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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김종호 논설위원 게재 일자 : 2019년 07월 12일(金)
시대착오적 국수주의 판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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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논설위원

편협하고 극단적인 민족주의
‘親日’ 간접적 흔적만 있어도
일상 용어까지 절멸 대상 삼아

‘安保 해체’ 현상의 배경도
‘우리민족끼리’ 北이념 동조
재앙 닥치기 전에 정신 차려야


편협하고 극단적인 민족주의가 선진국 문턱의 대한민국에서, 그것도 진보를 자처하는 집권 세력에 의해 판치고 있다. 좌파 성향 교육감들의 ‘친일(親日) 잔재 청산’도 그런 예다.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은 도내 모든 초·중·고에 보낸 공문을 통해 ‘학교생활 속 일제 잔재는 무엇이 있는가’ 등을 교사와 학생들에게 물었다. 청산 대상의 예로는 ‘친일 행위자가 쓴 교가(校歌)’ ‘수학여행’ ‘파이팅’ ‘훈화(訓話)’ 등을 제시했다. 간접적으로라도 연관이 비치기만 하면, 일상 언어까지 절멸(絶滅) 대상으로 삼는 식은 반일(反日) 국수주의(國粹主義)에 해당한다.

경기도교육청은 ‘수학여행’ 용어를 없애야 하는 이유로 ‘일제강점기에 민족정신을 해치기 위해 조선 학생들에게 일본을 견학하게 한 풍속에서 비롯된 행사’ 운운하지만, 어느 중학교 교장이 지적한 대로 그런 식이면 ‘학교’ ‘교육’ ‘과학’ 등 근대화 후에 생긴 모든 단어는 청산 대상인 일제 잔재에 해당할 것이다. ‘훈화’는 일제강점기의 군대 용어라거나, 각종 응원의 구호로 정착된 지 오래인 ‘파이팅’은 일본군이 ‘Fighting’을 ‘화이토’로 외치며 출진 구호로 삼았었다면서 없앨 용어로 지목한 배경도 국수주의 외에 달리 찾기 어렵다. 민간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오른 문인과 음악가 최남선·이광수·서정주·이흥렬·임동혁·현제명 등이 작사 또는 작곡했다는 이유로, 내용과 상관없이 교가 폐기·교체에 나서는 행태도 마찬가지다.

일제 말기에 군국 가요를 연주·반주·지휘했다고 해서, 작곡한 교가 모두 폐기해야 할 대상으로 지목된 이흥렬만 해도 ‘바위 고개’ ‘자장가’ ‘섬집아기’ 등 주옥같은 가곡·동요를 많이 남겨 ‘한국의 슈베르트’로 불린다. 군가(軍歌) ‘진짜 사나이’도 작곡했다. “이들이 만든 가곡·동요·군가도 부르지 못하게 해야 하느냐”는 개탄이 나올 수밖에 없다. 심지어 원산지가 일본인 향나무 교목(校木)도 깡그리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치 동맹’을 통한 글로벌 연대의 확대·강화가 국가 존립과 발전에 필수인 시대에 그런 식으로 교육받은 학생들의 세계관·가치관이 어떻게 되겠는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 이어 올해 3·1절 기념사에서도 “친일 잔재 청산은 너무나 오래 미뤄둔 숙제”라고 거듭 강조한 취지가 교육 현장에서 국수주의적인 반일의 적개심으로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진보적 원로 정치학자인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관제(官製) 민족주의’라고 비판한 문 대통령의 그런 시각은 취임 전에도 적나라했다. 2017년 1월에 펴낸 대담집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이렇게 말했다. “친일세력이 해방되고 난 이후에도 여전히 떵떵거리고, 독재 군부세력과 안보를 빙자한 사이비 보수세력은 우리 사회를 계속 지배해나가고, 그때그때 화장만 바꾸는 것이다. 친일에서 반공으로, 또는 산업화 세력으로, 지역주의를 이용한 보수라는 이름으로. 이것이 정말로 위선적인 허위의 세력이다.” 친일이 반공-독재-관치경제-정경유착-지역주의-보수로 이어지는 ‘몰아내야 할 기득권 세력’의 출발이라는 인식이다. 정치권뿐 아니라 학계 일각에서조차 ‘일본에 동조하는 한국인’을 비하해 일컫는 ‘토착 왜구(倭寇)’ 용어가 횡행하는 배경도 그 연장선일 것이다.

안보(安保) 해체 현상은 민족지상주의로도 표현되는 국수주의의 또 다른 결과다. 북한이 주창해온 ‘우리 민족끼리’는 ‘외세 미국 배척’과 ‘주한 미군 철수’를 의미하는 이념이다. 그런 이념에 동조하면 북한군(軍)도 적(敵)이 아니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처럼 천안함 폭침도 “일부 이해하고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고 할 수 있다. 연평해전도 “우발적 양측 충돌”이어서 남북한 공동책임이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도 “대화로 풀어가려고 하는 것이 숨은 의도”로 보인다. “6·25전쟁은 김일성과 노동당이 벌인 전쟁범죄”라고 분명하게 말하기조차 주저하게 된다. ‘북핵 인질’이 되면서도 미국 아닌 ‘우리’를 향해 핵을 쏘진 않을 것이라고 여겨, 북핵도 적당한 선에서 용인할 수 있게 된다.

교묘하게 분칠했으나 실상은 시대착오적 국수주의인 행태가 안보도 교육도 망치는 것은 국민의 안전, 국가의 존망과 직결되는 문제다. 한국을 등지는 이민 급증도 이런 현실과 무관할 리 없다. 국가적 재앙이 닥치기 전에 국가 지도자들부터 정신 차려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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