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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Leadership 게재 일자 : 2019년 12월 10일(火)
친화력이든 카리스마든… 하모니 이끄는 건 ‘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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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케스트라 지휘자

정명훈 - 曲 해석능력 탁월… 말수 적지만 섬세한 지도력 발휘
금난새 - 오케스트라 대중화 중시… 관객 모으는 능력 압권
김은선 - 드보르자크 이해하려 체코어 공부… 연주자와의 유대 노력
카라얀 - 눈 감고 지휘… 카리스마로 유명
번스타인 - 단원 가족사 공유… 친화력이 하모니 비결


오케스트라 지휘자는 흔히 운동 경기의 감독이나 전쟁터 사령관에 비유된다. 개성과 자존심이 강한 단원들을 하나로 통솔해 관객이 지켜보는 무대에서 좋은 음악을 만들어내는 일이 전쟁이나 경기를 치르는 일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국내 대표적 지휘자로 떠오르고 있는 백윤학 영남대 음대 교수는 “지휘자는 군대 사령관, 운동팀 감독과 비슷한 점이 많지만, 이기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고 아름다움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했다.

◇지휘자 리더십에 따라 악단 연주가 얼마나 달라지나 = 최근 국내에서 개봉한 영화 ‘더 컨덕터’ 속의 지휘자 안토니아 브리코는 이렇게 말한다. “제 악기는 이 교향악단이에요.” 그의 말처럼 지휘자는 악단을 하나의 악기로 연주하는 음악의 달인들이다.

그런 지휘자들로서는 황당하겠으나, 보통 사람들은 흔히 이런 의문을 품는다. 악단 연주자들은 다 음악 전문가들인데 지휘자가 그토록 중요한가? 콘서트 때 연주자들이 지휘자를 잘 쳐다보지도 않던데 저토록 요란하게 몸짓을 하는 지휘자는 도대체 무슨 역할을 하는 것인가? 오케스트라 단원들로부터 들어보면, 첫 번째 질문의 답은 “정말로 중요하다”이다. 두 번째 물음에 대한 답은 “악단 연주 수준과 색깔을 좌우한다”로 정리할 수 있다.

지휘자가 음악사에 등장한 것은 19세기에 들어서다. 베토벤 교향곡 ‘영웅’의 예를 들면 알겠지만, 연주자가 수십 명을 넘어서면서 그들을 전문적으로 통제하는 지휘자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그 이전에는 오르간 연주자나 바이올린 수석 주자가 지휘까지 맡아 했는데, 활이나 돌돌 말린 악보, 쇠로 된 긴 막대기로 마룻바닥을 두드리며 박자를 맞췄다. 지금도 바이올린 주자가 악단장을 맡아 지휘자와 단원들의 소통 매개 역할을 한다.

지휘자는 연주자들이 모두 같은 리듬을 따라갈 수 있도록 박자를 정확하게 짚어 준다. 어떤 부분은 조금 짧게 연주하고, 또 어떤 부분은 조금 강하게 연주하라고 알려 준다. 이때 지휘자의 곡 해석 능력이 중요하다. 그가 작곡가의 의도를 어떻게 파악하는지, 또 그에 따라 음악을 어떻게 재창조할 것인지에 따라 곡의 색깔과 연주 수준이 확연히 달라진다.

콘서트 때 연주자들은 지휘자보다는 악보를 보는 데 열중하지만, 박자와 템포가 바뀔 때는 지휘자의 몸짓을 반드시 보고 그에 따라야 한다. 또 곡의 시작과 끝에서 지휘자를 보지 않으면 불협화음을 낼 수밖에 없다.

지휘자가 연습과 리허설 때 충분히 소통해야 좋은 음악을 만든다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또한 연주 현장에서 연주자와 원활하게 교감해야 한다. 그 소통과 교감 도구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지휘자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실력이다. 곡에 대한 해석과 청음 능력이 탁월하면, 연주자들이 지휘자에 대해 존경의 마음을 갖고 그 지시에 따라 최선을 다해 연주한다는 것이다.

1973년 유진 오르먼디가 이끄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가 중국을 방문했을 때의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중국인 지휘자가 중국 필하모닉을 지휘해 베토벤 교향곡 5번을 연주하다가 2악장에 이르러 손님에 대한 예의로 오르먼디에게 지휘봉을 넘겼다. 그런데 지리멸렬했던 중국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완전히 달라져서 신들린 듯이 연주한 것이다.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그제야 자신들의 지휘자가 얼마나 대단한 리더인지 깨닫고 열화와 같은 박수를 쳤다.

리더십을 연구한 저술가 홍사중 씨에 따르면, 지휘자의 권한 행사는 두 종류로 나뉜다. 피에르 몽퇴와 아르투로 토스카니니형(型)이다.

