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eadership 스타일 >박원순, 2000개 서류철 펼쳐보는 ‘Mr. 디테일’… 비전 펼칠 ‘빅 픽처’는 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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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원순 서울시장

주무관에 메일보내 현황 챙기고 직접 아이디어 내… 시민과 소통하며 ‘친절한 원순씨’ 별명도
청년수당 등 포퓰리즘 비판…‘박원순표’로 내세울만한 ‘결정적 한방’ 없어

박원순 서울시장이 최근 열린 국회의 서울시 국정감사에서 시 행정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지적을 정면 반박하며 눈길을 끌었다. 그는 지난 14일과 17일 진행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와 국토교통위원회 국감에서 야당 의원들이 감사원의 서울교통공사 채용비리 감사 결과에 재심을 청구한 시의 태도를 강도 높게 비판하자, “감사원 지적은 수용할 수 없다”며 곧바로 맞받았다. 당시 그는 “감사원 감사 결과, 일부 개인의 일탈 외에 조직적인 채용비리는 없었다”며 문제를 제기한 야당 의원들과 설전을 벌였다. 그는 각종 의혹과 논란에 휩싸인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옹호해 눈길을 끌었고, 지난 25일에는 팟캐스트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출연해 “언론의 자유는 보호받을 자격이 있는 언론에만 해당된다”며 언론에 대한 징벌적 배상제 도입을 주장해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처럼 박 시장이 이례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으며 목소리를 높인 데 대해, 정치권 안팎에선 차기 대권 주자로서 친문재인 진영에 존재감을 부각하기 위한 행보가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박 시장의 말과 행동이 차기 대권을 향해 있다는 분석이 심심치 않게 나오는 가운데 ‘박원순 리더십’을 살펴봤다.

◇디테일에 강한 ‘꼼꼼 원순’= 박 시장에 대해 ‘디테일에 강하고 꼼꼼하다’는 평가가 흔히 나온다. 그래서인지 별명도 ‘미스터 디테일’ ‘꼼꼼 원순’이다. 그가 평소 ‘악마는 디테일에 숨겨져 있다’는 말을 강조하며 일선 주무관에게까지 직접 이메일을 보내 사업 추진 현황을 묻거나 거꾸로 아이디어를 냈다는 얘기도 잘 알려져 있다. 이처럼 그의 꼼꼼한 성격을 잘 드러내는 것이 취임 후 2011년부터 모아온 2000여 개의 서류철이다. 박 시장은 정책 서류와 아이디어 메모, 신문 스크랩 등을 주제별로 정리해 서류철을 만든 뒤 이를 수시로 펼쳐보며 시정의 세세한 부분까지 챙겨왔다. 지난 2월 디지털 시장실을 조성하면서 서류철이 가득 찬 책장을 치우고 그 자리에 대형 스크린을 설치했지만, 서류철을 공관으로 옮겨 보관하며 여전히 시정에 참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박 시장은 강한 추진력과 특유의 성실함, 시민과의 적극적인 소통 노력 등을 보인다는 평가도 받는다. 꼭 해야 할 일이 있으면 밤을 새워서라도 일을 마무리하는 집요함과 끈기를 가졌다는 전언이다. 그의 주변에서는 “하루 몇 시간 안 자면서 치열하게 일을 한다”거나 “해외 출장 때도 비행기 안에서 쉬지 않고 관련 업무를 챙긴다”는 등의 목격담이 나온다. 시민단체 시절에는 바쁜 와중에도 10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여러 권 출간하거나 치밀한 업무 준비로 다른 시민운동가들과 대기업 관계자들의 감탄을 자아냈다고 한다. 시민에게 깊게 각인되는 사업이 없다는 지적도 있지만 공약 이행에 대한 평가는 그리 나쁘지 않다. 3선 시장의 경륜을 발휘하며 지난해 6월 지방선거 당선 직후 공공주택 공급, 전기차 보급 및 충전소 인프라 확충, 어르신 일자리 사업 확대 등의 부문에서 성과를 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소탈한 모습으로 시민들과 소통 노력을 보이며 ‘친절한 원순 씨’라는 별명도 얻었다.

◇“인지도는 높지만 결정적 한 방은 부족”= 3선 서울시장으로서 대중적 인지도가 높지만 대권 주자로서의 존재감은 아직 미약하다는 것이 박 시장에 대한 대체적인 평가다. 그동안 디테일에 집중하다 보니 대한민국을 어떻게 이끌지 등에 대한 미래 비전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박 시장이 생활밀착형 정책을 잘 추진했고 부정적인 면도 크게 눈에 띄지 않지만 서울시민에게 ‘박원순표’ 정책이 무엇인지 깊게 각인시켰는지는 의문이 든다”며 “시민들에게 변화를 체감시키기 위해서는 의제를 선점·주도하는 능력을 좀 더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 시장은 올해 초 라디오 인터뷰 등을 통해 “화려한 한 방보다는 도시의 내실과 시민의 삶을 바꾸는 혁신이 중요하다” “나는 시민이 행복하다면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추진해왔다”는 등 자신의 정책 성과를 강조했다.

