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nterview 소신 >박용진 “미안하지만 86세대는 기회 다 써… 변화 활시위 당기는 일 하겠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파이팅’을 외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낙중 기자

■ ‘입바른’ 초선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90년대 학번 여당 의원… ‘사립 유치원’폭로·조국 비판 등 국감서 스타 부상

국회의원 한 명이 이 악물면 긍정 변화 만들 수 있어
느려도 野와 협상 계속해야… 그것이 정치 자체의 속성
대정부질문 매주 할 필요… 밥값 제대로 하는 국회 돼야

‘공정’의 다른 말은 ‘엄정’… 법, 누구에나 똑같이 집행돼야
기회의 사다리 축소된 게 우리 교육제도 가장 큰 문제
민생 민주주의 보여줄때… 2030에게 과감히 기회 줘야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역대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는 20대 국회에서 매우 주목받는 초선 의원 중 한 명이다. 불투명한 사립 유치원의 운영 문제를 폭로하고, 알려지지 않았던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차명계좌 존재를 밝혀내 ‘국정감사 스타’로 떠올랐다. 오랜 기간 원외 정치인으로 활동하면서 현안에 대한 날카로운 논평으로 유명했던 그는 초선 의원이 된 후 의정활동 능력을 증명하는 데 집중했다.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전남대병원의 채용 비리 의혹을 제기하면서 변함없는 활약을 이어간 박 의원을 국감이 끝난 직후인 22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났다. 박 의원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퇴와 관련해 “너무 긴 시간이 걸렸다”, 당 안팎에서 퇴진론이 제기되고 있는 ‘86세대’(80년대 학번, 60년대 출생)에 “기회가 소진됐다”며 거침없는 발언을 이어 갔다.

―만 29세였던 2000년 국회의원 선거에 처음 출마한 이후 천신만고 끝에 국회의원이 됐는데 국회의원 생활을 스스로 어떻게 평가하나.

“적성에 맞고 정말 재미있다. 지역활동도 재미있고, 의정활동도 재미있다. 국회의원은 정치 면허증이라고 생각한다. 정치 면허증을 통해서 법을 바꿀 수 있고, 사회적 제도를 제안할 수 있고, 또 예산을 통해서 다양한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네 차례 국정감사를 통해서 확인했지만, 국회의원 한 명이 이를 악물고 늘어지면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밖에 있을 때는 무엇을 개선하라고 요구만 했는데 지금은 지적하고 바꿔낼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차이다.”

―한편에서는 우리나라 정치가 지나치게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이 많다. 박 의원의 대표적 법안인 ‘유치원 3법’도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정치 자체의 속성이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은 이제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의 ‘나를 따르라’ 식으로는 운영되지 않는다. 자유한국당을 지지하는 국민이 있으면 그들의 의견도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법이 통과될 때 소요되는 시간은 비용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지금 야당이 정치 협상을 하지 않고, 절차와 과정이 느린 게 속상하긴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협의하고 협상해야 한다.”

―국회가 바뀔 때마다 최악의 국회라는 말을 듣는데 어떤 게 바뀌어야 하나.

“정치는 구조적으로 비효율적인데 우리 정치는 저비용, 저효율이다. 전체 예산이 500조 원이 넘지만, 국회 1년 예산은 6000억 원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국회의원이 국정감사 때 피감기관 세금 낭비 한 건만 제대로 잡아내도 50억 원 이상이 왔다 갔다 한다. 의원 수도 더 늘리고 상임위도 더 쪼개서 1년 내내 상시 국감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자료 요구권, 증인 출석 요구권을 확실히 보장하고 대정부 질문도 매주 해야 한다. 국민도 좀 너그럽게 보고 밥값 제대로 하는 국회의원 숫자가 늘어날 수 있게 해야 한다.”

―정책보다는 정치, 정무 분야에 강점이 있다고 봤는데 박 의원의 초선 활동이 좀 의외였다. 당직도 거의 맡지 않고, 정책 행보에 집중했다.

“국회의원이 되면서 전략적 선택을 했다. 당 운영에 참여할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이슈 참여형 정치는 지양하기로 했다. 박용진이 정책적 실력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다. 그래서 정무위원회를 선택해서 갔고, 자의가 아니게 교육위원회로 옮겼지만, 정책적 노력에 최선을 다했다. 민생 정치에서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면 반짝 나타났다 사라지는 정치적 인물로 끝날 수 있다.”

박 의원은 정무위원회 활동 시절 새로운 ‘삼성 저격수’로 불렸고, 당론이었던 인터넷전문은행 금산분리 규제에 끝까지 반대하면서 당 원내 지도부에 의해 교육위원회로 강제 전보당했다. 원치 않는 상임위 변경이었지만, 그는 사립 유치원 문제를 파헤치면서 20대 국회 최대 ‘히트작’을 만들어 냈다. 박 의원이 교육위에서 가장 절감한 것은 우리 사회가 공정하지 않다는 인식이었다. 조 전 장관 딸의 고교 시절 논문 제1저자 등재 문제가 불거지자 그는 문제가 커지고 있음을 직감하고 “최악의 상황이 올 수 있다”며 당 지도부를 향해 경고의 목소리를 가장 먼저 보냈다.

―박 의원이 생각하는 공정은 무엇인가.

