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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지식카페 게재 일자 : 2019년 10월 21일(月)
실존을 위한 노역?… 먹는다는 건 혀끝에서 오는 쾌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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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고의 즐거움인 동시에 우리 ‘삶의 형식’인 식사. 키케로는 식사의 즐거움을 회식, 즉 더불어 함께 먹기라며, 이를 ‘함께 살기(convivium)’라고 불렀다. 게티이미지뱅크

■ 일상의 철학

서동욱의 세계의 산책자 - ① 먹방 시대, 식사의 철학

식사는 생명으로서 구가하는 즐거움의 표현이자 여러 가치가 배어든 ‘삶의 형식’
소리가 없고선 적막도 없듯 ‘혼밥’의 가치는 ‘함께 먹기’에서 파생되는 것


카프카의 소설 ‘굶는 광대’는 이렇게 시작한다. “지난 수십 년간 단식 광대에 대한 흥미는 매우 줄어들었다. 예전에는 단식 광대의 독자적인 연출로 큰 공연을 해볼 만했지만, 오늘에는 전혀 불가능하다.”(이주동 옮김) 왜 관객은 굶는 광대를 외면했나? ‘관객이 지금 모두 유튜브 앞에서 먹방을 시청하고 있는 까닭이다’ 라고 소설에 한 문장 덧붙이고 싶은 욕구를 참기 어렵다. 속물들에게 등을 돌리고 혼자 구도자의 길을 가는 굶는 예술가의 시대는 가고, 만개의 눈을 따라다니는 먹는 예술가(?)의 시대가 온 것인가? 공중파를 점령한 요리 프로, 맛집에 대한 미신적 추종, 먹방 BJ의 폭증 앞에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먹는다는 것은 어떤 행위인가?

먹는 일이 늘 존중받는 것은 아니다. 철학자 들뢰즈는 먹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귀찮은 일이라고 내던져 둔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음식인 골, 골수, 혀는 문자 그대로 삼위일체라고 한다. 골은 중심에 있으니 성부, 골수는 골이 뻗어 나간 것이니 성자, 혀는 복음을 전하니 성령. 이 괴상한 표현을 존중하자면 먹는 일에는 생리화학 작용 이상의 ‘정신성’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먹는 일에 대한 아름다운 성찰을 담은 유르스나르의 소설 ‘하드리아누스의 회상록’은 식사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하루 두세 번 수행되고 또 생명에 양식을 공급하는 데 목적이 있는 그 작업은 당연히 우리가 모든 정성을 기울일 가치가 있다.”(남수인 옮김) 물질적 요소와 오감의 완벽한 결합에서 성사되는 매끼 식사란 세계가 여전히 우리를 허용하고 있음을 알리면서 우리 존재에게 생명의 풀무질을 해주는 까닭이다.

먹는 일과 관련해 내게 떠오르는 것은 유튜브보다 훨씬 먼저 만들어진 ‘문학적 먹방’ 장면 둘이다. 하나는 라블레의 먹방이고 다른 하나는 마르케스의 먹방, 전자는 긍정적이고 후자는 부정적이다. 그런데 이 두 장면은 이후 우리 시대에 이르기까지 모든 형태의 먹방을 요약하고 있다.

마르케스의 ‘백 년 동안의 고독’에 나오는 아우렐리아노 세군드는 방탕한 인물인데, 이 방탕함이 과도한 먹기 내기, 오늘날 표현대로 하자면 ‘푸드 파이트’로 이어진다. 그는 ‘코끼리 여자’라는 별명의 무서운 푸드 파이터를 만나 이틀간의 마라톤 대결 끝에 죽음 직전까지 가는 참교육을 받는다. 생명체로서 좋건 싫건 받아들여야 하는 우리의 운명, 즉 다른 생명의 희생을 몸 안에 영접하는 일이 놀이가 될 수 있는 걸까? 목숨의 심지를 떠받치고 있는 기둥인 식사는 놀잇감이 되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자신의 성스러움을 주장한다.

