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eadership 클래스-김태형 >선수엔 돌직구, 전략은 변화구… 퍼펙트 우승 이끈 ‘곰탈여우’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김태형 두산 감독은 위기에 몰려도 결코 흔들리지 않으며, 그래서 ‘뚝심의 리더십’으로 불린다. 연합뉴스

■ 김태형 두산 베어스 감독

항상 개인보다 팀 최우선시
나태한 플레이에는 ‘불호령’
선수 요구사항은 최대한 수용

데이터·컨디션 면밀히 체크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결단
노력하면 누구든 기회 제공

‘아재개그’로 웃음꽃 피우며
선수와 스킨십도 잊지않아

두산 팬들에게 올해 한국시리즈 우승은 더욱 특별하다. 두산은 8월 한때 선두 SK에 9경기까지 뒤진 3위였다. 그러나 두산은 특유의 팀컬러인 ‘뚝심’으로 밀어붙였고,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짜릿한 역전 1위를 차지하며 한국시리즈에 직행했다. 기세를 올린 두산은 한국시리즈에서 키움을 시리즈 전적 4승 무패로 따돌렸다. 통산 6번째 한국시리즈 우승.

김태형(52) 감독은 ‘두산 왕조’의 설계자. 김 감독은 2015년 두산 사령탑으로 부임한 이후 매년 한국시리즈에 진출했고 3차례나 우승으로 이끌었다. 두산의 5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은 SK(6회·2007∼2012년), 삼성(6회·2010∼2015년)에 이어 역대 두 번째 최장 기록이다. 감독으로 5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은 역대 두 번째다.

흔히 김태형 감독을 ‘뚝심의 리더십’에 비유한다. 위기에 몰려도 흔들리지 않고, 추진력을 얻게 되면 가속페달을 힘껏 밟는 스타일이기 때문. 하지만 그를 ‘간단하게’ 정리할 순 없다.

김 감독은 카리스마와 소통을 번갈아 활용한다. 두 얼굴의 사나이인 셈. 두산 선수, 코치들에게 ‘김태형 감독님을 떠올릴 때 어떤 느낌이 드느냐’고 물으면 대개 “무섭다” 혹은 “엄하다”라고 답한다. 야구선수, 특히 포수 출신치고는 173㎝로 작은 편. 하지만 장악력이 뛰어나다. 그리고 선수 시절부터 지금까지 나보다 우리, 개인보다 팀을 우선했고 이를 어기는 걸 용납하지 않는다.

김 감독은 현역이던 1998년부터 2000년까지 3년 연속 주장을 맡았다. 그가 주장이었을 때의 일화. 외국인 선수이자 간판스타였던 타이론 우즈가 경기 수훈 선수로 뽑히면 받는 상금을 놓고 동료들과 충돌했다. 형평성을 고려, 출전 기회가 적은 선수들과 상금을 나눴지만 우즈는 이해하지 못했다. 자신이 잘해서 받은 상금을 왜 다른 선수에게 줘야 하느냐고 반발했다. 주장인 김태형은 커튼을 친 뒤 우즈를 불러 “앞으로 네가 받은 상금은 전부 네가 가져라. 단, 다른 선수들의 상금은 너만 빼고 나눠주겠다”고 꾸짖었다. 우즈는 김태형 선배의 불호령에 순한 양이 됐고 두산, 아니 한국야구에 적응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두산 선수단이 지난달 26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승리, 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 짓는 순간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 감독은 달변가가 아니다. 말을 길게 하는 편도 아니다. 명석한 이론가로 자신을 ‘포장’하거나, 감독이란 점을 강조하기 위해 무게를 잡는 일은 없다. 가식과는 거리가 멀기에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엔 진정성이 스며있다. 그리고 그의 따끔한 충고, 조언은 엄청난 설득력을 발휘한다. 화법이 단순명료하고, 꼭 필요한 건 절대 놓치지 않기 때문. 내야 땅볼을 때리거나, 야수가 잡기 쉬운 뜬공을 친 뒤 1루로 달리는 시늉을 하다간 “야구 그만둘래!”라는 호통이 떨어진다. 프로의 기본은 최선이라는 게 김 감독의 신념. 어떤 상황에서든 최선을 다하는 게 프로야구를 지켜보는 팬들, 그리고 동료를 위한 의무이자 책임이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표정관리에도 신경을 쓴다. 타격 감각이 좋지 않다고, 잘 맞은 타구가 아웃 처리됐다고 인상을 쓰는 건 두산 더그아웃에선 금기사항. 팬들에게, 동료들에게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건 의무와 책임을 저버리는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김 감독은 머리든 가슴이든 담아두는 법이 없다. 눈에 거슬리는 언행은 즉시 시정해야 직성이 풀린다. 그리고 선수와 일대일로 만나, 특유의 단순명료한 화법으로 경고하고 칭찬한다. 지적할 것이 보이면 곧바로 호출한다. 지난 4월엔 오른손투수 이영하를 불러 “삼진을 잡으려고 힘이 잔뜩 들어갔던데, 너보다 경험 많은 베테랑 타자들이 즐비한데 네 공에 속겠느냐”고 꾸짖었다. 한국시리즈를 앞두곤 포수 박세혁과 외야수 박건우에게 “(잘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자신 있게 경기하라”고 격려했다. 효과는 만점. 박건우는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9회 말 끝내기 안타로 승리를 이끌었고, 박세혁은 능수능란한 투수 리드와 타율 0.417의 맹타를 휘둘렀다.

