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러시아發 가짜뉴스’는 아프리카계를 노린다 ?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러시아 정부와 연루된 사이버 조직 ‘인터넷 리서치 에이전시(IRA)’가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주요 후보를 비방하기 위해 소셜미디어에 유포한 사진. IRA는 주로 민주당 후보들에게 불리한 각종 허위 게시물을 온라인 공간에 대량으로 퍼트렸다. 특히 아프리카계 미국인 유권자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인종차별 문제를 소재로 삼았다. 출처 = 뉴놀리지

바이든·블룸버그·부티지지 등
인종차별 문제로 논란 휘말려
민주당, 표심 이탈 막기 ‘비상’
러 사이버캠페인 등 빌미 제공

2020년 미국 대선을 1년여 앞두고 민주당 텃밭인 아프리카계 미국인 유권자들이 러시아발 가짜뉴스 및 선거 캠페인의 표적이 되고 있다.

수단은 각종 사이버 활동이 동원되고 목표는 민주당 지지율 떨어뜨리기다. 민주당이 소수 인종의 대변자 역할을 자임해온 만큼 미국 사회 내 인종 갈등을 부추기면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전체 유권자 중 비율은 13%다. 미국 역사상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표심을 얻지 못한 사람은 민주당 대선후보로 최종 지명된 적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주당으로서는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을 막기 위한 힘겨운 싸움에서 이들의 표심이 이탈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비상이 걸린 셈이다. 오래전 투표권 행사를 위해 미 백인 사회와 투쟁해왔던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입장에서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외국 정부와까지 싸워야 하는 형국이다.

대표적 수법은 최근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CSM)가 보도한 미국 상원 정보위원회 보고서에 잘 나와 있다. 보고서에 등장하는 대표적 수법 중 하나는 거짓 정보를 통해 선거전을 혼탁하게 만들고 그 결과 유권자들의 투표율을 떨어트리는 식이다. 예를 들어 민주당 후보의 당선을 막기 위해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후보가 백인우월주의 단체인 KKK로부터 2만 달러에 달하는 기부금을 받았다”는 거짓 메시지를 인터넷에 퍼트렸다. 인종차별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심기를 건드리는 작전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11월 미국 대선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목적으로 러시아가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다른 소셜미디어 플랫폼에서 벌인 각종 캠페인의 3분의 2는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자였던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겨냥한 것으로 드러났다.

현 민주당 대선후보 중에도 인종차별 논란에 휘말린 인물이 많다는 점은 러시아 작전의 표적설을 의심케 하고 있다. 또 러시아가 다가오는 대선 국면에서 이들 논란을 활용, 선거에 개입하는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현재 가장 유력한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최근 치른 곤욕도 치열한 대선 국면에 들어갈 경우 SNS 퍼나르기, 사실 왜곡 등의 방식으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바이든 전 부통령은 과거 빌 클린턴 전 대통령에 대한 공화당의 탄핵 추진을 두고 ‘린치’(lynch·사적인 폭력)라는 용어를 사용한 사실이 있는데 이것이 뒤늦게 불거지면서 사과해야 했다. 린치는 미국 남북전쟁 이후 남부 백인우월주의자들이 정당한 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고 아프리카계 미국인에게 폭력을 가하는 행위를 일컫는 인종차별적 용어로 인식돼왔다.

다른 후보도 비슷한 처지다. 블룸버그통신을 소유한 미국의 억만장자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도 재임 중 불심검문 강화 정책을 시행한 점이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겨냥한 것 아니냐는 논란에 시달렸다. 최근 예상외로 선전하고 있는 피터 부티지지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 시장은 백인 경관이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총으로 살해한 사건으로 불거진 인종 갈등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백인을 제외한 소수 인종의 부티지지 지지율은 0%에 가깝다.

이처럼 미국 사회에 상존하는 인종 갈등 문제의 불씨를 대선 국면에서 정치 공학적으로 이용하려는 시도는 조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치밀한 사이버전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어 적발하기도 쉽지 않다. 미 정보당국은 지난 대선 때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세워진 ‘인터넷 리서치 에이전시(IRA)’가 러시아 정부의 지령에 따라 소셜미디어에 가짜계정을 만들어 미국 민주당에 불리한 허위 정보를 대량 유포했다고 보고 있다. 데이터 분석업체 뉴놀리지의 연구에 따르면 IRA의 가장 인기 있는 인스타그램 계정의 절반가량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사용자를 겨냥했거나 관련 이슈를 다루고 있었다. 특히 @Blackstagrm이라는 이름의 계정은 약 30만 명의 팔로어를 가지고 있었다. 또 ‘Black Matters US’ ‘Don’t Shoot’ 등 IRA가 개설한 유튜브 채널들의 콘텐츠 96%가 미국 사회의 인종 문제와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다루는 경찰의 폭력적인 방식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이러한 러시아발 사이버 작전으로 인한 효과를 정확히 수치화하기 어렵지만, 2016년 대선만 해도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투표율은 2012년 대선에 비해 7%포인트 하락했다. 역대 가장 큰 폭의 하락이었다고 CSM은 설명했다.

인지현 기자 loveofall@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