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화순의 Deep Read >‘붕괴 위기’ 인식 못하는 정치권… 인적쇄신해야 ‘공유지 비극’ 피해

■ 여야 세대교체론 왜 나오나

現권력집단, 소주성·북핵 등 ‘의사결정의 실패’… 모든 문제 정치화로 국민불신 확산
與는 정권수족 역할·野는 공감능력 상실… 진짜 위기 오기 전에 체제적 권력혁신 시급

요즘 이러다 나라가 망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하고 걱정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총, 균, 쇠’의 저자 재러드 다이아몬드 미 UCLA 교수도 이 질문에 관심을 가지고 고대사회의 붕괴를 들여다보았다. 그는 ‘왜 어떤 사회는 붕괴했고 어떤 사회는 생존했나’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집단 의사결정의 실패’에서 찾았다. 특히 이념의 충돌로 분열된 사회일수록 정치권력이 비합리적인 결정을 하는 경우가 많고 이는 사회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최근 여야 할 것 없이 정치권 내에서 인적쇄신론과 세대교체론 등이 터져 나오는 건 권력집단의 근본적 변화 없이는 한국 사회가 전반적 위기에 내몰릴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으로 해석된다. 정치권이 절박한 심정으로 혁신을 이루지 못한다면 사회 혹은 국가라는 거대 ‘공유지의 비극(Tragedy of the Commons)’을 막아내지 못할지 모른다는 우려 또한 높아지는 형국이다.

◇다이아몬드 교수 의 사회적 붕괴론

산불이나 가뭄처럼 문제가 실제로 일어나기 전에 사회는 그 문제를 예측하는 데 실패할 수 있다. 혹은 기후 온난화처럼 문제가 서서히 악화하는 경우 집단은 정상이라 여기는 것이 조금씩 악화한 문제의 결과임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다이아몬드가 분석한 가장 흔한 붕괴는 사회가 문제를 인지하고도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거나 해결하려는 노력이 실패하는 경우다.

개인적인 의사결정의 실패와 달리 집단의 의사결정에는 집단 구성원 간 이해관계의 충돌과 가치관의 충돌 등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특히 현대사회로 들어오면서 다수의 의사결정권을 위임받은 권력집단은 자신들의 집권이나 이익을 위해 다른 사회 구성원에게 해를 끼치는 결정을 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예컨대 정부에 의한 과도한 재정확대나 복지확대처럼 단기적 이익을 추구하는 정치권력이 개혁을 미루고 그 부담은 다음 세대에 떠넘기는 식이다. 그 결과는 베네수엘라에서 보는 것처럼 다음 세대가 돼서야 알 수 있다.

이념의 충돌로 분열된 사회일수록 권력집단이 이념과 가치관을 이유로 사회 구성원들에게 비합리적인 결정을 유도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다이아몬드에 의하면 사회 구성원이 권력집단의 문제나 위기를 인지해도 편향된 이념을 가진 집단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문제는 다음 세대는 이런 결과에 대해 의사 표현도 제대로 못하고 위기의 결과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대통령과 국회로 대표되는 제도적 장치에 집단 의사결정을 위임한 현대사회에서 권력기관의 결정은 다음 세대에 참혹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한국 사회 붕괴의 징후들

한국 사회 붕괴의 징후는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본격 추진된 ‘소득주도성장’의 부작용과 각종 지표가 보여주는 경제 침체 가능성, 핵탄두를 완성한 북한의 위협과 한국을 둘러싼 강대국의 거세지는 요구와 위협 등이 그것이다. 더 큰 문제는 청와대와 정권이 이런 징후를 모르고 있거나, 알고도 모르는 척하는 것이다.

이는 검찰 수사 대상자인 조국 교수를 법의 수호자인 장관직에 임명하는 순간 분명해졌다. 조국 사태는 진보정권의 정의가 자신들만을 위한 정의라는 게 드러난 사건이다. 또 집권 초기부터 내세운 적폐청산의 가치를 정권 스스로 무너뜨리는 사건이기도 했다. 사회 구성원들이 각각 조국 수호와 조국 탄핵, 검찰 개혁과 검찰 수호로 나뉘어 서초동과 광화문으로 나서게 된 것은 권력이 조장한 사회 분열의 현주소다.

이쯤 되면 대의민주제를 통한 집단 의사결정의 문제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할 때가 됐다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공적인 정치의 장에서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던 ‘거짓’이 ‘진실’인 양 보편화하는 동안 여당은 ‘정권의 수족’이 됐다는 우려 또한 많아졌다. 감수성, 공감능력, 소통능력이 없는 자유한국당은 양극단의 갈등에 저항하는 다수의 민심을 읽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에 무능한 국회와 정권의 의사결정을 믿고 있다가는 사회가 돌이킬 수 없는 길로 접어들지 모른다는 우려가 팽배해졌다. 바로 한국 사회 붕괴의 징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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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인적쇄신이 필요한 이유

위기의 징후와 문제를 예측하는 데 실패했거나 혹은 문제가 닥쳤는데도 그 문제에 대응하지 못하는 상황은 집단 의사결정권을 가진 정치권력의 주체를 바꿔야 한다는 이유를 제공한다. 현 상황에서 권력집단이 교체돼야 할 이유는 분명하다. 첫째, 기득권이 생산해낸 양극화된 정치환경이 모든 문제를 ‘정치화(politicization)’하고 있다는 점이다. 극도로 정치화된 사회는 대개 당파적인 관점에서 문제에 대한 찬성과 반대를 형성하는 여론을 만들어내므로 해결을 위한 진정한 논의와 대안을 모색하기 어렵다. 통합을 지향하는 새로운 의사결정자들이 새로 정치권으로 들어와야 하는 이유다.

