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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지식카페 게재 일자 : 2019년 09월 18일(水)
‘지구는 둥글까 평평할까’… 과학적 사고 vs 직관적 관찰의 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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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관수의 멀티버스 - ① ‘땅’에 대한 인류의 논쟁

- 우주과학사

고대 중국·인도 ‘땅은 평평한 것’ 당연시했지만 그리스에선 BC 6세기부터 ‘공 모양’ 개념 등장
과학 발전하며 ‘평면설’ 쇠락… 최근 그래픽 기술 보편화하자 되레 “지구 사진은 합성” 평면론 확산


지난 몇 년 사이에 지구가 공이 아니라 동전처럼 생겼다는 평면지구론이 갑자기 눈에 띄기 시작했다. SNS에서는 여러 부류의 평면지구론자들을 접할 수 있다. 개신교 근본주의 소수 종파나 하레 크리슈나 계열의 힌두 영성주의자들, 장난꾼이나 턱없는 음모론자들은 물론이고 나름 ‘과학적’인 ‘증명’과 ‘실험’을 제시하는 진지한 부류까지 다양하다. 2018년 8월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지는 평면지구론자 비율을 과장한 온라인 조사를 검산했는데, 지구가 구형이라고 확신하는 미국인은 85%가량, 평면지구론 확신자는 2% 내외였다. 나머지는 확신이 없는 부류였다. 그해 말 넷플릭스와 NGC채널에서 평면지구론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황당하다고 웃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지만, 극소수는 혹시 일리가 있을 수 있다며 마음이 흔들렸다.

▲  위는 그림자 각도를 이용해 지구의 지름을 구하는 에라토스테네스의 계산모델. 아래는 그림자 각도 차이를 이용해 땅에서 태양까지 거리를 구하는 주비산경 계산 모델.
현대의 자칭 ‘과학적’ 평면지구론은 모순투성이지만, 오고 간 논박들 사이에서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뒤엉켜 숨어 있는 질문들이 드러난다. 나와 내 직관이 세상을 이해하는 열쇠인가? 무엇이 과학적인가? 이런 질문들은 현대 우주론을 풀어가는 열쇠인 동시에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는 창이기도 하다.

통념과 달리 인류 역사에서 땅의 모양을 놓고 깊은 논쟁이 벌어진 적이 없었다. “땅이 평평해요? 아니면 둥글어요?”라는 원초적인 물음은 해석의 폭이 너무 넓다. 지금 딛고 있는 땅 조각을 말하는가 아니면 상상 가능한 땅덩어리 전체인가. 기하학적 형태가 둥글다는 것인가 성질이 원만하다는 뜻인가? 무엇보다도 그런 물음을 심각하게 물을 이유가 있었을까?

세계 각지의 신화와 설화들을 보면 옛사람들은 구태여 의문을 품지 않고 땅이 평평하다고 여긴 것 같다. 가볼 수 없는 먼 곳의 풍문이나 물자를 접할 수 있게 된 고대 문명 초기의 이야기에 이르러 비로소 ‘세상의 끝’이나 ‘땅을 둘러싼 물’ 같은 생각이 등장한다. 땅의 형태에 대해 좀 더 명확한 진술들은 천문학의 발달과 함께 등장했다. 대부분은 하늘의 형태를 논할 때, 덩달아 언급된 것들이었다.

인도문화권에서는 하늘과 땅을 모두 원반 모양으로, 중국문화권에서는 천원지방(天圓地方· 하늘은 둥글고, 땅은 평평하다 또는 모나다)라고 여기는 것이 대세였다. 어느 모델을 따르든 기원전부터 정밀한 역법을 발달시킬 수 있었다. 종종 다른 모델들이 제안됐지만 부차적인 흥미만 끌었다. 인도문화권에서는 워낙 다양한 믿음이 공존했기 때문에, 중국문화권에서는 계산의 정확성이 제일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16세기 말 명나라에서 마테오 리치가 고대 그리스적 관념을 ‘지구(地球)’라는 말로 표현했을 때, 이 단어의 함의를 깊이 생각한 사람이 많지 않았던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지구’라는 관념은 기원전 5~6세기 고대 그리스에서 처음 등장했다. 피타고라스학파가 주도한 것은 틀림없는데, 동기는 오리무중이다. 당시 그리스인들이 남북에 따라 태양의 높이가 달라지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까 싶지만, 그런 현상은 인도와 중국에서도 알려져 있었다. 고대 그리스 특유의 기하학적 사유가 지구설과 과학의 기원이라는 풀이도 있다. 하지만 뾰족한 원자는 매운맛이 난다는 식의 데모크리스투스 원자론을 보면 기하학적 사유만으로 과학이 싹튼다고 믿기 힘들다. 또는 밀교 집단이기도 했던 피타고라스학파의 신앙 때문일 수도 있다.

