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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이현종 논설위원 게재 일자 : 2019년 12월 13일(金)
청와대 ‘춘풍추상’ 액자 내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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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종 논설위원

내 편에 엄격하라는 春風秋霜
허울일 뿐 실제론 내 편 봐주기
감찰 중단과 하명수사에 관여

友敵 편가르기 습성화한 586
인민민주 이념에 野 타도 추구
4개월 뒤 총선이 成敗 시험대


지난해 2월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로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이 한참 고공행진을 하고 있던 때 문 대통령은 청와대 모든 비서관실에 ‘춘풍추상(春風秋霜)’이라는 액자를 걸도록 지시했다. 채근담에 나오는 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을 줄인 말인데 ‘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처럼 부드럽게 하고, 자신을 대할 때는 가을 서리처럼 엄격하게 한다’는 뜻이다. 청와대 직원들이 지지율에 들떠 오만하지 말고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채찍질을 하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그런데 액자를 걸던 것과 비슷한 시기에 이 정권의 핵심 실세인 윤건영 국정상황실장, 김경수 경남도지사, 천경득 총무비서관실 선임행정관, 그리고 유재수 당시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이 함께한 텔레그램 대화방에서는 민정수석실 감찰에 적발된 유 씨의 구명 문제가 오갔다고 한다. 유 씨의 부탁을 받은 천 행정관은 이인걸 특감반장에게 전화를 걸어 “왜 피아(彼我)를 구분하지 못하느냐”며 질책했다는 얘기가 검찰 주변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실제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감찰을 받던 유 씨는 감찰이 갑자기 중단된 뒤 금융위에서 징계도 받지 않고 퇴직했고, 이어 더불어민주당 전문위원을 거쳐 부산시 경제부시장으로 승승장구했다.

문 대통령의 표정만 봐도 무슨 뜻인지 안다는 핵심 측근들이 대통령 지시를 정반대로 알아들었던 것이다. 아니면 제대로 알아들었을 가능성도 있다. 취임사부터 ‘탕평인사’ ‘삼고초려’ ‘화합 정치’ ‘광화문 대통령 시대’ 등을 약속했던 문 대통령은 지금까지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지키지 않은 사실조차 모르는 것을 보면 측근들이 대통령 속마음을 제대로 읽었을 수도 있다. 전(前) 정권 청와대와 정부 인사들을 ‘적폐 청산’ 차원에서 직권남용과 권리행사 방해죄 등을 무차별 적용해 구속시켰던 시점에 대통령 측근들은 ‘김기현 울산시장 하명(下命) 수사’ ‘유재수 감찰 무마’ 사건 등에서 유사한 범죄행위를 저지르고 있었으니 말이다. 적폐라는 말 자체가 ‘피아’를 구분하고 있는 것처럼, 애초 문 정권은 춘풍추상에 관심이 없었던 셈이다.

지금 청와대와 여당의 주력군인 586 학생운동권은 남녀구분 없이 ‘형(兄)’이라는 호칭을 즐긴다. 지금도 직책을 붙이기보단 ‘누구누구 형’이라는 표현으로 같은 ‘패밀리’라는 것을 은연중에 과시한다. 유 씨가 문 대통령을 ‘재인이 형’, 이호철 전 민정수석을 ‘호철이 형’이라고 불렀다는 얘기도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학생운동을 경험한 이들은 한국사회 어느 집단보다 동질성이 강한 정치계급으로 등장했고 문 정권의 핵심축이 됐다. 이런 풍토는 당시 운동권 주류였던 소위 ‘NL 주사파’의 조직문화가 미친 영향이 크다. 김일성 사상을 본떠 수령에 대한 절대복종을 강조한다. 여기에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은 어떤 것이든 가리지 않는다. 아방(我方)과 타방(他方)을 분리하는 것이 습관화돼 있다. 독일 나치의 이론적 논리를 제공한 독일 정치학자 카를 슈미트가 얘기한 것처럼 ‘피와 아, 적과 친구 사이의 구분은 권력투쟁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의 본질’이라는 사상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래서 원로 정치학자인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현 진보세력의 직접민주주의가 전체주의와 비슷하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각종 비리에도 자기편에 무한정 관대한 것과 함께 지금 국회에서 벌어지는 ‘자유한국당 왕따 작전’도 야당을 소멸시켜야 할 적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런 행태는 독재 타도를 위해 그들이 배웠던 것이, ‘자유민주주의’ ‘헌법주의적 민주주의’ 원리가 아니라 마르크스·레닌주의식 ‘인민민주주의’ 사상이기 때문이다. 직접민주주의가 대의제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고, 서초동과 여의도 집회 등 지지자들의 목소리만을 진정한 여론이라고 간주하는 것에서 드러난다.

여당도 야당이 될 수 있는 것이 민주주의 핵심인데 문 정권은 정권 이양을 곧 ‘정치보복’이라는 의미와 동일시한다. 물론 자신들이 전 정권에 행한 일을 보면 그런 생각을 하고도 남을 것이다. 이런 식이면 내년 총선은 선거가 아니라 진영 간 치열한 전쟁터가 될 것이 뻔하다. 그래서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누더기 선거법을 ‘들러리 야당’들과 함께 통과시켜 구조적 우위를 만들려 한다. 나라 곳간은 빠르게 비어가는데 문 정권은 오직 선거에만 몰두하고 있으니 대한민국이 어디로 갈지 걱정이 태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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