박 시장의 일 중독자로서의 면모와 완벽주의 성향이 부하 직원들에게 큰 피로감을 안긴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 시장의 집요할 정도의 꼼꼼함과 밤낮없는 섬세한 일 처리 습관은 오래전부터 시 안팎에서 정평이 나 있다. 특히 직원이 보고하러 한번 시장실에 들어가면 수첩 한 권 분량의 지시사항을 내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경험담도 들려온다. 이런 가운데 박 시장 임기 중 서울시 공무원들이 잇달아 목숨을 끊는 사태가 발생하자 야당 의원들의 공세도 거세지고 있다. 이 같은 논란을 의식한 때문인지 최근 박 시장이 깨알 같은 지시사항을 없앴다는 말도 전해진다.

박 시장의 한계로 정치인으로서 자기 사람을 만드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점도 흔히 거론된다. 또 청년수당 등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한다거나 측근을 주요 보직에 등용하는 ‘낙하산 인사’를 일삼는다는 비판도 야당을 중심으로 제기된다.

◇역대 서울시장 리더십은= 박 시장은 차례로 무소속과 새정치민주연합, 더불어민주당 소속(2011∼2019년 현재)으로 선거를 치러 민선 최초의 3선 시장을 역임하고 있다. 이에 앞서 1995년 지방자치제도 출범 이후 조순(민주당·1995∼1998년), 고건(새정치국민회의·1998∼2002년), 이명박(한나라당·2002∼2006년), 오세훈(한나라당·2006∼2011년) 전 시장 등 4명이 민선 서울시장을 지냈다. 이들 모두 시대가 필요로 하는 자신의 강점과 리더십을 앞세워 서울시장으로 당선되는 영예를 안았다. 박 시장과의 차이는 무엇일까.

조순 전 시장은 유학자형의 ‘따뜻한 리더십’이 특징으로 꼽힌다. 1995년 선거 때는 경제전문가로서의 이미지를 최대한 강조하며 ‘경제시장 조순, 서울을 바꿉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전면에 내걸었다. 다른 후보들이 당시 화두였던 환경과 교통 이슈에 집중했던 반면 조 전 시장은 끝까지 ‘경제시장’ 이미지를 고수하는 차별화 전략을 통해 승리를 거머쥐었다. 자신의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직원들을 배려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고건 전 시장은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는 관료 스타일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행정의 달인’이라는 별명이 있다. 선거 당시에는 ‘서울은 고건, 서울 전문가 고건’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앞세웠다. 1997년 말 터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사태로 국가적 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강력한 리더십을 부각하기보다는 위기 속 관리자형인 ‘서울 전문가’라는 점을 적극 내세웠다. 직원들에게는 언제나 철두철미하게 흐트러짐 없는 모습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명박 전 시장은 저돌적으로 돌진하는 ‘코뿔소 리더십’으로 눈길을 끌었다. 그는 선거 당시 ‘일 잘하는 경제시장’을 자처하며 유권자를 공략했다. 이와 함께 ‘성공한 샐러리맨’ ‘샐러리맨 신화’ 등의 구호와 선거 전략으로 긍정적 이미지를 굳혀갔다. 토건에 집착한다는 비판도 있지만 시장으로 당선된 뒤에는 현재 청계천을 복원해 호평을 받았다. 직원들이 실수를 저질러도 “일부러 그랬겠냐”며 관대한 모습을 보였다는 일화가 있다.

오세훈 전 시장은 세련된 외모와 언변으로 ‘젊은 문화시장’ 이미지를 구축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과 시민단체(오세훈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박원순은 참여연대 출신) 경력이 겹치며, 박 시장과 가장 유사한 리더십을 보인 것으로 평가된다. 2006년 선거 때는 ‘맑은 서울, 매력 있는 서울’이라는 구호 아래 문화발전 및 균형발전, 뉴타운 개발을 통한 강북의 발전 등을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다. 2010년에는 ‘일 잘하는 젊은 시장’을 캐치프레이즈로 강조했다. 당시 강남·서초·송파 등 강남 3구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 재선에 성공했다. 직원들 사이에서는 고집 센 독불장군 이미지와 함께 솔선수범해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평가가 나온다.

◇차기 대권 가능성은= 2017년 민주당 대선 경선에 출마했다 중도 포기한 박 시장은 여전히 여권의 ‘잠룡’으로 꼽힌다. 3선 서울시장으로서 정치적 위상이 높지만, 여권 차기 대선주자 후보군 중에선 아직 이낙연 국무총리, 이재명 경기지사에게 밀린다는 평가가 많다. 실제 지난 4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여론조사(95% 신뢰 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에 따르면, 차기 정치 지도자 선호도에서 박 시장은 3% 지지율로 이 총리(22%),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17%),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공동대표(7%), 이 경기지사(7%) 등에게 뒤진 순위를 기록했다.

정치권 안팎에선 박 시장이 지지율 침체 국면을 돌파하기 위해선 생활복지 등 시정 성과보다는 이슈 파이팅으로 정국 주도권을 높여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권순정 리얼미터 조사분석본부장은 “대권 레이스가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았고, 지지율과 별개로 민주당 내 구도에서도 박 시장이 그리 나쁜 상황은 아니다”면서도 “그러나 시민들로부터 대통령감이라는 인정을 받기 위해선 보다 강력한 메시지와 리더십으로 주목받아야 하며, 친절한 이웃집 아저씨의 이미지도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박 시장이 의지를 갖고 추진하고 있지만 아직 성과가 지지부진한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과 제로페이 등 박원순표 대표 정책의 성패 여부도 대권 가도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칠 것이란 분석도 제기된다. 아울러 내년 총선을 앞둔 가운데 민주당 내에서의 입지 강화도 박 시장의 당면 과제로 꼽힌다.

최준영 기자 cjy324@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