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통과한 ‘검·경 수사권조정’ 법안
檢 직접수사 개시 범위 제한 논란… 진보진영서도 반대
“경찰 자체종결 비율 40%”전망
사법경찰 ‘인권침해 견제’ 숙제
경찰, 영창청구 심의 신청 가능
검사의 ‘독점적 영장청구’ 견제
경찰 불송치·검찰 재수사 요청
악순환 등 檢警갈등 심화 우려
경찰 권한 커져‘개혁요구’확산
“사실상 경찰공화국” 강력반발도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형사소송법 및 검찰청법 개정안)이 지난 1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경찰은 “독립기념일을 맞았다”고 환호했다. 1954년 형사소송법 제정 이래 66년 만에 검사의 수사지휘에서 경찰이 벗어났기 때문이다. 변호사 자격증을 소지한 검사가 형법 등 법률에 의거해 범죄자를 재판에 넘길지 여부를 결정하는 ‘기소’와 달리 범죄 현장과 피의자를 직접 조사하며 범죄 사실 관계 자체를 확인하는 ‘수사’는 경찰이 독자적으로 수행해야 한다는 경찰의 일관된 요구가 받아들여진 결과였다. 검찰 주변에서는 벌써부터 경찰의 부실수사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경찰인력이 워낙 많다 보니, 피해자가 피의자로 둔갑하거나 뇌물을 받고 범죄를 눈감아주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경찰은 ‘흘러간 얘기일 뿐, 과거 잣대로 보지 말라’고 항변한다. 검경 수사권 조정의 구체적인 내용과 의미, 과제 등을 10문 10답을 통해 점검해 본다.
1 수사권 조정 의미·주요 내용
경찰이 검사의 지휘를 받지 않는 ‘1차 수사종결권’을 확보했다는 내용이 검경 수사권 조정의 핵심 골자다. 이번에 개정된 형사소송법 및 검찰청법에 따라 검사의 수사지휘 폐지에 따른 경찰의 독자적 1차 수사 마무리를 비롯해 △수직적 검경 관계→수평적 협력 관계 △경찰수사에 대한 통제 △검사 작성 피의자 신문조서의 증거능력 요건 강화 등의 변화가 생겼다. 경찰은 이 같은 조정에 대해 “검사 지배적 수사구조를 벗어나 민주적 형사사법체계로 나아가기 위한 수사구조개혁 논의가 결실을 보게 됐다”고 평가하고 있다. 다만, 검찰은 여전히 경찰에 보완수사 요구나 시정조치 요구, 재수사 요청 등을 할 수 있고 부패범죄, 경찰공무원의 범죄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는 검사가 직접수사를 개시할 수도 있다.
2 검경 수사권 조정 대립의 역사
‘수사권 조정’ 논란은 일제강점기로 그 기원이 거슬러 올라간다. 1912년 조선형사령에 의해 ‘검사 지배형 형사사법구조’가 형성된 채로 해방을 맞았다. 해방 후에는 1954년 형사소송법이 제정됐고, 당시 국회는 기소와 수사가 분리된 영미식의 분권화된 형사사법체계 도입을 추진했으나 혼란한 사회 여건에 의해 무산됐다. 1961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세운 군사정권 이후에도 헌법과 형사소송법에서 검사의 독점적 영장청구권이 규정되는 등 검사 지배형 수사구조는 더욱 고착화됐다. 이 같은 구조에 변화를 논하기 시작한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여정부 때다. 참여정부는 ‘경찰에 민생치안범죄 독자적 수사권 부여’를 목표로 수사권 조정을 추진했으나 정치적 상황으로 결론을 내지 못했고, 2011년 이명박 정부에서야 경찰의 ‘수사 개시·진행권 명문화’를 담은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나왔다.
3 문재인 정부의 수사권 조정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대선 당시부터 ‘수사와 기소의 분리’를 공약으로 제시하고, 대선 후 수사권 조정을 국정과제로 선정해 추진했다. 결국 2018년 6월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문이 발표되고 2019년 1월부터 본격적인 입법 절차에 들어갔다. 같은 해 4월 수사권 조정 법안인 형사소송법 및 검찰청법 개정안이 국회 패스트트랙(신속처리법안)에 포함되며 자유한국당이 강력 반발하는 ‘패스트트랙 사태’가 벌어져 이에 대한 검찰 수사가 이뤄지기도 했다. 결국 지난해 12월 3일 국회 본회의에 부의된 수사권 조정 법안은 지난 9일 본회의 상정, 13일 본회의 표결을 거쳐 입법 절차가 완료됐다.