다른 감독들은 대부분 코치라는 필터 과정을 거치지만, 김 감독은 선수와 일대일로 만나 뜻을 전달한다. 그래서 오해가 생기지 않는다. 김 감독은 “잘못은 확실하게 지적하는 게 내 스타일”이라면서 “잘못을 묻고 책임을 추궁할 땐 주전, 후보를 가리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견고한 ‘원팀’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다.

김 감독은 2015년 두산 지휘봉을 잡은 뒤 간섭을 자제하고, 선수들이 원하는 것은 대부분 들어준다. 그는 “감독이 사소한 것까지 간섭한다는 건 프로세계에선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다들 프로이니 알아서 하라”는 말을 입에 자주 담는다. 그리고 ‘큰형’처럼 다가간다. 선수들과 웃으면서 농담을 주고받고, 가끔 ‘아재 개그’를 툭 던져 라커룸에서 웃음을 유도한다.

김 감독은 곰탈여우(곰의 탈을 쓴 여우)로 불린다. 전술전략이 무척 세밀하고 ‘심리전’에 능하기 때문이다. 선수단 운영은 우리, 팀을 우선하는 배려, 희생이란 원칙을 훼손하지 않으면 자율을 최대한 보장한다. 하지만 전술전략은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챙긴다.

김 감독은 꼼꼼하다. 데이터와 선수들의 컨디션 등을 머릿속에 넣어두고 경기 전 훈련까지 자세하게 살펴본 뒤에야 선발라인업을 작성한다. 경기 중엔 사소한 것일지라도 결코 놓치지 않는다. 조성환 두산 코치는 “타자들의 타격 자세 하나하나가 김 감독의 머릿속에 저장돼 있고,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지체하지 않고, 결단(교체)을 내린다”면서 “감독의 이런 모습은 선수단이 시즌 내내 흐트러지지 않은 이유”라고 귀띔했다.

김 감독은 직감을 믿고 빠르게 판단한다. 올해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였던 10월 1일. 당시 4-5로 따라붙은 뒤 8회 말 2사 주자 1루에서 대타로 기용한 김인태가 동점 3루타를 날렸고, 5-5이던 9회 1사 후 역시 대타로 투입한 국해성이 2루타를 때려 역전의 기회를 만들었다. 그리고 박세혁의 끝내기 적시타가 터져 1위를 확정했다. 대타 선택은 ‘신기’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하나의 작품이었다.

김 감독은 또 동기부여에 탁월하다. 교묘하게 선의의 경쟁을 유도하는 게 그의 장기.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MVP)로 뽑힌 오재일이 좋은 예다.

올 시즌을 앞두고 스프링캠프에서 오재일은 잔뜩 긴장했다. 새로 영입한 호세 미구엘 페르난데스와 포지션이 1루수로 겹쳤기 때문. 오재일은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3시즌 연속 25홈런, 80타점 이상을 올렸다. 하지만 김 감독은 스프링캠프 기간 내내 “오재일과 페르난데스의 주전 경쟁이 가장 치열하다”면서 오재일을 자극했다. 후보로 밀릴 수 있다는 위기감에 오재일은 이를 악물었고, 스프링캠프 MVP를 차지하면서 ‘눈도장’을 받았다. 그리고 한국시리즈에선 타율 0.333, 1홈런, 6타점을 쓸어담아 4승을 이끌었다.

