Kwak’으로 써요. 그래서 제가 어찌어찌 영화 일을 계속하게 되나 봐요. 상징적이죠(웃음).”

곽 대표가 꼽은 최고의 장면

수조에 세트 지어서 촬영
반지하집 침수 가장 애착


▲  기택네 반지하집 화장실. 침수된 후 변기에서 오물이 쏟아져 나온다.

곽신애 대표가 프랑스 칸 뤼미에르 극장 무대에 올라 ‘기생충’ 침수 장면을 떠올린 건 이 장면이 시나리오 단계부터 그의 뇌리에 강하게 각인됐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걱정으로 시작됐다. 그는 “완성된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으며 마지막에 눈물이 핑 도는 감정이 올라왔다”며 “그러면서 ‘기택네 동네 침수장면을 어떻게 찍지?’라는 큰 물음표가 떠올랐다. 기존 집을 섭외하는 건 불가능하니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결국 수조에 동네 세트를 지어 촬영하고, 컴퓨터그래픽(CG)으로 완성하기로 했다. 곽 대표는 이 장면에 가장 애착이 간다고 밝혔다. 그는 “봉 감독님은 수조 안쪽과 바깥쪽에 두 대의 모니터를 두고 촬영했다”며 “나는 뒤쪽 모니터 옆에 앉아 수조 안에서 촬영 중인 봉 감독님과 배우, 스태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전체가 보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봉 감독님은 장화를 신고 수조에 들어가 있었고, 안전요원들이 수조를 둘러싸고 있었다”며 “그때 긴장하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이 고생하며 찍은 중요한 장면이기 때문에 ‘이 장면은 정말 잘 나와야 해’라고 되뇌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모든 순간을 잊을 수 없어 사진을 찍고 메모해 놓았다”며 “특히 송강호 선배가 목까지 물에 잠겨서 집 안을 돌아보는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오만가지 감정이 들며 ‘배우란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기정(박소담)이 오물이 뿜어져 나오는 변기에 앉아 있는 장면도 잊지 못한다고 했다. 박소담은 그 장면을 찍은 후 눈물을 글썽였다고 한다.

인터뷰 = 김구철 문화부 부장 kckim@munhwa.com
e-mail 김구철 기자 / 문화부 / 부장 김구철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 많이 본 기사 ]
▶ 초등생이 자택서 “힘들다” 유서 남긴 채 숨진 채 발견
▶ 정경심 조사 사실상 마무리…검찰, ‘뇌종양 진단’ 신병처리..
▶ 문재인 하산 길, 박근혜보다 험난하다
▶ 짧은가을 마감한 류현진, 뜨거운 겨울을 만난다
▶ [속보]검찰, 정경심에 전격 영장청구…10가지 혐의 적용
Copyrightⓒmunhwa.com '대한민국 오후를 여는 유일석간 문화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구독신청:02-3701-5555 / 모바일 웹 : m.munhwa.com ]
[AD]
topnew_title
topnews_photo 강제수사 55일 만에 업무방해·자본시장법 위반 등 적용해 영장청구정경심, 뇌종양 등 건강문제 호소…검찰, 신병확보 불가피 판단한 듯 ..
mark정경심 조사 사실상 마무리…검찰, ‘뇌종양 진단’ 신병처리 신중..
mark하늘에선 8년차 女승무원, 땅에선 ‘몸짱’ 스타
“文대통령 잘한 일은 2가지 있다”는 말
빌보드 정복한 BTS·슈퍼엠… 전략과 과제 ‘SWOT..
초등생이 자택서 “힘들다” 유서 남긴 채 숨진 채 발..
line
special news 짧은가을 마감한 류현진, 뜨거운 겨울을 만난다
아시아 선수 최초 MLB 평균자책점 1위 ‘기염’LA다저스와 6년총액 425억원 계약 종료…FA시장서 ‘잭팟’코..

line
文 국정지지도, 3.6%p 반등한 45.0%…“중도층 재결..
日 경찰, 일왕 즉위 선포 의식 앞두고 최고 경계태..
법원 “손은 성적 수치심 일으키는 신체 부위 아냐”
photo_news
거침없는 ‘농염주의보’… 스탠드업 코미디 새 ..
photo_news
빌보드 정복한 BTS·슈퍼엠… 전략과 과제 ‘SW..
line
[지식카페]
illust
실존을 위한 노역?… 먹는다는 건 혀끝에서 오는 쾌락이다
[Science]
illust
해안가 식물 뿌리의 비밀 따라했더니… 바닷물, 식수가 되다
topnew_title
number ‘가정불화’ 아내에 흉기 난동…60대 남편은 ..
‘생일 자축’ 대니엘 강, 뷰익 LPGA 상하이 2..
문재인 하산 길, 박근혜보다 험난하다
억지는 여자들 특권?…서울대 외국어수업 교..
hot_photo
대학교서 ‘종이상자’ 머리에 쓰고..
hot_photo
배우 채민서, 4번째 음주운전…역..
hot_photo
주민 밤길 지켜주는 파출소의 선..
회사소개 | 광고안내 | 사업안내 | 이용안내 | 구독안내 | 독자참여 | 회원서비스 | 고충처리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책임자:한형민) | Site Map
제호 : 문화일보 | 주소 : 서울시 중구 새문안로 22 | 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아01697 | 등록일자 : 2011년 7월 15일 | 발행·편집인 : 이병규 | 발행연월일 : 1997년 1월 1일
Copyright ⓒ 문화일보. All Rights Reserved. ☎ 02) 3701-5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