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수사 등서 관행화된 ‘마구잡이식 압수수색’에 제동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가 지난 24일 무죄를 선고한 권성동 자유한국당 의원 채용비리 재판에서 “관련성 없는 별건 압수수색 증거물은 위법수집증거에 해당한다”고 판시해 법조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사진은 2018년 3월 8일 강원랜드 채용비리 관련 검찰 수사단이 권 의원의 서울 여의도 의원실을 압수수색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법원 “별건 압수물은 위법증거”

檢‘사법권 남용’15번 압수수색
삼성 20차례·한진 계열은 18번
포괄적인 별건 압수수색 대부분
먼지떨기식 檢 수사방식에 경고

법원 내부도 비판 목소리 빗발
“위법증거 부정 판사 거의 없어
증거능력 관련 실무기준 필요”

강원랜드 채용비리 혐의로 기소된 권성동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난 24일 선고받은 무죄 판결은 표적 수사에 따른 검찰의 ‘먼지떨기식 압수수색’에 법원이 본격적으로 제동을 걸고 나온 것으로 파악되고 있어 앞으로 제도적 변화가 있을지 비상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최근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이나 삼성, 한진중공업 등 대규모 적폐·기업수사에서 검찰이 포괄·별건 압수수색을 벌이는 경향이 심해지면서 법원 차원에서 위법수집증거 실무기준을 명확하게 세워야 한다는 지적이 확산되고 있다.

◇법원 “권성동 혐의 증거물, 관련성 없는 별건” = 권 의원에게 전부 무죄를 선고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 이순형)는 판결문 94∼97쪽에 걸쳐 변호인 측의 위법수집증거(위수증) 배제 주장을 인정했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서는 “하급심에서 간만에 위수증 배제 법칙을 인정해줬다”는 평가다. 현행 형사소송법 규정과 대법원 판시를 통해 위수증 배제 원칙과 그에 따른 ‘독수독과(毒樹毒果·독이 있는 나무의 열매에도 독이 있다는 뜻으로 위수증에 의해 발견된 제2차 증거의 증거능력도 인정할 수 없다는 논리)’이론이 판결에 적극 반영됐다는 것이다. 그동안 하급심 실무에서는 ‘실체적 진실 규명을 통한 정당한 형벌권을 실현해야 한다’는 이유로 위수증 원칙에 인색했지만 상황이 바뀌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서초동의 한 형사전문 변호사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에 편승하려는 판사들 탓에 위수증 주장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말까지 나돌았을 정도”라고 표현했다.

최근 소위 적폐수사, 기업수사가 잇따르면서 검찰은 ‘증거가 나올 때까지’ 포괄적으로 압수수색하는 경향이 더욱 심해졌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지난 2년간 검찰은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에서 15여 차례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증거인멸 사건 등 삼성 계열사에 대해 20여 차례 △한진 일가 비리로 18차례 광범위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기소된 사건을 살펴보면, 실제 압수수색 현장에서 포괄적인 별건 압수가 이뤄지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지적했다. 한 검사장은 “권 의원을 수사한 강원랜드 특별수사단은 대검에서 자료를 임의제출했는데도 관련 검사들 사무실까지 무분별하게 압수수색했다”며 “법원도 영장을 발부해 무리한 압수수색이 이뤄지게 해놓고 추후에 위수증이라고 배제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위법수집증거 배제 원칙은 원님재판?… “관련 판례 축적돼야” = 위수증에 대한 판사들의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법무법인 에이치스의 황성욱 변호사는 “위수증 원칙에 따라 검찰이 제출한 증거들을 부정하는 판사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면서 “구체적인 기준이 없다 보니 사실상 원님재판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김시철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최근 동료법관들에게 “지난번 대법원 헌법연구회 학술대회(행정조사에 대한 헌법적 관점에서의 사법적 통제)에서 일부 참석자는 ‘위수증 원칙을 적용한 사례, 부정한 사례 등이 실무적으로 계속 축적돼야만 압수수색을 통해 수집된 증거의 능력에 대한 세부적 실무기준이 설정됨으로써 헌법에 따른 사법적 통제가 정착될 수 있는데 실무사례가 많지 않아서 아쉽다’는 취지의 얘기를 하기도 했다”며 이메일을 보냈다.

■ 판결문 발췌

마. 위법수집증거 해당 여부(피고인 권성동의 두 번째 주장)에 관한 판단

1) 관련 법리

여기서 압수·수색영장의 범죄 혐의사실과 관계있는 범죄라는 것은 압수·수색영장에 기재한 혐의사실과 객관적 관련성이 있고 압수·수색영장 대상자와 피의자 사이에 인적 관련성이 있는 범죄를 의미한다. 그 중 혐의사실과의 객관적 관련성은 압수·수색영장에 기재된 혐의사실 자체 또는 그와 기본적 사실관계가 동일한 범행과 직접 관련되어 있는 경우는 물론, 범행의 동기와 경위, 범행의 수단과 방법, 범행의 시간과 장소 등을 증명하기 위한 간접증거나 정황증거 등으로 사용될 수 있는 경우에도 인정될 수 있다. 그 관련성은 압수·수색영장에 기재된 혐의사실의 내용과 수사의 대상, 수사 경위 등을 종합하여 구체적·개별적 연관관계가 있는 경우에만 인정된다고 보아야 하고, 혐의사실과 단순히 동종 또는 유사 범행이라는 사유만으로 관련성이 있다고 할 것은 아니다.

김리안·정유진 기자 knr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