4 검찰의 수사지휘권 폐지 및 쟁점
수사권 조정 이전의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일선 경찰 수사관뿐만 아니라 간부급 경찰인 경위∼경무관까지는 사법경찰관으로서 모든 수사에 관해 검사의 지휘를 받는다. 사법경찰관은 검사의 지휘가 있을 때는 이에 따르도록 돼 있다. 그러나 수사권 조정안은 이러한 검사의 수사 지휘를 폐지했다. 검사와 사법경찰관은 수사와 공소 제기 및 공소 유지에 관해 서로 협력해야 한다. 이번 조정안은 이처럼 기존 사법경찰관에 대한 검사의 지휘 조항을 없애고 검사와 사법경찰관의 협력 의무를 명시한 것이다. 다만 이를 두고는 수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국민 권익 침해가 우려됐다. 사법경찰관의 수사에 대한 견제와 감시로 인권을 보장하는 방향의 사법 통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사법경찰관이 혐의가 인정된 사건에 대해서만 검사에게 송치하는 것도 논란이 되고 있다. 모든 사건이 사법 전문가인 검사에게 송치돼 법률 판단을 거쳐야 사건 관계인의 권익 구제와 인권 보장을 충실히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개정안에 따라 사법경찰관에게 1차 수사종결권을 부여할 경우 검찰 송치 없이 경찰이 자체 종결하는 사건 비율은 전체 40%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5 경찰의 1차 수사종결권 및 쟁점
경찰은 이번 형소법 개정으로 “혐의가 없다”고 판단 내린 사건에 한해 수사를 종결할 수 있는 권한인 1차 수사종결권을 부여받았다. 혐의가 인정된 사건은 이전과 같이 검사에게 송치한다. 경찰은 이로 인해 “수사의 책임 소재가 명확해지고, 같은 내용을 두고 두 번 조사를 받는 불편함이 개선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반면 검찰은 국민 권익 보호가 어려워진다고 주장해왔다. 경찰이 ‘혐의 없음’ 판단을 할 경우 법률전문가인 검사가 경찰의 위법 행위가 있었는지, 법률적으로 오판했는지 등을 검토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경찰이 “혐의 없음”으로 결론 내렸다 하더라도 검찰이 이를 재수사할 권한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검찰은 경찰이 불송치 결정을 한 기록과 관련된 증거를 90일간 들여다보고 재수사를 요청할 수 있다. 고소인이나 피의자가 직접 이의를 신청하는 제도도 마련돼 있다. 이의 제기 시 경찰은 사건을 검찰에 송치해야 하고, 문제가 발견될 경우 검찰은 직접수사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이로 인해 검경 갈등이 재연될 수 있다고 본다. 검찰이 재수사 요청을 하더라도 경찰이 사건을 불송치하고, 다시 검사가 재수사를 요청하는 상황이 무한 반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지난해 12월 30일 검경 수사권 조정에 대한 수정안을 내놓은 여야 의원들은 “재수사 요청의 반복을 방지하기 위한 세부 수사 준칙을 마련해야 한다”는 합의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검경 수사권 조정안이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75회 국회 제1차 본회의에 상정돼 가결되고 있다. 뉴시스
6 영장청구권 독점 문제 쟁점
개정된 형소법에 따르면 경찰이 수사의 필요에 따라 신청한 영장을 검사가 정당한 이유 없이 법원에 청구하지 않을 경우, 경찰은 해당 검사를 관할하는 고등검찰청에 설치된 영장심의위원회에 영장 청구 여부에 대한 심의를 신청할 수 있다. 경찰은 이에 대해 “영장심의위원회를 외부위원으로 구성하고 경찰 의견 개진권을 부여하는 등 검사의 독점적 영장청구권 남용에 대한 최소한의 견제 장치를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경찰은 이에 한발 더 나아가 강제수사에 필수불가결한 영장청구권을 검찰이 독점하는 문제가 개선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영장청구권은 현행 헌법 제12조 3항 및 제16조 등에서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이라고 적시돼 있다. 이른바 검찰의 ‘독점적 영장청구권’이다. 경찰청은 민갑룡 경찰청장 및 전국 경찰 간부들이 참석한 가운데 15일 열린 ‘전국 경찰 지휘부 화상회의’ 후 낸 보도자료에서 “헌법상 검사의 영장청구권을 삭제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경찰 관계자는 “영장 청구의 주체를 ‘검사’에 국한시켜 놓은 나라는 한국 외에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며 “개헌이 어려운 절차인 것은 맞지만, 반드시 나아가야 할 길”이라고 말했다.
