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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美國에서 본 한반도 게재 일자 : 2019년 08월 14일(水)
‘아시아 世紀’ 한·중·일 공조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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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일방주의 외교로 아시아 각국 등 전 세계가 큰 혼란을 겪고 있다. AP 연합뉴스
신기욱 스탠퍼드大 교수 아시아태평양연구소장

美 리더십 실종에 동북아 혼란
아시아 관여 정책도 퇴조 경향
포퓰리즘 넘어서 국익 지켜야


동북아의 안보 상황이 무척이나 혼란스럽다. 중국과 미국은 끝 모를 무역·기술 분쟁을 벌이고 있고, 한·일 관계는 치킨 게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북한은 연일 미사일을 쏘아 올리고 있으나, 미국엔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 인상과 호르무즈해협 파병이 더 큰 관심사이다. 미국이 한국이나 일본에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하면 중국·러시아와의 갈등도 불 보듯 뻔하다. 국제규범은 무시되고 각자도생의 길을 걷고 있는 모양새다.

‘태평양 시대’를 여는 기수였던 동북아에서 ‘아시아의 세기(世紀)’가 마감될 것인가. 동북아가 혼돈을 맞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미국 리더십의 실종에 있다. 1945년 이후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동북아 지역에 새로운 질서를 만든 것은 미국이었다. 6년간의 군정을 통해 전후 일본이 자유 민주국가로 다시 태어나는 기초를 세웠고,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통해 일본의 주권을 회복시켜 줬다. 한국 또한 북한의 적화통일 야욕으로부터 지키며 주요 동맹국으로 만들었다. 1965년에는 한일청구권협정을 막후에서 조정해 한·미·일 삼각 안보체제를 갖췄다. 더 나아가 1979년 중국과 수교를 단행함으로써 냉전 시대의 라이벌이었던 소련을 고립시키고 결국 공산권의 붕괴를 가져왔다.

미국 주도의 새로운 국제 안보·경제 체제 속에서 일본을 필두로 한국, 대만, 나아가 공산국가인 중국까지도 경제적 번영을 누릴 수 있었다. 한국, 일본, 대만 모두 미국의 안보우산 아래서 경제 발전에 몰두할 수 있었고, 미국의 기술과 시장도 큰 힘이 됐다. 중국 역시 미국과의 수교 이후 자본주의 세계 경제체제에 편입되면서 눈부신 성장을 이뤘다. 중국과 일본이 세계 경제 2, 3위가 된 것이나 한국과 대만이 ‘아시아의 타이거’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하지만 미국이 변했다.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며 집권에 성공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세계 경찰이 되거나 물주가 되는 것을 거부한다. 한·일, 미·일과 같은 전통적인 동맹관계도 철저한 계약관계로 보면서 연일 미국의 안보우산에 대한 청구서를 내밀고 있다. 한·일 간 갈등이 심해져도 알아서 하라며 중재에 나서기를 꺼린다. 중국에 대해서는 더 이상 불공정한 무역관행을 눈감을 수 없다며 압박을 지속하고 있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등 다자체제를 거부하고 중거리핵전력조약(INF) 등 기존의 국제합의도 파기하는 중이다.

미국을 강타한 국수주의와 포퓰리즘은 동북아도 휩쓸고 있다. 국수주의적 민족주의는 시진핑(習近平)의 중국, 아베 신조(安倍晋三)의 일본, 문재인의 한국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한·일 갈등만 해도 아베의 우파 국수주의와 문재인의 좌파 국수주의가 정면충돌하고 있어 해법이 어렵다. 개방적인 경제체제로 오늘의 번영을 이뤘던 동북아 지역이 이젠 경제뿐 아니라 안보에서도 폐쇄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국에서는 태평양 시대가 종착역을 향해 가고 있는지에 대한 논쟁이 한창이다. ‘아시아 세기의 종언’이라는 책의 저자인 스탠퍼드 후버 연구소의 마이클 오슬린 박사는 최근의 한 기고문에서 ‘아시아의 세기는 끝났다’고 단언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하더라도 미국의 아시아 관여 퇴조 경향은 지속될 것이라는 주장들이 힘을 얻고 있다. 미국이 더 이상 세계를 이끈다는 책임감에 헐값으로 안보우산을 제공하거나 불공정한 무역 관행을 좌시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국제 문제에서 미국의 리더십이 예전 같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팍스 아메리카는 저물어 가는데 이를 대체할 새로운 체제가 보이지 않는다. 오늘날 동북아의 혼돈은 이러한 미국의 변화와 연관이 깊다. 태평양 시대, 아시아 세기가 지속될지 여부는 이제는 더 이상 미국이 아닌 아시아 스스로에 달려 있다. 전후 미국이 만들었던 동북아 질서를 대체할 새로운 규범과 체제를 수립할 의무와 책임은 이제 아시아에 있다. 문제는, 한·중·일 등 동북아의 주요 국가들에 이러한 능력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중국은 일대일로(一帶一路)로, 일본은 인도·태평양으로 새로운 동북아 질서를 만들려고 하지만 아직은 역부족이다.

한·일 관계의 파국은 단순히 대법원 강제징용 배상판결이나 경제 문제 때문이 아니다. 1965년 체제가 향후에도 유효한지에 대한 한·일 간 견해 차이에 기인한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문제 역시 감정이나 기 싸움으로 접근해선 안 된다. 자칫 한·미·일 공조를 흔들어 그간 한국의 안보를 지탱해 온 근간을 송두리째 위협할 수 있다. 이러다 새집을 짓기도 전에 살던 집을 허물지는 않을지 걱정된다. 더구나 국수주의와 포퓰리즘의 발흥은 아시아 세기의 종언을 재촉할 뿐이다. 민족 감정이나 자존심보다 중요한 것은 국익이고 국민의 삶이다. 동북아 안보 혼돈은 결말을 점치기 어렵고 국민의 걱정은 커져만 가고 있다. 훗날 역사가들이 현 상황을 어떻게 평가할지, 정부와 여야 지도자, 또 지식인들은 두려운 마음으로 현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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