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원숭이’ 폭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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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준 논설위원

인도네시아령 서(西)뉴기니에서 23일 대규모 소요 사태가 발생해 최소 32명이 숨지고 70여 명이 다쳤다. 이번 사태는 인도네시아 본토 출신의 한 고등학교 교사가 서뉴기니 원주민 학생에게 ‘원숭이’라고 했다는 얘기가 퍼지면서 촉발됐다. 서뉴기니 원주민은 원숭이로 불리는 것을 극단적으로 혐오하는데, 이는 일부 인도네시아인이 ‘원주민은 인간이 아닌 원숭이로 분류해야 한다’는 인종 멸시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이번 원숭이 발언은 가짜뉴스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사태는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원숭이 망언으로 인한 충돌 사태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달 28일에도 대규모 시위로 최소 3명이 사망했는데, 당시 시위대는 독립을 상징하는 샛별을 얼굴에 그리고 ‘나는 원숭이가 아니다’라는 팻말을 들었다. 이 시위는 인도네시아 독립기념일인 지난달 17일 인도네시아 국기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서뉴기니 출신 대학생 43명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경찰이 원숭이라 부르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유포되면서 일어났다.

호주 북쪽에 위치한 뉴기니 섬의 서부는 네덜란드령, 동부의 북쪽은 독일령, 동부의 남쪽은 영국령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호주군이 독일령을 점령해 호주령으로 만들었으며, 이후 영국령과 합쳐져 1975년 파푸아뉴기니로 독립했다. 그러나 서부 네덜란드령은 1969년 국민투표를 거쳐 인도네시아로 귀속됐다. 이에 반발한 독립운동이 계속 이어지고 있으나, 수백 개 종족과 언어로 구성돼 있기에 정체성이 분명치 않고 단결력이 부족해 독립으로까지 이어지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특히, 조코 위도도 대통령은 서뉴기니 끌어안기에 나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2014년 집권 이후 대규모 고속도로 건설 등 적극적 유화책을 펼치고 있다. 지난 4월 대선 때 이 지역에서 90% 지지율을 획득하는 등, 자신의 정치적 주요 기반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인종주의 하면 백인우월주의를 연상하기 쉽다. 그러나 유색인종에 의한 인종차별도 만만찮다. 동남아 출신에 대한 일부 한국인의 태도에서 엿볼 수 있듯이,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진짜 원숭이 수십 마리가 떼죽음을 당했더라면, 동물보호운동 단체들이 나서는 등 이번 서뉴기니 사태보다 더 크게 보도됐을 것”이라는 현지인의 한탄이 비수처럼 폐부를 찌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