7 검찰의 직접수사 제한
검사의 직접수사 개시 범위 제한도 논란이 되고 있다. 검사의 직접수사 개시 범위는 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 범죄, 경찰공무원 범죄 등 대통령령이 정하는 범위 내로 제한됐다. 그러나 중국을 제외한 미국과 독일, 프랑스, 일본 등 주요 선진국은 검찰의 직접수사 범위를 제한하지 않고 있다. 최초 송치사건에 대한 제한이 불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개정안은 경찰이 자체 수사하고 기소의견으로 송치한 사건에 대해 검사의 수사를 위증과 허위감정, 증거인멸, 무고로 제한했다. 그러나 범죄 대응 및 인권 보장을 위해서는 검찰의 보강수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례로 ‘버닝썬 경찰총장’으로 불렸던 윤모 총경의 경우 경찰은 특가법위반과 증거인멸교사 혐의를 누락했지만 검찰의 추가 수사로 구속까지 이끌어낸 바 있다.
8 검찰 반발·진보진영도 비판
검찰에서는 이번 수사권 조정이 결국 국민에게 피해가 돌아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수사권 조정안의 사건종결권 부여와 관련해 사법경찰관이 변사사건을 두고 ‘혐의 없음’ 처분을 내릴 경우 검사는 변사체 검시 등에서 타살 의심을 발견하더라도 수사에 관여할 기회를 보장받지 못한다. 또한 선거 사건 수사도 차질이 빚어질 것이란 우려가 나왔다. 선거 사건 수사는 6개월간의 단기공소시효가 적용되는데, 사법경찰관이 검사 수사 지휘 없이 공소시효에 임박해 사건을 보내게 되면 추가 증거 수집이나 관련자 조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이 같은 경우는 사실상 ‘경찰공화국’이 되는 셈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반대 목소리는 참여연대 등 진보진영에서도 제기됐다. 양홍석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은 “수사 절차에서 검찰의 관여 시점과 범위, 방법을 제한한 건 국민 기본권 보장 측면에서 부당하다”며 “개정이 옳은 방향인지 의문”이라며 소장직에서 물러났다.
9 경찰 입장 및 후속조치
경찰은 이번 수사권 조정으로 “독립기념일에 준하는 경사를 맞았다”며 환호하는 분위기다. 다만 지휘부는 “변화에 따른 책임감을 무겁게 받아들이겠다”며 자중하는 분위기 속에서 후속조치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경찰청은 우선 경찰청 차장을 본부장으로 하고, 수사국장을 부본부장으로 하는 ‘책임수사추진본부’를 발족한다. 또 전국의 각 지방경찰청 단위에도 2부장(차장)을 단장으로 하는 ‘책임수사 실무추진단’을 구성해 경찰수사 개혁 과제들이 통일성 있게 정착되도록 지원키로 했다. 책임수사추진본부는 형사소송법 개정에 따른 대통령령 제정과 국가수사본부 추진, 경찰 수사의 전문성과 공정성을 높이는 개혁 과제의 발굴·추진·정착 등의 업무를 담당한다. 경찰 관계자는 “추진본부를 통해 대통령령뿐 아니라 하위법령을 세밀히 정비하고, 그에 따른 실무지침 마련과 현장교육을 추진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경찰은 이외에도 영장심사관과 수사심사관을 전국적으로 확대하고, 시민들로 구성된 ‘경찰 사건심사 시민위원회’를 설치하는 등의 내·외부 통제장치도 강화하기로 했다. 수사 품질의 균일화를 위해 중요 사건에 대한 지도 및 조정 업무를 수행하는 총경급의 ‘책임수사지도관’도 이번에 신설한다.
10 경찰의 고민과 숙제
수사권 조정 법안으로 경찰엔 고민과 숙제도 남겨졌다. 비대해진 권한만큼, 경찰개혁의 필요성도 수면 위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 등 여권도 앞으로 진행될 권력기관 개혁의 핵심으로 ‘경찰개혁’을 꼽았다. 법조계 및 정치권 등에서는 경찰의 권력 비대화 방지를 위한 ‘자치경찰제’가 지지부진하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해 3월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법 전부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이후 별다른 논의 진전이 없기 때문이다. 경찰이 이번에 확보하게 될 독립적 수사기능과 더불어 정보기능을 활용해 집권 정부 입맛에만 맞는 공작을 펼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정보경찰은 검사장 승진 후보군 등 검찰 간부 150여 명에 대해 세평 수집에 나섰다 논란이 일었다.
이런 사례를 비롯해 경찰의 친권력적 행태도 개선해야 할 문제로 꼽힌다. 경찰은 ‘드루킹 사건’ 당시 친문(친문재인) 실세인 김경수 경남지사의 휴대전화를 압수수색하지 않아 증거인멸을 방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반면 2018년 6·13 지방선거 당시 청와대로부터 첩보를 하달받아 울산시장 야당 후보였던 김기현 전 울산시장의 측근 비리 수사에 나서면서 ‘청와대 하명수사’ 의혹을 받고 있다. 또 경찰이 부실한 수사 능력에 대해 의구심을 아직 해소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여전하다.
송유근·김온유 기자 6silver2@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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