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3일 경남 진주시 명석면 한송공방에서 소목장 김병수(오른쪽 두 번째) 명장과 수강생들이 공구와 목재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한송공방’서 소목장에 도전하는 사람들
단계별 과정에 따라 기술 익혀
홈 파서 서로 끼워맞춰서 제작
못 사용 안하는 전통 짜임가구
자신이 만든 가구로 집안 장식
목공예 배우며 새로운 삶 즐겨
전통가구는 머리로 만드는 것
힘으로 달려들면 버티지 못해
섬세한 사람들이 잘할 수 있어
김병수 명장 “목공예 하려면
나무 좋아하는 열정 있어야”
“목공예요? 로망이자 버킷리스트였죠. 은퇴하면 꼭 배워야겠다고 생각해 퇴직하자마자 시작했어요.” “2시간 걸려 차를 몰고 배우러 왔는데 여기 와 대패질하고 끌질하다 보면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몰라요.” 은퇴했거나 은퇴를 앞두고 전통가구 만들기에 도전하는 이들이 있다. 자신이 만든 가구로 집 안을 장식하고, 친구들에게 선물하는 소박하지만 멋진 취미를 가져보겠다는 게 이들의 꿈이다. 나무 향에 취해 망치 소리와 연장 가는 소리를 벗 삼아 작업에 깊이 몰입한 이들은 마치 인생 후반 새로운 즐거움을 찾은 듯 평온하고 진지했다.
지난 10일 경남 진주시 명석면에 위치한 ‘한송공방’은 배움의 열기로 가득했다. 전통가구 제작법을 배우고 있는 수강생들은 각자 단계별 과정에 맞춰 연장을 갈거나 정교한 짜임 가구를 만들기 위해 톱질을 하는 작업에 집중하고 있었다. 전통 짜임가구는 장식을 붙이는 것 외에는 못을 전혀 쓰지 않는다. 홈을 파고 부재를 서로 끼워 맞춰야 해 머리카락 크기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다. 틈이 생기면 짜맞춤이 헐렁해 부재를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전통 짜임 방법을 배우는 것은 인내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정교하게 짜 맞춰진 가구를 완성하면 성취감은 그만큼 크다.
목수는 대목장과 소목장으로 구분된다. 대목장은 한옥이나 건축물 등을 만드는 사람이고, 소목장은 장롱·궤·경대·책상·문갑 등 소품을 만드는 목수다. 이들은 모두 ‘소목장’에 도전하고 있다.
“여기서 배워 사방탁자 2개, 문갑 2개, 침대를 만들어 집에 가져다 뒀어요. 내가 직접 만들었기 때문에 시중에 파는 것이나 조립하는 DIY 가구하고는 비교도 할 수 없죠. 못 하나 쓰지 않고 국내산 원목으로 만들어 집사람도 무척 좋아해요.” 수강생 안병근(62) 씨는 1단계부터 6단계까지 한송공방의 전통가구 제작과정을 졸업했지만, 아직 배울 게 많아 매주 수요일 창원에서 달려와 기술을 연마하고 있다. 경남도청 4급 공무원 출신인 안 씨는 퇴직을 2년 앞둔 2015년 이곳을 찾았다. 안 씨는 “현직에 있을 때 전통가구 전시회에 갔는데 작품이 너무 멋져 경상(經床·두루마리 책이나 문서가 굴러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상판의 양쪽이 두루마리처럼 말려져 있는 상)을 하나 사려고 했다”며 “그런데 가격이 600만 원이나 해 직접 만들어 봐야겠다고 생각해 목공예를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여기 와 작업에 몰두하다 보면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며 “이제 웬만한 가구는 직접 만들 수 있어 퇴직 후 멋진 취미를 갖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부산에서 2시간 넘게 승용차를 타고 달려온 김영진(58) 씨는 이제 한 달 된 신입 수강생이다. 김 씨는 부산에서 수입가구 판매일을 하다 전통가구를 만들어 보고 싶어 도전했다. 김 씨는 “손으로 만지는 것을 좋아해 취미로 목공예를 배우게 됐다”며 “잘 만들면 지인들에게 선물하고 싶다”고 했다. 김 씨는 “기본을 알게 되면 짜임 방법을 다양하게 응용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전통 기법을 바탕으로 디자인도 변경해 새로운 가구를 만들어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퇴직 후 취미를 미리 준비하기 위해 한송공방을 찾은 공무원도 있다. 