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보통의 연애’라는 영화제목을 보며 새삼 느꼈다. ‘제목 하나 짓는 게 보통 일이 아니겠구나.’ 수많은 후보 중 아마도 ‘보통의 연애’가 채택 일보 직전까지 갔을 거다. 인쇄에 들어가야 하는데 마지막에 누군가 ‘이게 가장 좋은 제목일까’ 질문을 던졌을 거다. 바로 그때 ‘가장’이라는 단어가 불현듯 빛을 발했고 마침내 그 단어는 포스터로 날아가 힘차게 앞자리에 꽂혔으리라.
영화제목 하나 가지고 왜 새삼스럽게? 그래서 묻는다. 우리는 언제 새삼스러울까. 잘 알고 있는 사람에 대해 느껴지는 감정이 갑자기 새로워질 때 “너 그런 사람이었어?” 아주 오래된 연인 사이에 이런 말이 나온다면 그건 이별의 수순에 들어간 걸로 봐도 무방하다. 상대에 대한 실망감 뒤에 자책감이 뒤따르는 것도 당연하다. “내가 그런 사람이었나?”
우리는 우리를 평생 모르고 산다. 그래서 음악동네 뉴스도 절반은 사랑이고 절반은 이별이다. ‘나보다 더 나를 사랑했던 그대가/ 왜 나를 떠나야 했는지/ (중략) 내 모습이 정말 싫어요/ 또 다른 사람을 찾아야 하나요’(양수경 ‘이별의 끝은 어디인가요’ 중) 보통 이별의 끝에 ‘통보’가 있다면 뉴스의 끝엔 ‘예보’가 있다. 내일 비가 온다면 우산을 준비하고 태풍이 온다면 외출을 삼간다. 그런데 예외가 있다. 내일 지진이 발생하니 어떻게 대비하라는 경고를 들어본 기억이 있는가.
영화 얘기로 돌아가자. 상영 중인 ‘예스터데이’는 비틀스의 명곡을 재료로 만든 유별난 상상의 소산이다. 내용을 보면 과거에 있었거나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지구상에 엄청난 일이 벌어졌지만 기억하는 사람은 단 세 사람이다. 나머지 사람들은 그걸 잊은 걸까, 아니면 잊은 척하는 걸까. 그것도 아니면 그 세 사람이 사이좋게 미친 걸까.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주철환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노래채집가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걸까. 내 머릿속의 지우개가 한 가수의 이름을 풀어놓는다. 그녀의 이름은 김추자. 불멸의 히트곡은 ‘거짓말이야’다. ‘그대 나를 만나고/ 나를 버렸지/ 나를 버렸지/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만남과 이별 사이에 진실공방이 오가는 한 이 노래는 끝없이 미디어에 소환될 것이다.
1969년에 ‘늦기 전에’로 데뷔했으니 올해가 50주년이다. 꽤 오랫동안 나는 김추자의 포로였다. 어느 날 거짓말처럼 그녀가 사라졌다. 예능PD가 된 후 조심스럽게 전화를 걸었다. “꼭 모시고 싶습니다.” 그때 수화기를 통해 전해오던 낮고 신비한 목소리를 지금도 거두지 못한다.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네요.”
그녀가 다시 무대로 돌아오는 데는 무려 33년이 걸렸다. 나는 거짓말처럼 소년이 됐고 질풍노도에 휩싸였다. 조명 아래 그녀가 등장한 후(2014년)부터 숨죽였던 객석의 소년은 시종일관 슬펐다. 나는 내가 아니었고 그도 그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늙은 소년의 입에선 새삼스럽게 이런 말이 맴돌았다. 과거 없는 사람은 없다, 과거를 잊은 사람이 있을 뿐이다. ‘그대가 늦어지면/ 내 마음도 다시는 찾을 수 없어요’(김추자 ‘늦기 전에’ 중)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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