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마라톤 회견 ‘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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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수 조사팀장

국가 지도자라면 국민의 궁금증을 최대한 풀어줘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이 기자회견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까다로운 질문에 대답하는 기자회견보다는 일방적으로 자기 생각을 국민에게 전하는 SNS를 선호하면서 세계 지도자들 사이에 기자회견 기피증이 전염되는 경향이 보인다. 민주주의 발전에 역행하는 현상이다.

정반대로 기자회견을 악용하는 사례도 있다. 무제한 기자회견이라는 형식을 빌려 정직한 답변보다는 ‘쇼’ 스타일로 자기 입장을 선전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 조사를 촉발한 ‘우크라이나 스캔들’ 당사자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 10일 무려 14시간 넘게 ‘마라톤 기자회견’을 열었다. ‘세계에서 가장 긴 기자회견’ 신기록을 세웠다. 한 푸드코트에서 조찬으로 시작했다가 햄버거로 점심, 만찬, 밤 12시가 지난 심야의 야식 시간으로 이어졌다. “어떤 질문이든 기꺼이 무제한 받겠다”는 약속에 내외신 기자 300여 명이 몰려 그는 ‘성대 강화 주사’를 맞아가며 회견을 했다고 한다.

이전의 세계 최장 회견 기록은 벨라루스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이 2017년에 세운 ‘7시간 20분’이다. 2013년 우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8시간 6분’ 동안 TV 생중계로 국민과의 대화를 진행한 바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 TV 생중계도 길기로 유명하지만, 평균 4시간 정도였다.

우리나라의 대통령들은 기자회견을 피하려 한다. 까다로운 질문을 받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조금씩 발전해오다 최근엔 도로 퇴보하고 있다. 기자들을 들러리로 세우고 내용 없는 회견을 한다. 질문자 지명을 통해 교묘하게 ‘쇼’를 하기도 한다. 대통령은 아니지만, 조국 법무부 장관이 지난달 2일 후보자 시절 ‘인사청문회’ 대신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8시간 20분간 진행하기도 했다. ‘셀프 청문회’도 아니고 ‘쇼’였다. 이미 드러난 위선과 부도덕만 해도 도저히 장관 자격이 없다는 것이 압도적 다수 국민의 생각인데, 그래도 버틴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다짐했지만, 소통은 보이지 않고 불통만 있을 뿐이다. 기자회견은 오래 하는 것보다 정직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직하지 않은 회견은 오래 할수록 쇼의 성격이 더 강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