“정치권에서 공정이란 말이 난무하는데 공정을 설명하기 위해 많은 미사여구를 동원한다. 그렇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 공정은 엄정이다. 법을 만들고 적용할 때 엄정해야 하고, 결과가 엄정함에서 벗어난 게 있으면 엄한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불공정은 망국으로 가는 길이다. 사회 공동체 구성원들이 내 희생에 대한 대가, 내 노력의 반대급부를 생각했을 때 기준이 엄정하게 잘 지켜져야 한다. 이런 기준이 잘 지켜지지 않으면 나라를 위해 병역의무를 이행하고 세금을 내는 등 의무를 다할 사람이 점점 사라지고 나라는 망한다.”

―공정과 관련해서 최근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대입 수시, 정시 비율이다. 정시를 확대하면 소외 계층 배려가 줄어드는 등 오히려 더 공정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우리가 교육 분야에서 가장 기대하는 것은 기회의 사다리다. 그런데 교육이 그런 역할을 못하고 기회를 축소하는 역할을 했다. 부모의 재산이나 사회적 능력으로 인해 부나 사회적 지위가 대물림되는 현상은 혁명 대상이다. 수시가 사회적 불평등을 완화한다는 통계나 조사 결과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국민의 정시 확대 요구 목소리가 높은 것은 경험 때문이다. 과거에도 과외, 학원 등으로 실력을 쌓는 방법이 있었지만, 가난한 학생도 교과서와 참고서만 가지고 경쟁할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 특성화 교육을 하고, 창의성을 높이는 교육을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데 지금 대입과 관련된 공정성만 떼놓고 보자면 현재 방식이 과거 학력고사 때보다 낫다고는 자신할 수 없다. 부모의 능력이 가장 중요한 교육 과정이 된 것이다.”

―공정은 조 전 장관의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최대 화두가 됐다. 조 전 장관의 사퇴와 임명 과정은 어떻게 봤나.

“사퇴까지 생각보다 너무 오래 걸렸고, 사퇴는 뜻밖으로 너무 갑작스러웠다.”

―당내에서는 검찰 수사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더 많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검찰개혁의 1번은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는 것이고, 문재인 대통령도 윤석열 검찰총장을 임명하면서 이 부분을 신신당부했다. 그래서 검찰의 일에 대해 과도한 정치적 해석을 하고 압력을 넣는 건 적절치 않다. 두 번째로 검찰이 우리 사회의 최종 심판자 역할을 해선 안 된다. 과거의 일을 다루는 사법부가 미래의 일을 다루는 입법부의 영역으로 와서 최종 심판을 보려 하면 안 된다. 권한을 통제하고 분산시킬 필요는 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를 통한 제도적 압박을 통해 권력 분산을 시도하는 것은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정책 능력을 입증하는 데 노력했지만, 박 의원은 당내에서 ‘입바른’ 소리를 하는 초선 의원으로도 각인됐다. 당 주류인 이른바 ‘친문’(친문재인) 정치인과 거리가 멀고, 지도부 등을 비판하는 발언도 거침없이 해 지지자들로부터 ‘문자 폭탄’도 여러 차례 받았다. 박 의원은 내년 21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재선된다면 보다 적극적으로 당을 바꾸고, 정치를 바꾸는 일에 앞장서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86세대 바로 아래인 90학번으로 정치에서 이른바 ‘낀 세대’인 그는 세대교체론에 대해 강하게 주장을 펼쳤다.

―내년에 재선돼도 민생 해결 능력을 갖춘 정치인이라는 콘셉트를 유지할 것인가.

“그렇지 않다. 재선되면 조금 다르게 해 보려고 한다. 초한지에 보면 사슴 사냥이라는 말이 나온다. 빽빽한 숲에서 사슴이 뛰어갈 때는 활을 재빨리 쏘아야 한다. 잘 조준해서 쏘면 이미 사슴은 지나간 후다. 국민이 지금의 지루한 진영대립, 뻔한 인물론, 닳고 닳은 정치 문법을 지겨워하고 있다고 본다. 여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활시위를 당기는 일은 재선되면 해 보려고 한다. 활시위를 당겨야 할 때라고 생각된다면 놓치지 않을 것이다.”

―바로 위 선배인 86세대에 대해 할 말이 많을 거 같다. 86세대 퇴진론도 나오고 있는데.

“미안하지만 그분들은 자기 기회를 다 소진했다고 본다. 그 선배들이 정치권에 들어온 지 20년 정도 됐다. 아직 나이는 젊으니 기회가 더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국민은 그들이 지난 20년 동안 무엇을 했는지 평가할 것이다. 국민 대부분이 86세대에 대해 박하게 평가하는 이유는 구체적 성과가 없었기 때문이다.”

―86세대를 어떻게 평가하나.

“86세대는 1987년 6월 항쟁이 낳은 정치 세대다. 6월 항쟁과 개헌을 통해 우리 사회는 절차적, 제도적, 정치적 민주주의를 완성했다. 그런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의 역할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86세대는 절차적 민주주의, 정치적 민주주의에는 관심이 많았지만, 사회적 양극화가 점점 심해지는 가운데 정치의 본질인 민생 민주주의에 대해 탁월함을 보여 주지 못했다. ”

―민주당의 변화를 위해서는 대대적인 세대교체가 필요하다고 보나.

“민주당은 젊은 정당이 아니다. 법을 만들면 앞으로 적용하니 더 오랜 기간 적용받아야 할 사람이 총선에 더 많이 들어와야 한다. 곧 물러날 50∼70대들이 만들어 놓은 법과 체제 속에서 살면서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를 기득권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20대와 30대에게도 과감하게 기회를 주고 인재 발굴을 해야 한다.”

김병채 기자 haass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