이렇게 식사는 경박한 놀이가 되는 것은 거부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즐거움’을 본질로 삼고 있다. 라블레의 유쾌한 먹방은 먹는 행위 속에서 최상급으로 구현되는 생명력에 대한 찬가라 할 만하다. ‘가르강튀아’의 주인공들은 요즘 우리들처럼 곱창을 좋아한다. “똥껍데기는 정말 풍미가 좋아 누구나 손가락을 핥을 지경이었다. 그녀는 큰 통으로 열여섯 통, 중간크기로 두 통, 그리고 여섯 단지를 먹어치웠다. 얼마나 멋진 똥들이 그녀 뱃속에서 들끓고 있었겠는가! 식사가 끝나자 모두 어울려 버드나무 우거진 들판으로 갔다. 풀밭에서 다들 흥겨운 피리 소리와 감미로운 백파이프 소리에 맞춰 춤을 췄다. 그들이 이리 재미있게 노는 모습을 바라보자면 천상의 즐거움이 따로 없었다.” 곱창이 받은 역대 최고의 찬가라 할 만한 이 구절의 진정한 의미는 병원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던 말년의 카프카 모습을 겹쳐 떠올릴 때 비로소 드러난다. 죽음을 앞둔 카프카는 아버지와 함께 갔던 수영장과 거기서 소시지와 맥주를 먹으며 누렸던 왕성한 식욕을 그리워했다. 그렇다. 죽는 일은 단순하다. 그것은 더 이상 소시지와 맥주를 먹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지상에서 생명이 즐거움 속에 스스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일이란, 라블레의 주인공처럼, 수영장의 카프카처럼 자연으로부터 받은 선물인 먹는 일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런 뜻에서 먹는 일은 혀끝의 쾌락을 속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자부하는 바와 달리, 단순히 우리 몸에 ‘주유(注油)’하는 일이 아니다. 철학자 레비나스는 ‘전체성과 무한’에서 말한다. “먹을거리에 대한 염려는 실존을 위한 염려에 매여 있지 않다. 실존에 대한 무염려, 이것은 세계의 먹을거리들에 이빨을 드러내고 깨무는 데서, 풍요로운 세계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데서 성립한다.”(김도형 외 옮김) 우리의 나날은 실존하는 일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 차 있다. 불투명한 미래와 깜박이는 전구 같은 건강에 대해 걱정하며, 투자금의 회수에 대해 불안해한다.

목숨이라는 산소호흡기로 살아 있는 나라는 존재는 식사를 통해 유지되니, 먹는 일도 실존에 대한 염려 아닌가? 먹는 일은 존재하기 위한 연료 공급이 아닌가? 그러나 “먹을거리에 대한 욕구는 실존이 아니라 그 먹을거리를 목표로 삼는다.” 우리는 탈수증을 염려해서 물을 마시기보다는 시원한 감각이 좋아서 물을 마신다. 활동하기 위한 연료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혀끝에 호소해 오는 맛 때문에 야채와 고기를 깨물어 본다. 요컨대 우리는 존재 유지에 골몰하기에 음식을 섭취하는 것이 아니며, 혀가 즐겁기 때문에 음식을 입으로 가져가는 것이다. 그러기에 식사는 존재 유지를 위한 노역의 일부가 아니라, 이 노역으로부터 잠시 풀려나서 갖는 휴식과 쾌락이 된다. 일터에서의 점심시간이 단지 노동을 위해 사료통의 모이를 쪼는 시간이 아니라, 즐거운 휴식인 것처럼.

이 즐거움은 음식을 흡수하는 우리 감각으로부터 유래하는 것이므로, 음식 자체의 사회적 지위, 즉 얼마나 사치스러운지, 얼마나 유명한 요리사가 만들었는지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하드리아누스의 회상록’에 나오는 포도주 맛에 대한 묘사는 이를 잘 설명하고 있다. “포도주는 우리에게 땅의 활화산 신비를, 숨겨진 광맥의 풍요를 맛보게 한다. 그러나 로마의 일련번호가 붙은 포도주 저장고에서 꺼내온 사모스는 더 이상 그와 같이 순수한 맛이 아니고, 나는 유명 포도주 감정가들의 현학적 설명이 짜증스럽기만 하다. 그보다 더욱 경건하게, 손바닥으로 떠올려 마신 샘물 한 모금이나 샘에 입을 대고 들이마신 물 한 모금은 우리 몸 안에 땅의 가장 비밀스러운 소금과 하늘의 비를 흘러들게 한다.”

나아가 식사는 우리가 생명으로서 구가하는 즐거움을 표현할 뿐 아니라, 여러 가치가 배어든 ‘삶의 형식’ 그 자체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스피노자의 식단은 수년간 조심스럽게 다듬어진 이 철학자의 간소한 삶의 형식이다. 그는 하루 식사로 3센트에 해당하는 버터로 만든 우유 수프, 1.5센트짜리 맥주 한 병, 어떤 날은 4센트와 8페니에 해당하는 건포도와 버터로 만든 묽은 죽만을 먹었다. 이 식사는 스피노자의 절제된 삶의 초상화 그 자체다. 하지만 주저 ‘에티카’에서 음란한 상상을 건조한 라틴어로 멋지게 기록한 이 철학자를 결코 쾌락에 대해 무지한 사람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진정한 미식을 모르는 사람만이 음식이 주는 즐거움과 사치를 혼동하고, 검소함과 금욕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런데 스피노자 이전에, 식사가 삶의 성찰과 훈련을 표현하는 형식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이들은 스토아 철학자들이다. 네로 황제의 스승이기도 했던 세네카는 말한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은 수많은 하인이 준비하고 지켜보고 여러 날 전에 주문한 여러 손이 차려주는 음식이 아니라, 간단하고 어디서나 차려낼 수 있고 공들이거나 값비싸지 않고 지갑에도 몸에도 부담스럽지 않으며 들어간 길로 도로 나오지 않을 정도의 음식이라네.”(천병희 옮김) 합리적인 간소화에 대해 많이 연구한 어떤 기업의 외식 사업 기획서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구절은, 세네카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단번에 알려준다.