뒤이어 플라톤이 지구설을 단언하고(근거를 제시 안 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지구설에 운동이론과 물질이론을 합친 자연철학을 완성했다. 이후 기독교 세계와 이슬람 세계의 학문 전통에서는 지구설이 당연한 상식이 됐다. 물론 의무교육이 없던 시절이니 지구설 이해 수준과 방식은 천차만별이었다. 11세기에 아프가니스탄에서 활동한 알비루니처럼 지구설을 근거로 새 측량술을 개발할 수도 있고, 14세기의 한 영국 시인처럼 지구를 추상적인 상징으로 이해하는 경우도 있었다.

▲  2018년 평면지구론 국제회의에서 제시된 모형.
문제는 고대나 지금이나 우리 몸으로 체험하는 일상 경험 수준에서, 지구설로만 설명되는 직접 체험이 없다는 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땅이 둥근 공이기 때문에 월식 때 달에 드리우는 그림자가 둥글다고 해설했지만, 원반의 그림자도 둥글기는 마찬가지다(다른 문화권에서 땅이 공인지 원반인지 심각하게 다투지 않은 이유 중의 하나다).

과학 교과서에 항상 등장하는 에라토스테네스(기원전 2세기)의 실험을 보자. 햇빛이 땅에 평행하게 비치고, 땅이 둥글다고 전제하면, 그림자 각도의 차이를 이용해서 지구의 지름을 구할 수 있다. 반면에 ‘주비산경’(한나라 때 완성된 중국 산학서)에서처럼 태양에서 햇빛이 사방으로 펴져 나오고, 땅이 평평하다고 놓으면, 그림자 각도 차이를 이용해서 땅에서 태양까지의 거리를 구할 수 있다. 고대에는 어느 쪽 가정이 옳은지 경험적으로 검증할 방법이 없었다. 게다가 맨눈으로 해를 보면 햇빛은 바퀴살처럼 뻗어 나간다. 시야 가득히 퍼져나가는 햇살은 ‘주비산경’의 논리뿐 아니라 구약 에제키엘서의 하늘 바퀴, 아폴론의 태양 마차, 전륜성왕(轉輪聖王·바퀴를 돌리는 성스러운 왕, 붓다의 별칭)으로도 연결된다. 과학이 경험의 축적만으로 성립하지 않고, 그렇다고 체험이 과학으로만 귀결되지도 않았다.

아리스토텔레스 체계는 16세기 초 코페르니쿠스 때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코페르니쿠스는 천동설을 지동설로 교체하고 지구설은 보존했다. 그는 교황에게 바치는 헌정사에서, 교황도 아시듯이 락탄티우스가 무지한 발언을 했었다고 지적했다. 기독교 교부인 락탄티우스는 기독교를 로마 국교로 선포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측근인데, 지구설을 비방했기 때문에 중세에도 종종 웃음거리가 됐다. 즉 지동설을 생각 없이 배척하는 일은 락탄티우스처럼 한심한 일이라고 암시한 것이다. 마침 루터파가 지동설을 조롱하던 때라서 그들에 대한 공격이기도 했다.

고대부터 내려오던 지구설은 19세기 초에 갑자기 무지한 중세와 개명한 근대를 나누는 상징으로 부상한다. 1820년대에 미국 단편 소설가 워싱턴 어빙(산속에서 20년 동안 잠을 잔 립 밴 윙클 이야기를 쓴 사람)은 위대한 콜럼버스가 지구가 공 모양이라는 것을 입증해 중세를 끝장냈다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19세기에만 유럽과 미국에서 100여 회 재간될 만큼 반응이 좋았다. 초등교육이 확산되면서 과학교과를 배우는 인구가 늘어났다. 1년과 밤낮의 원리, 즉 둥근 지구의 자전과 공전을 한 덩어리로 배웠다. 겉보기 운동과 진짜 운동을 구별하기는 어려워도 땅 모양이 공이라는 것은 확실히 기억에 남았다.

19세기 후반에는 과학과 종교는 필연적으로 모순된다는 테제가 유행했다. 코넬대학 초대 총장이자 미국역사학회 초대회장인 앤드루 화이트는 “초기 기독교 교부들, 특히 락탄티우스” 같은 인물이 과학을 굴복시키려고 했지만, 위대한 과학은 극복해냈다고 강조했다. 1883년 10월 31일 한성순보 창간호에 문명개화의 첫걸음인 양 ‘지구론’을 소개하는 기사가 실릴 정도로 지구 개념은 전 세계에서 과학과 문명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이런 분위기에서 자연스럽게 대중 천문학서에 실린 그림이 중세의 무지몽매를 상징한다고 회자됐다. 그런데 20세기 말에 이 그림이 중세 진품이 아니라고 밝혀졌다. 프랑스 천문학회 초대 회장인 카미유 플라마리옹이 만들어 넣은 삽화였다. 아마도 1600년을 전후로 스위스 바젤에서 출판된 책표지 그림을 손본 것으로 추정된다. 이 책은 세바스티안 뮌스터가 1544년 출간한 ‘코스모그라피아’를 출판한 것이다. 뮌스터 사후(1552년) 20여 회 재간된 판본 중 이 판본들에만 고대 히브리 세계관을 닮은 표지 그림이 있다. 정작 본문에서 뮌스터는 지도 도법을 설명하기 위해 땅이 공처럼 생겼음부터 설명하는 그림을 넣었다. 중세 이슬람 세계와 기독교 세계의 지도 도법학 서적들에서 따온 것이다.