김 감독은 현역시절 수비형 포수였고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와는 거리가 멀었다. 우여곡절도 있었다. 신일중, 신일고를 거쳐 경희대로 진학할 예정이었지만 대한야구협회의 착오로 입학이 취소돼 당시 2년제였던 인천전문대에 진학했다.

어이없는 ‘사고’였지만 김 감독은 특유의 성실성을 잃지 않았고 야구대표팀에 발탁, 1988년 야구월드컵과 서울올림픽에 출전했다. 대표팀 경력 덕분에 단국대에 편입했고, 1990년 OB(현 두산)에 입단했다. 야구선수 김태형은 1995년 생애 첫 우승의 기쁨을 누렸고 2001년 두 번째 이자 마지막 우승을 경험했다. 하지만 사령탑으로 5년 만에 우승을 3차례나 달성했고 정규리그에서 435승 5무 277패, 승률 0.611이란 빼어난 성적을 거뒀다.

두산 왕조의 건설자 김태형 감독의 질주는 계속될 것으로 기대된다.

정세영 기자 niners@munhwa.com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 김태형의 인맥은

김태형 감독은 화계초교 5학년이던 1978년 야구선수의 길로 접어들었다. 41년간 야구라는 한우물만 팠다. 1990년 OB(현 두산)에 입단하며 프로 유니폼을 입었고 두산에서 2001년 은퇴했다. 원클럽 맨. 은퇴하자마자 두산의 코칭스태프에 합류했다. 2002∼2011년 두산 코치를 지냈고 2012년부터 2014년까지 SK 코치로 ‘외도’했지만 2015년 두산으로 돌아왔다. 이번엔 감독직을 맡았다. 두산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게 김 감독의 장점. 그리고 선수, 지도자 경력의 대부분을 두산에서 보냈기에 그의 인맥은 두산에 집중된다.

나이 : 52
학력 : 화계초∼신일중∼신일고∼단국대
이력 : OB·두산 선수(1990∼2001년), 2002∼2011년 두산 배터리 코치, 2012∼2014년 SK 배터리 코치, 2015년∼현재 두산 감독. 2015∼2016년, 2019년 한국시리즈 우승.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박정원 두산그룹회장, 김인식 前 야구대표팀 감독, 김경문 야구대표팀 감독, 김태룡 두산 단장 (왼쪽 부터)

박정원 두산그룹회장

2009년부터 두산 구단주를 맡은 박정원 회장은 바쁜 와중에도 짬을 내 두산의 홈구장인 잠실구장을 찾는다. 박 회장이 1년 동안 잠실구장을 찾는 횟수는 20차례 이상. 박 회장은 김태형 감독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다. 김 감독은 “박 회장의 야구에 대한 사랑은 대단하다”면서 “항상 ‘눈앞을 보지 말고, 길게 내다보라’는 등 좋은 말씀을 건네주신다”고 밝혔다.

김인식 前 야구대표팀 감독

김인식 전 감독은 김태형 감독의 롤 모델. 김 전 감독이 1995년 OB 사령탑으로 취임하면서 당시 포수였던 김 감독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김 전 감독은 2003년까지 두산의 사령탑을 지냈고 김 감독에게 1998년부터 2000년까지 3년 연속 주장을 맡겼을 만큼 신뢰했다. 김 전 감독은 현역에서 물러났지만, 둘은 여전히 스승과 제자로 돈독한 정을 나누고 있다.

김경문 야구대표팀 감독

김경문 감독과 김태형 감독 사이엔 말이 필요 없다. 김경문 감독은 OB 창단멤버이며 1993년 OB에서 은퇴했다. 포수 출신이기에 김태형 감독의 직계 선배. 김경문 감독은 또 2003년부터 2011년까지 두산 사령탑을 지냈고 당시 김태형 코치와 호흡을 맞췄다. 선이 굵고, 화끈한 승부를 추구한다는 점은 김경문, 김태형 감독이 지닌 가장 큰 공통분모다.

김태룡 두산 단장

야구선수(동아대) 출신이며 두산 매니저와 운영팀장 등을 거쳐 2011년 단장으로 승진했다. 김 단장은 롯데 프런트를 거쳐 1990년 OB로 옮겼다. 김태형 감독과는 입사 동기인 셈. 젊은 시절부터 함께한 터라 눈빛으로 통하는 사이. 두산 선수단과 프런트가 잡음 없이 공조하며 우승컵을 수집하기에 김 감독과 김 단장이 빚는 절묘한 하모니는 더욱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