인근 전남 순천에서 온 조영윤(45) 씨로, 지난 1월부터 교대근무를 바꿔 수요일마다 이곳에서 전통가구 제작법을 배우고 있다. 조 씨는 “예전에 PC를 조립하는 등 만드는 것을 좋아해 취미로 전통가구 제작기술을 배우고 있다”며 “여기는 손으로만 가구를 제작하고 기계는 거의 쓰지 않아 좋다”고 말했다. 조 씨는 “기술이 쌓이면 딸에게는 머릿장, 아들에게는 선비상을 결혼선물로 만들어 주고 싶다”며 “나중에 농장에 나만의 작은 공방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옆 작업대에서 열심히 끌을 갈고 있는 백종국(66) 씨는 지난 2월 은퇴한 ‘교수님’이다. 그는 2년 전 한송공방 회원 초대전에 가보고 은퇴하면 꼭 목공예를 배워야겠다고 마음먹고 퇴직하자마자 이곳을 찾았다. 백 씨는 “기초가 튼튼해야 다음 단계로 나갈 수 있어 열심히 연장을 갈고 톱질을 배우고 있다”며 “골프도 힘을 빼야 잘되는 것처럼 톱질도 선생님이 가르쳐 준 대로 톱의 무게로 힘을 빼고 써니 면이 매끄럽게 나와 기본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백 씨는 “이제 배우기 시작한 초보라 난도 있는 부엌장을 만들려면 2년은 인내하고 배워야 할 것 같다”며 “열심히 연마해 멋진 작품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백 씨 옆에 나란히 앉아 열심히 끌을 갈고 있는 구본섭(60) 씨에게 다가가 “혹시 ‘신입생’이냐”고 물으니 “최종 6단계를 수강 중인 2년 된 졸업반”이라는 말이 돌아왔다. 구 씨는 “시작한 사람이건 오래된 목수건 목수에게 가장 중요한 건 연장”이라며 질문에 허를 찔렀다. 구 씨는 “젊었을 때부터 목공예에 관심이 많았지만 먹고살기 힘들어 엄두를 못 내다 퇴직하고서야 목공예를 시작하게 됐다”며 “6단계까지 오는 데 힘은 들었지만 실력이 많이 늘었고 여러 작품을 만들어 보람이 있다”고 말했다. 구 씨는 “전통가구 제작은 ‘머리’로 하는 것이라 ‘힘’으로 달려들면 버티지 못한다”며 “그래서 섬세한 사람이나 여자들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망치로 나무에 홈을 파고 있는 최고령 수강생인 신종영(71) 씨는 전통짜임을 배우며 인생의 활력을 찾았다. 지난 3월에 온 신 씨는 “나이가 많지만, 실력이 갖춰지면 기능공 자격증을 따서 전통 가구 제작법을 배우고 싶은 후배가 있으면 전수해 주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들이 전통가구 제작법을 배우고 있는 한송공방은 오로지 나무에 홈을 판 뒤 짜맞춤으로 견고한 전통가구를 만든다. 짜임 가구는 부재의 이가 정확히 맞아야 빠짐이나 뒤틀림이 없다. 수강생들을 이끄는 이는 국가무형문화재 제55호 소목장 이수자인 김병수 명장이다. 2004년 공예 분야 가구제작 명장으로 선정된 그는 “취미로 전통가구 제작을 배우기 위해 오는 사람이 있지만, 졸업 후 공방을 연 제자도 많다”고 소개했다. 김 명장은 “가구를 만드는 목공예에 도전하려면 나무를 좋아하는 열정이 있어야 한다”며 “100일가량 투자를 해 기초부터 고급과정까지 6단계를 졸업하면 웬만한 가구는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말했다. 김 명장은 “우리나라 나무에는 대부분 약용성분이 있어 대패질을 하고 끌질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무에서 나오는 좋은 성분과 함께해 몸도 건강해진다”며 “무엇보다 목재를 짜 맞추기 위해서는 정교하게 계산하고 홈을 파는 등 머리를 써야 해 ‘목수 중에는 치매에 걸리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은퇴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취미”라고 덧붙였다.
진주 = 글·사진 박영수 기자 buntl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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