그런데 도대체 어떤 식사가 삶의 완벽한 형식이 될 수 있을까? 우리는 허기 때문에 괴로워하고 또 과식 때문에 괴로워한다. 자신이 가야 할 적절한 길에 대한 무지한 욕심은 삶의 만족으로, 식사의 즐거움으로 귀착하기보다 과식과 허기의 고통에 가닿는다.

고대 이래 사람들은 너무 큰 옷이나 작은 옷처럼 삶을 겉도는 형식이 아니라, 삶 자체와 일치하는 형식으로서 식사에 대해 사색했다. 가령 소크라테스는 철학에서뿐 아니라 식사에서도 현명했다. 플라톤은 ‘향연’에서 소크라테스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참전했을 때의 모습을 이렇게 기록한다. “전쟁터에서 흔히 있는 일입니다만, 어떤 곳에서 우리는 포위돼 식량 없이 지내지 않으면 안 됐을 때 아무도 이 분만큼 잘 참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러다가도 음식이 많고 재미있게 지낼 만한 때에는 이 분만이 그걸 참으로 즐길 수 있는 사람이었어요.”(최명관 옮김)

여기서 플라톤은 쉽게 들리지만 많은 연습이 필요한 매우 어려운 먹기의 기술(art)을 제시하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상황이 대지로 하여금 자신의 두꺼운 지갑을 열지 못하도록 할 때, 존재란 겸손한 허기와 인내로 대지의 인색함에 경의를 표하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을 찾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대지가 수확을 허락할 때는, 풀이 비를 머금듯 최대한 식사의 행복을 누리려 했다. 부여잡을 수 없는 쾌락이 그리워 애통해하지도 않지만, 쾌락의 기회가 주어지면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삶은 요람에 눕듯 식사라는 형식 안에 둥지를 틀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어쩌면 우리가 지금껏 이야기하지 않은 식사의 또 다른 즐거움을 시험해 보는 일이 중요할지도 모르겠다. 키케로는 식사의 즐거움을 회식, 즉 더불어 함께 먹기에서 찾고, 이를 ‘함께 살기(convivium)’라고 불렀다. 혼밥 시대에 함께 살기는 여전히 즐거운 일인지? 애초에 혼자인 자는 고독을 알 수 없다. 타인과 더불어 있음이 전제될 때 더불어 있음의 결여적 양식인 고독의 가치가 출현하는 까닭이다. 그렇다면 혼밥의 가치 역시 ‘함께 살기’에서 파생되는 것이리라. 소리가 없고서는 적막도 없는 것처럼 공동체 안에 있지 않고는 고독의 즐거움도 없다. 나는 혼자일 때도 타인과 더불어 있는 것이다.

서강대 철학과 교수

벨기에 루뱅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서강대 철학과 교수로 있다. 현대철학을 주로 연구하며, 시인·비평가로도 활동 중이다. ‘차이와 타자’ ‘들뢰즈의 철학’ ‘일상의 모험’ ‘철학연습’ ‘생활의 사상’ 등을 썼다.


■ ‘오디세이아’의 밥 먹는 영웅들

인류가 지혜를 길어내는 가장 오래된 노래 가운데 하나가 ‘오디세이아’이다. 영웅들의 이야기라지만, 내가 보기엔 ‘생활의 사상’ 책이 맞는다. 한 인물은, 우리에게 늘 소중한 것은 잔치와 춤과 새 옷으로 갈아입기와 따뜻한 목욕과 잠자리라고 말한다. “이윽고 먹고 마시는 욕망이 충족됐을 때”와 같은 표현도 반복된다. 영웅들은 결국 식사하는 자들이다. “내가 아무리 괴롭더라도 지금은 저녁을 들게 해주십시오.……배(腹)란 녀석은 내가 지금 이렇게 마음이 슬픈 것처럼 사람들이 몹시 지쳐 있고 마음이 슬플 때도 자기만 생각해달라고 명령하고 강요하지요.”(천병희 옮김) 인간은 식사와 잠이라는 바다가 요동치지 않아야 겨우 거기 떠서 조금 제 갈 길을 가는 잎사귀만 한 배 한 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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