20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지휘자 몽퇴는 지휘 몸짓을 아주 작게 했지만 단원들이 미세한 움직임도 놓치지 않고 따랐다. 단원들은 자신이 틀려도 야단치지 않고 조용히 타이르는 몽퇴를 존경했기에 최선을 다해 따르고자 했던 것이다. 반면에 이탈리아 명지휘자인 토스카니니는 연습하다가 연주가 잘되지 않으면 단원들에게 지휘봉을 던질 정도로 불같이 화를 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단원이 그의 권위를 존중한 것은 탁월한 실력에 바탕한 카리스마의 소유자였기 때문이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지휘자로 불리는 독일의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역시 카리스마형 리더십으로 유명하다. 그는 악보를 외워서 자주 눈을 감고 지휘함으로써 연주자들로 하여금 경외를 느끼게 했다.

물론 아무리 실력이 탁월한 지휘자라고 할지라도 진심으로 단원들을 존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카라얀에 버금가는 명성을 누렸던 미국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은 단원들과 가족사까지 대화를 나누며 친화함으로써 그들의 자발적 노력을 이끌어 냈다. 국내 대표적 마에스트라인 여자경 지휘자도 “사람 대 사람으로 단원들의 마음에 들어야 그들이 움직인다”고 말했다.

◇한국인 대표 지휘자 정명훈, 금난새, 김은선의 리더십 = 백윤학 교수는 선배인 정명훈(66) 지휘자에 대해 “곡에 대해 철저히 분석한다는 점에서 세계에 몇 안 되는 실력자”라며 “그 점에서 단원들이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서울시립교향악단에서 그와 함께 일했던 한 직원은 “차량으로 이동하는 시간에도 악보를 보고 있어서 경외감이 일었다”고 했다. 세계적인 지휘자임에도 끊임없이 음악 공부를 하는 것이 그의 실력의 원천임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정명훈 지휘자는 단원들과 일일이 친교를 나누지 않는 스타일이다. 평소 말수가 적고 내향적인 편이다. 그 때문에 오만하다는 평을 듣기도 하지만, 단원들과 연습할 때는 섬세하게 지도한다. 단원들은 연습 때나 연주 현장에서 그에게 아우라를 느꼈다고 했다. 서울시향에서 그의 지휘를 10년간 받았던 김덕우 바이올리니스트는 “오케스트라 안에서 에너지가 부족하다고 느낄 때마다 다시 일어서게 해 줬으며, 음악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느끼게 해 줬다”고 말하기도 했다.

클래식 대중화에 크게 기여해 온 금난새(72) 지휘자는 외부 활동이 너무 많은 게 아니냐는 비판을 듣기도 한다. 그는 이와 관련,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휘자 리더십은, 유럽처럼 오케스트라에 대한 공적 지원을 받는 곳과 미국처럼 지원이 적어 자생력을 갖춰야 하는 경우가 다를 수밖에 없다”며 “나는 한국의 상황에서 청중을 끌어오는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봤다”고 했다. 해설이 있는 음악회 등을 통해 관객을 흡인하는 매력을 갖추는 한편 외부와의 폭넓은 네트워킹을 통해 오케스트라가 자생력을 갖출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하는 데 힘쓰는 것도 지휘자의 리더십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현재 내가 맡고 있는 성남시립예술단의 경우에 시민의 세금이 지원되는데, 관객이 적다면 혈세 낭비가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는 또한 “내가 설립한 민간 오케스트라인 뉴월드 필하모닉은 자생력을 갖춰야만 살 수 있는 조직”이라며 “지휘자가 음악 실력뿐만 아니라 펀드 레이징도 해야 하는 시대가 왔고, 나는 그것을 인정하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했다.

최근 미국 샌프란시스코 오페라단 차기 음악감독에 선정돼 화제를 일으킨 김은선(39) 지휘자는 서양 음악계에도 분명히 존재하는 ‘젊은 동양인 여성 리더’에 대한 편견을 노력과 실력으로 깨트려 왔다. 그는 음악 공부 못지않게 언어 공부에 매진했다. 영어, 독일어뿐만 아니라 프랑스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등을 익혔다. 세계 각국 악단과의 소통을 원활히 할 뿐 아니라 작곡가의 음악 언어를 깊게 들여다보기 위한 노력이다. 지난 6월 샌프란시스코 오페라단에서 ‘루살카’를 공연하기 위해 작곡가인 드보르자크의 모국어인 체코어를 배웠을 정도였다.

여느 조직처럼 오케스트라에서도 리더에게 불평을 품고 게정 부리는 단원이 있다. 김은선은 그럴 때 유머러스하게 대처해서 단원의 신뢰와 유대를 쌓으려고 애쓴다. 여느 동양인처럼 눈이 찢어진 자신의 외모를 스스로 농담의 대상으로 삼아서 단원을 웃게 한 일화도 있다.

