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에 트로트 열풍을 몰고 온 가수 송가인(위 사진·팬클럽 AGAIN 제공)과 ‘유산슬’이라는 예명으로 트로트계에 발을 디딘 방송인 유재석(중간). 젊고 외모가 출중한 씨름 선수들은 KBS 2TV 예능 ‘태백에서 금강까지 씨름의 희열’을 통해 씨름 부흥에 앞장선다.
■ 뜨거운 트로트 신드롬
올 최고 히트상품된 송가인
트로트 시장 전체 부흥시켜
유재석도 가세해 인기 견인
■ 씨름계 아이돌의 탄생
외모까지 뛰어난 선수 등판
황찬섭 경기영상 조회 폭발
지상파 서바이벌 예능 진출
요즘 ‘트로트계의 아이돌’ ‘씨름계의 아이돌’이라는 표현이 심심치 않게 쓰인다. 트로트와 씨름, 왠지 진부하고 고루하다는 느낌을 주는 전통적인 문화 콘텐츠에 ‘아이돌’이란 수식어가 붙는다는 건 의미심장하다. 실제로 트로트와 씨름은 최근 10∼20대 사이에서도 빈번하게 소비되고 있다.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트로트, 송가인이 끌고 유재석이 밀다 =오디션 프로그램 ‘미스트롯’에 출연해 우승을 거머쥔 송가인은 2019년이 낳은 최고의 히트상품으로 꼽힌다. 요즘 축제나 섭외 ‘1순위’다. 그는 홀로 ‘뜬’ 것이 아니라 트로트 시장 전체를 부흥시켰다. 송가인의 인기와 더불어 ‘미스트롯’ 출신 가수를 비롯해 타 트로트 가수들의 주가도 상승했다. 한 공연기획사 대표는 “가창력이 뛰어난 트로트 가수들은 입담이 좋고 특유의 너스레로 분위기도 띄워준다”며 “현장 반응에 따라 앙코르곡도 많이 불러주니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트로트 열풍은 전방위로 뻗어 나갔다. ‘무한도전’으로 유명한 김태호 PD가 방송인 유재석과 손잡은 MBC ‘놀면 뭐하니?’는 요즘 트로트에 빠졌다. 유재석은 트로트 데뷔곡 ‘합정역 5번 출구’를 준비하며 ‘유산슬’이라는 예명도 얻었다.
트로트를 중장년층의 전유물로 치부하는 것에 대한 불편한 시선도 있다. 불과 30년 전만 해도 트로트는 세대를 초월해 모두가 흥얼대는 ‘최신’ 유행 콘텐츠였기 때문이다. 1990년대만 해도 김수희의 ‘애모’, 신신애의 ‘세상은 요지경’, 김정수의 ‘당신’ 등 트로트로 당대 최고 인기 순위 프로그램이었던 KBS 2TV ‘가요톱텐’에서 정상을 차지했다. ‘찰랑찰랑’ ‘당신의 의미’ 등으로 유명한 이자연 대한가수협회장은 “과거에는 트로트 가수들이 지금의 아이돌과 같은 위치에 있었다. 지금의 K-팝 가수들이 10대에 데뷔하듯 적잖은 트로트 가수가 10대 때부터 활동했는데, 과연 이들이 부른 트로트를 ‘어른들의 노래’라고만 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하며 “트로트가 하나의 장르이듯 다른 장르의 음악이 인기를 얻으며 트로트가 주춤한 적은 있지만, 한민족의 한을 담은 구성진 가락과 공감할 수 있는 가사를 가진 트로트는 항상 사랑받아왔다”고 설명했다.
