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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 게재 일자 : 2019년 12월 06일(金)
공정 병역과 한류 확산 함께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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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찬수 병무청장

유럽사에서 ‘칼레의 시민’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이다. 백년전쟁 중 프랑스 해안 도시 칼레가 영국군에 점령당했을 때, 당시 칼레 시장과 부유층이 시민들을 대신해 희생양을 자청했다는 사건이다. 훗날 각색과 과장이 들어간 에피소드로 밝혀졌지만, 그 본질은 위기 시 사회 지도층의 솔선수범이라는 데 있다. 필자가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우리나라는 이런 사례가 없는지 궁금했다. 그러다가 올 초 육군에서 준비한 뮤지컬 ‘신흥무관학교’를 보고, 이회영 선생의 일화를 알게 됐다. 현재 가치로 600억 원이 넘는 전 재산을 처분하고 일가가 독립운동에 헌신한 선생의 모습은 위국헌신의 모범을 보여준다.

모범을 시쳇말로 바꾸면 ‘롤 모델’이다. 과거 이회영 선생 같은 분이 롤 모델이었다면, 오늘날은 누구일까? 지난해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공동 발표한 학생 장래 희망 조사 결과에 따르면 1위가 운동선수라 한다. 유튜버와 가수가 각각 5위, 8위를 차지하는 등 대중문화예술인의 도약도 돋보였다. 요즘 청소년에게는 체육인이나 대중문화예술 종사자들이 롤 모델이다.

롤 모델이 되면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많이 받는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대중의 기대도 그만큼 커지게 된다. 특히, 병역과 관련한 대중의 기대는 더 크다. 한때 유명 가수가 국적 변경을 통한 병역 회피 논란으로 일순간에 인기를 잃어버린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최근 전 세계 스포츠와 문화예술계에 한류(韓流) 열풍이 일고 있다. 덕분에 세계인들에게 유명 한국인 선수나 대중문화예술인의 병역 이행은 관심사가 됐다. 최근에는 유명 선수나 대중문화예술인의 병역 이행 방식에 대해 여러 가지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중에는 한류에 힘입어 대한민국의 위상과 경제에 엄청난 효과를 창출하는 것이 바로 국위 선양이므로, 이들을 ‘군대에 보낸다’는 것은 국가적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잘 살펴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차범근 감독이다. 차 감독은 1976년 10월에 공군으로 입대해 1979년 5월 만기 전역하자마자 당시 서독 분데스리가로 진출해 10년간 308경기를 뛰면서 98골을 넣는 활약을 펼쳤다. 차 감독이 1987년에 달성한 분데스리가 외국인 최다 득점 기록은 1998년도에야 경신됐다. 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IFFHS) 등에서 차 감독을 아시아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괜히 선정한 게 아니다. 성실하게 병역 이행 후 축구의 본산에서 전설적인 선수가 된 차 감독의 사례는 병무청장인 필자에게 남다르게 다가온다.

문화의 힘이 날로 강해지는 오늘날, 백범 김구 선생의 말씀이 떠오른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오늘날 선생께서 계신다면 한류라는 단어에 가슴 벅차 하실 것이다. 하지만 독립운동에 헌신하신 선생의 모습을 미뤄볼 때, 한류 확산이 병역 때문에 차질이 있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으실 것이다. 대한민국이 있어야 한류 역시 가능한데, 대한민국은 공정한 병역 이행과 굳건한 안보로 지켜지기 때문이다.

오히려 필자는 이렇게 생각해 본다. 이런 상황에서 선수나 대중문화예술인이 성실히 병역을 이행한다면, 이 역시 한류를 더 빛나게 하는 요인이 되지 않을까? 공정 병역의 확립은 한류의 위축이 아니다. 오히려 ‘한류’를 더한층 고조시킬 수 있는 또 다른 문화의 한 축이다. 필자 역시 병무청장으로서 공정 병역을 유지하면서 한류 확산의 마중물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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