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최만린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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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논설고문

“나는 살아 있는 것만이 생명이라고 보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 지나가는 바람, 한 방울의 물에도 생명이 깃들어 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의 생명성과 인간의 한계를 나타내고 싶다. 형태는 생명의 진실 된 드러냄이다.” 흔히 ‘한국 추상조각의 살아 있는 전설’ ‘한국적 조각의 정체성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과 성찰로 독자적 조형언어를 확립한 작가’ 등으로 불리는 최만린(84)의 말이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서양 미학을 배웠지만, 우리의 조각이란 무엇일까가 내 화두였다. 이 강물은 어디서 왔는가. 내 관심은 그 폭이나 크기보다 그 근원이 되는 산꼭대기 물방울에 있었다.”

경기고 재학 중에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얼굴’로 입선한 그는 서울대 미대를 1958년 졸업하면서 본격 데뷔작으로 반추상의 투박한 여인상인 ‘이브’를 발표했다. 한동안 방송국 아나운서로 활동한 뒤 ‘이브’ 연작을 내놓기도 한 그는 오스트리아 다뉴브 강가의 빌렌도르프에서 1909년 발견된 구석기 시대 조각상의 영향을 받았다며, 이렇게 밝힌다. “미켈란젤로와 로댕의 심장 소리를 들으려고도 애써봤다. 석굴암 본존불 앞에서도 기다려봤다. 하지만 나를 감동하게 한 것은 2만 년 전의 인간이 빚은, 유방·배·둔부 등을 과장한 11㎝ 정도 크기의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였다. ‘원시 시대 사람들과 요즘 사람들의 마음은 과연 무슨 차이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태(胎)’ ‘천·지·현·황(天地玄黃)’ ‘천지’ ‘일월(日月)’ ‘아(我)’ 등으로 이어진 주제별 시리즈 작품들도 그가 붙들어온 화두 ‘인간’과 ‘생명’의 근원·본질·순환·에너지 등의 예술적 승화다. ‘0’ 연작을 두고 그가 하는 설명은 이렇다. “내 생각을 비워가고 싶었다. 짊어지고 가는 것도 있지만, 내려놓고 버리고 가는 것도 참 좋다. ‘둥근 것’은 찰 수도 있고, 빌 수도 있다. 영어로는 제로(zero)이고, 한자로는 공(空)이다.” 그런 그가 1988년부터 작업실로도 삼아온 서울 정릉동 자택이 리모델링 공사를 거쳐 성북구립미술관 분관인 최만린미술관으로 탈바꿈한다. 내년 4월 공식 개관하기에 앞서 사전 행사로, 그의 대표작 10여 점을 선보이는 전시회 ‘0 컬렉션’과 자료전 ‘조각가의 서재’가 지난 10월 10일 시작돼 오는 30일까지 이어진다. 그의 예술적 성취와 삶의 향기를 함께 느끼면서 가슴이 따뜻해진다는 사람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