트로트의 부침이 심한 이유는 ‘시스템의 부재’와 ‘작은 파이’ 탓이다. K-팝이 단단한 프로듀싱 체제하에서 성장한 반면, 트로트는 체계적인 육성 프로그램이나 매니지먼트가 부족하다. 이 때문에 선순환이 이뤄지지 않고 송가인과 같은 ‘깜짝 스타’가 시장을 부흥시켜주길 기대할 수밖에 없다. 또한 연말이나 축제 시즌을 맞아 열리는 몇몇 행사를 빼면 트로트 가수가 설 자리는 많지 않다. K-팝이 해외 시장을 개척하며 산업화, 거대화된 것과 비교되는 지점이다. 시장이 정체에 빠지다 보니 이를 지키려는 몇몇 기성 가수의 텃세도 만만치 않다. 이처럼 신인들이 쉽게 자리를 잡을 수 없는 구조니 새로운 스타 탄생도 어렵고, 파이 역시 더 이상 커지지 못한 셈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아이돌 가수 출신인 노지훈, 강남을 비롯해 방송인 김영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던 이들이 트로트 가수로 도전장을 내고 있다. 트로트 시장으로 진입하는 문이 넓어진 것이다.
◇씨름, 통쾌한 뒤집기 한판승 = 이만기, 이준희, 이봉걸, 강호동이 이끌던 민속씨름은 ‘명절에나 보는 스포츠’로 전락했다. 하지만 묘한 상황이 벌어졌다. 씨름선수들의 대결이 외면받는 반면, 명절 때마다 돌아오는 MBC ‘아이돌육상선수권대회’에서 아이돌 가수들이 벌이는 씨름 대결은 10대 팬들의 높은 관심을 받았다. 이와 관련된 기사에는 ‘씨름이 이렇게 재미있는 스포츠였나’라는 댓글이 붙는다. 결국 스타의 부재가 씨름의 인기 하락으로 이어졌다는 결론에 이른다.
최근 연예인 뺨치는 외모를 자랑하는 씨름 선수들이 속속 등장하며 씨름판에 새바람이 불고 있다. 그리고 바람의 시작은 유튜브였다. 지난해 열린 ‘제15회 학산배 전국장사 씨름대회’ 단체전 결승에서 맞붙은 김원진 선수와 황찬섭 선수의 경기를 담은 동영상은 이미 조회 수 200만 건이 넘었다. 지난 8일 ‘제100회 전국체육대회’ 씨름 경장급 준준결승전이 열린 경기장에는 적잖은 젊은 여성 관객이 눈에 띄었다. 선수들을 응원하는 플래카드와 피켓이 등장하는 등 아이돌 가수들의 공연장과 비슷한 장면이 연출됐다.
단순히 외모가 뛰어난 몇몇 선수가 씨름의 인기에 다시 불을 지폈다는 것은 오산이다. 이들이 대중의 관심을 불러오는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면, 화려한 기술 씨름은 대중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일례로 지난 9월 열린 ‘영암추석장사씨름대회’에서 임태혁 선수가 고난도 기술 씨름을 선보인 ‘이건 그냥 미친 경기다’라는 제목의 20분 분량 영상은 불과 한 달여 만에 유튜브에서 112만 건이 넘는 조회 수를 기록했다. 이런 인기에 발맞춰 KBS 2TV는 씨름을 소재로 한 서바이벌 예능 프로그램 ‘태백에서 금강까지 씨름의 희열’(가제)을 오는 11월 말 방송한다. 이 프로그램에는 이미 유튜브를 통해 아이돌급 인기를 얻고 있는 황찬섭, 임태혁 선수 외에도 내로라하는 기술 씨름으로 무장한 선수 16인이 참여한다.
대한씨름협회의 노력도 씨름 부활에 일조하고 있다. 협회는 지난해 초 체급 기준도 5∼10㎏ 정도 하향 조정했다. 이로 인해 근육질 몸매를 가진 선수들이 늘어나고 경기의 속도도 빨라졌다. 더불어 힘보다는 기술을 앞세운 경기가 많아지며 자연스럽게 씨름의 인기가 상승했다. 이에 따라 씨름판에 뛰어드는 젊은 선수들도 늘어나는 선순환이 일어나고 있다.
이승삼 대한씨름협회 사무처장은 “체급을 조정해 80∼90kg대 근육질 선수들이 많아지고 ‘힘 씨름’에서 ‘기술 씨름’으로 변모할 수 있도록 씨름판의 환경을 바꾼 것이 주효했다”고 말했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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