둘째, 인공지능이 인간 지능을 대체하고 무인자동차가 도로를 달리게 될 미래는 다양한 생각과 이해를 인정하는 21세기적 리더를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86그룹의 머릿속은 여전히 과거 민주 대 비민주,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의 대립구도에 매몰돼 있다. 21세기형 리더는 위기를 예측하고, 사회 변화의 다양성과 속도를 이해하며, 사회적 요구에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 셋째, 정치와 경제 시스템, 그리고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공직에 대한 신뢰가 아니라 냉소가 팽배해 있다는 점이다. 공적 영역에 대한 불신은 능력 있는 인재들이 공직에서 일할 동기를 축소하고 이는 정부의 통치능력을 감소시킬 수밖에 없다. 국민적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젊은 인재들이 정치권에 충원돼야 할 이유다.

◇‘공유지의 비극’ 막을 인적쇄신

일부 여야 정치인이 불출마 선언을 선도하면서 인적쇄신 카드를 들고나왔지만 정치권의 갈 길은 멀다. 오히려 정당과 정치의 혁신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 잠재된 계파 갈등을 증폭시키는 모습을 만들기도 한다. 인적쇄신이 반드시 바람직한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국회를 만들어낼지도 의문이다. 역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60% 이상의 정치신인이 배출됐지만,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평가를 듣기가 일쑤였다. 20대 국회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처럼 정치권력 집단은 여전히 이념·지역·계파 갈등에 혈안이 돼 있고 위기 해결 능력은 찾아볼 수 없다.

‘공유지의 비극’은 한 사회가 갖는 자원이 고갈되고 사회 전체에 미치는 해악이 분명해지고 나서야 위기를 인지하게 된다는 점을 말해주고 있다. 집단 의사결정을 주도하는 정치권이 여야 할 것 없이 절박감을 느끼고 혁신을 이루지 못한다면 국가와 사회의 붕괴, 즉 ‘공유지의 비극’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국가가 위기에 처한다면 통치할 국가도 없어진다는 위기의식을 가질 때 인적쇄신이 성공할 수 있다.

정치권 인적쇄신은 정당 민주화와 권력구조를 변화시키는 체제적 혁신이어야 한다. 여야 정당 내에서 정치인들이 어떻게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일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가치와 신념에 대한 토론을 벌이고, 공적 영역의 운영 원칙을 만들어내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정치권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 같다. 다이아몬드가 우려한 재앙의 초래, 사회의 붕괴가 현실화할지 모른다는 걱정이 쌓인다.

연세대 교수·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

■ 세줄 요약

다이아몬드의 사회 붕괴론 : 이념 충돌로 분열된 사회일수록 권력집단이 이념과 가치관을 이유로 사회구성원들에게 비합리적인 결정을 유도하는 경우가 많아. 사회 붕괴의 원인에 눈감는 권력기관의 결정은 다음 세대에 참혹한 결과 가져올 수 있어.

한국 사회 붕괴의 징후들 :‘소득주도성장’ 부작용, 경제 침체 가능성, 북핵 위협 등에 이어 ‘조국 사태’로 붕괴 징후 정점 찍고 현 상황에서 권력집단의 교체 필요성 분명해져. 통합과 다양성, 공적 영역에 대한 신뢰 구축을 위해 인적쇄신해야.

공유지의 비극 막을 인적쇄신 : 사회적 자원이 완전히 고갈되고 사회 전체에 미치는 해악이 분명해지고서야 위기를 인지하게 되면 ‘공유지의 비극’ 피할 수 없어. 정치권 인적쇄신은 일부 새 피 수혈이 아니라 정당 민주화와 권력구조를 변화시키는 체제적 혁신이어야 함.

■ 용어 설명

다이아몬드 교수 :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미국 UCLA 교수. 과학의 대중화에 기여한 공로로 영국의 과학출판상과 미국의 LA타임스 출판상을 받음. 또 ‘총, 균, 쇠’로 1998년 퓰리처상을 수상함.

‘공유지의 비극’ : Tragedy of the Commons. 공유지의 자원은 어떤 공동의 강제적 규칙이 없다면 많은 포식자의 무임승차 때문에 결국 파괴된다는 것. 미국 생태학자 개럿 하딘이 이를 ‘공유지의 비극 이론’으로 만들어 1968년 ‘사이언스(Science)’지에 발표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