김은선은 지휘자가 서툴거나 실수가 많으면 단원들의 신뢰를 얻기 힘들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실수가 있었다면 후회는 하지 않는다. 다음에는 그러지 말아야지 생각할 뿐이다. 지휘자는 찰나의 순간에 결정이 빨라야 하는 리더이기 때문에 지난 일에 연연해 하지 말자는 게 그의 생각이다.



■ 김은선의 인맥

지휘자 김은선은 유럽과 미국에서 활약한 ‘젊은 거장’답게 세계적 마에스트로들과 친분이 깊다. 최정상급 지휘자인 다니엘 바렌보임, 키릴 페트렌코 등이 김은선과 함께 일한 후 그를 지지하며 응원하는 인물이 됐다. 유럽 공연기획사 ‘레빈’ 대표인 미카엘 레빈은 김은선을 영입해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도록 뒷받침했다. 김은선은 부부였다가 헤어진 레빈에 대해 “연주자들을 진정으로 위하는 에이전트”로 기억한다.

그는 한국 활동이 드물었던 탓에 국내 인맥이 없는 편이나, 아버지인 김성재 전 문화관광부 장관과 최수열 부산시립교향악단 지휘자(예술감독) 등과 평소 가깝게 소통하고 있다. 최승한 연세대 음대 명예교수에 대해서는 자신의 지휘 능력을 일찍 알아봐 준 스승으로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 주요 이력

연세대 작곡과 학사, 연세대 대학원 지휘과 석사, 독일 슈투트가르트국립음대 최고연주자과정. 2008년 스페인 ‘헤수스 로페즈 코보스 국제오페라지휘 콩쿠르’ 우승 후 스페인 왕립극장 부지휘자로 활약. 2012년 프랑크푸르트 오페라극장에서 ‘라보엠’을 지휘한 뒤 국제적 주목을 받음. 주로 유럽 무대에서 활약하다가 2017년 미국으로 건너와 휴스턴 그랜드 오페라를 객원 지휘.

▲  왼쪽부터 김성재 전 문화관광부 장관, 최수열 부산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 다니엘 바렌보임 지휘자 겸 피아니스트, 키릴 페트렌코 베를린 필하모닉 지휘자.

김성재 전 문화관광부 장관

김은선은 아버지인 김성재 한신대 석좌교수를 오늘의 자신이 있기까지 도와준 인물 중의 한 명으로 꼽는다. 김 교수는 김대중 정부 시절 초대 민정수석을 했고 정책기획수석을 거쳐 문광부 장관을 지냈다. 지금도 김대중아카데미 원장, 한국유엔봉사단 총재 등의 일을 맡아 활발하게 사회 활동을 하고 있다. 김 교수는 김은선이 어렸을 때 학업에 대한 부담을 느끼지 않고 음악 공부를 하게 했다. 지휘자가 된 후에는 작은 일에 매이지 말고 대범하게 행동하라고 조언하며 힘을 준다고 한다.

최수열 부산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

국내 중견 지휘자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인물.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정명훈 사퇴로 음악감독 공백 사태를 겪고 있을 때, 30대 나이의 부지휘자로서 말러 6번 교향곡 공연 등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주목을 받았다. 김은선은 국내 음악인들과 친분이 깊지 못하지만, 또래의 최수열 지휘자와는 자주 연락하고 음악 이야기도 많이 하는 편이라고 말한 바 있다. “진짜 공부 열심히 하는 지휘자”라는 게 김은선의 평이다.

다니엘 바렌보임 지휘자 겸 피아니스트

현존하는 세계 지휘자 중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로, 독일 베를린 슈타츠카펠레의 종신 지휘자를 맡고 있다. 김은선은 그를 ‘다니엘’로 부를 정도로 친근하게 여기면서도 존경한다. 2010년부터 그의 지휘 보조를 하며 많은 것을 배웠다고 술회했다. 연습을 연습처럼 하지 말고, 연주를 연주처럼 하지 말라는 게 바렌보임의 가르침이었다. 바렌보임은 최근 언론에 “김은선은 음악에 대한 호기심과 발전하고자 하는 욕구를 유지하고 있다”며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감독 선임 소식을 듣고 기뻤다”고 밝혔다.

키릴 페트렌코 베를린 필하모닉 지휘자

독일 베를린 필하모닉의 수석 지휘자이자 바이에른 오페라극장 음악 총감독. 프랑스 리옹 국립오페라단을 이끌 때 부지휘자였던 김은선과 일했다. 김은선은 그를 역시 ‘키릴’이라고 부른다. “악보 공부와 연구를 위해 거의 잠을 자지 않을 정도로 노력하는 키릴의 모습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했다. 페트렌코는 “김은선은 지치지 않는 노력과 적절한 자기 비평적 접근으로 재능을 갈고닦는 동료”라며 “이제 본인만의 예술적 비전을 실현할 적기”라며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감독 선임을 축하했다.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
e-mail 장재선 기자 / 문화부 / 부장 장재선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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