제국주의 전성기에 일어난 이 현상은 기묘한 반작용들도 낳았다. 한편으로 비서구권에서는 자기네 과거에서 서구과학을 발견하는 일이 유행했다. 동아시아 전통과학을 높이 평가한 조지프 니덤의 ‘중국의 과학과 문명’도 그런 오리엔탈리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반대편에서는 침략자인 ‘서구 기독교 무신론자’(어떻게 그것이 가능한지는 차치하고)에게 속지 말고 고대의 우주론으로 돌아가자는 운동도 발생했다. 옛 시대의 성취를 억지로 서구적 잣대에 끼워 맞추는 일이나 무조건 최고라고 강변하는 일 모두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짓이라는 깨달음은 20세기 후반에야 싹텄다.

가장 기묘한 것은 서구 내부에서 등장했다. 19세기 중엽 영국의 유사과학자 벤저민 로바텀은 ‘과학적’ 평면지구론을 제창했다. 그는 현혹하는 이론을 배제하고 직관적으로 이해되는 관찰과 경험부터 받아들여야 진짜 과학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니 땅은 평평하고, 해는 움직인다는 사실이야말로 참된 천문학의 근본이라고 내세웠다. 종종 성경 구절을 삽입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 그가 완성한 모델은 고대 힌두 천문학과 닮았다.

미국 개신교 근본주의 주변부에서 간신히 명맥을 잇던 로바텀 모델은 20세기 중엽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영화 특수효과나 사진합성이 대중적으로도 익숙한 일들이 됐다. 이 덕분에 종교색을 탈피한 버전도 나름 호소력을 얻을 수 있게 됐다. 사진과 영상은 조작될 수 있으니, 언제나 진실한 육안 관찰에 의거해야 진짜 과학이라고. 우주에서 찍은 지구 사진들도 덩달아 부정당했다.

2014년 세계 최대의 이슬람 종교 사이트 ‘IslamQA.Info’는 가르침을 게재했다. 육신의 감각은 완벽하지 않으니 평면지구론은 잘못된 것이라고. 이 사이트는 사우디아라비아 고위 성직자 알무나지드가 철저히 관리하던 곳인데, 그는 사우디 왕정이 2017년 체포할 만큼 꽉 막힌 극렬 수니파 근본주의자다. 그런 자가 보기에도 육신의 체험만으로 땅을 재단하는 일은 너무나 좁고 꽉 막힌 태도였다. 우리는 땅이 내 한 몸이 직접 경험한 것들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거대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과학사학자

서울대 물리학과 학사,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석·박사. 가톨릭대를 거쳐 동국대 다르마칼리지에서 고전 읽기와 교양과학 강좌들을 맡고 있다. 물리학사에서 출발해 과학기술문화사로 관심을 넓히고 있다.


■ 용어설명

역법(曆法)
주요 천체의 운행을 계산하고 예측하는 방법. 달력을 만들 때 활용되기 때문에 자주 달력으로 오인된다. 고대문명들은 기원전에 이미 일월 및 오행성의 운행을 계산하는 역법 체계를 만들었다. 대체로 일곱 천체가 기준연도(曆元)의 기준일시에 측정된 위치에서 출발해서 일정한 주기로 반복 운동한다는 식으로 계산했다. 달과 태양은 물론 오행성의 주기들도 정수배로 떨어지지 않고, 황도(태양이 움직이는 길)와 백도(달이 움직이는 길)도 다르기 때문에 세월이 흐르면 오차가 누적된다. 재관측과 재계산은 엄청난 일이기 때문에 동서를 막론하고 왕업으로 여겨졌다. 세종 때 완성한 ‘칠정산(七政算)’은 일월식은 물론 달이 오행성을 가리는 현상까지 시각과 위치를 계산했다. 1만 원권 뒷면의 혼천의는 칠정(七政·일월 및 오행성)의 위치(동서 및 상하 각도)를 측정하는 장비였다.

베드포드 실험
벤저민 로바텀은 1838년 베드포드 운하에서 망원경으로 9.7㎞ 떨어진 작은 보트를 관측하는 데 성공했다. 현재도 유사 실험들이 평면지구론의 증거랍시고 제시된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지구의 곡률만 따진다면 수평선에 가려서 보이지 않아야 할 물체가 실제로 관측되는 현상은 원래 흔하다. 공기 중에서 빛이 굴절되기 때문이다. 춘분날 낮이 밤보다 약간 긴 현상이나 신기루, 아지랑이 등등이 같은 원리로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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