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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지식카페 게재 일자 : 2020년 01월 29일(水)
고대제국 기본틀이었던 신분제… 고조선도 ‘4개 세습계급’ 사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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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용하의 인류 5대 ‘古朝鮮문명’ - (12) 고조선의 사회신분

- 한민족 문명학
‘왕족-귀족-평민-노비’로 이루어져… 거울·칼·옥 유물들은 ‘천부인’ 왕족의 상징
관료·장군 역할 귀족 ‘수레’ 소유하기도… 생산담당 평민은 부의 정도에 따라 다시 3개층으로 구분


인류에게 구석기시대는 사회학적으로 서열(rank)만 있었지 신분(estate)과 계급(class)은 없었다. 구석기인 무리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우두머리(Head, Chief)로 뽑아 그의 향도에 따라 사냥과 식료 채집을 하러 유랑하면서 겨우 생존을 유지했고, 무리의 나머지는 모두 평등했다.

그러나 신석기시대에 농경사회가 시작되고 잉여생산물이 발생하여 축적되기 시작하자, 이를 분배하는 과정에서 우두머리를 비롯하여 그의 측근들이 서열의 상위를 기득권화하고 잉여생산물 분배에서 특권을 세습적으로 설정하고자 하여 ‘신분’이 발생했으며, 신석기 말기에는 제도로서의 사회신분제도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우두머리(chief)는 자기의 지위를 자기 자손에게 세습시키는 군장사회(chiefdom, 君長社會)를 형성해 나갔으며, 측근에게 특권을 나누어 주어 세습 ‘귀족’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군장사회가 고대국가·고대사회 형성으로 진전됨과 동시에 사회신분도 완전히 제도화되었다. ‘신분’과 ‘계급’의 가장 큰 차이는 신분은 대대로 ‘세습’되는데 비하여, ‘계급’은 세습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신분은 세습되는 계급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인류의 모든 고대사회는 신분제 사회였다. 신분제 사회에서는 ‘능력’이 아니라 출생 ‘신분’이 지위와 직책의 범위를 결정했다. 인류사회의 신분제도가 폐지된 것은 18∼19세기 때였다. 영국은 아직도 신분제를 농노제 폐지 이외는 유지하고 있다. 인류는 약 4000∼5000년간 신분제도 속에서 생활한 것이다.

고조선이 약 5000년 전 동아시아 최초의 고대국가로 건국되고 고대연방제국으로 발전됨에 따라 고조선 문명권의 세습적 사회신분제도가 발전되었다. 고조선은 한국역사 최초의 신분제 사회였다. 고조선문명권의 사회신분제도는 기본적으로 4개 큰 신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①왕족(제왕 및 후국소왕의 왕족) ②귀족 ③평민 ④노비의 4신분이 그것이다.

고조선 제왕의 지위와 역할은 국가 최고통치자의 지위를 갖고, 통치에 필요한 모든 자원을 사용처분할 특권을 가지면서, 국가와 국민을 외부의 적으로부터 보호하고 국민의 생존을 유지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었다. 고조선 왕족은 혈연적 씨족공동체를 형성하여 여러 가지 신분적 특권을 누리면서 제왕의 통치를 엄호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삼국유사’ 고기에는 환웅이 환인(하느님)으로부터 지상으로 내려가 사람을 통치하라는 천명의 증거로서 ‘천부인’(天符印·하느님이 만들어 주신 증명) 3개의 통치권 증거물 관련 기록이 있다. 출토되는 고고유물에서 보면 천부인 3개는 ①거울 ②칼 ③옥이었다. 이 세 가지 보물이 한 벌로 발굴되면 왕족무덤인 것을 알 수 있다. 고조선의 왕족 표징의 하나인 ‘청동거울’은 왕족 자신들이 하느님(환인·桓因, 천신·天神)의 아들과 자손이라고 생각하고 그 증거로 사용했다. 고조선의 청동거울(다뉴조문경과 다뉴세문경)이 다른 문명과는 달리 언제나 둥근 형태인 것은 ‘하늘’(천원·天圓)과 ‘해’(태양)를 상징한 것이었다고 해석된다. 둥근 청동거울의 뒷면에는 ‘햇빛살’ 무늬를 도안하고, 왕족, 무장(武將)인 경우에는 ‘번개’ 무늬를 도안했다.

고조선 왕족 표징의 하나인 ‘청동검’은 부계인 ‘한’족과 적대세력을 제압하는 ‘힘’을 상징한 것으로 해석된다. 고조선 왕족 표징의 하나인 ‘옥’은 모계인 ‘맥’족과 부드러운(곡선적) 선정(善政)의 문화를 상징한 것으로 해석된다.

고조선문명권의 청동기시대 고고유적·무덤들 가운데 부장품으로 ①청동거울 ②청동칼 ③곡옥(또는 환옥)이 한 벌(한 세트)로 출토되는 무덤들이 가끔 있다. 이것은 일단 고조선의 단군계 왕족의 무덤이라고 볼 수 있다. 고대연방국가는 변방에 왕족 무장을 파견하여 주둔시킨 경우가 많았다. 예컨대 중국 요령성 심양 정가와자 6512호 목곽무덤은 이러한 무덤으로 추정된다. 이 무덤에서는 42종 797점에 달하는 부장품 가운데서 ①청동거울(다뉴세문경) 1개 ②비파형동검 3개 ③옥 목걸이 1개가 한 벌로 나와서, 이 무덤 주인공이 고조선 단군계 왕족 출신 무장임을 알려주고 있다. 이 무덤의 주인공은 4필의 말이 끄는 수레를 탔으며, 수레를 화려하게 치장했다. 이것은 말머리에 새 깃털을 화려하게 꽂아 붙이는 나팔형 청동기가 4개이고, 모든 마구가 4벌씩인 데서 알 수 있다. 화려한 수레와 치장은 일종의 신분재(身分財)였다.

고조선 후국의 군장·족장들 가운데 단군왕검의 직계혈통 후손이 아닐지라도, 고조선 왕족의 성씨를 하사받은 ‘단’(檀), ‘한’(韓), ‘한·간’(汗), ‘해’(解), ‘아사나’(阿史那) 등 성씨의 다음 후국군장들은 일단 고조선문명권의 일종의 ‘왕족’이라고 볼 수 있다.

①부여의 왕족 -‘해’(解) 씨 ②선비의 왕족 -‘단’(檀) 씨 ③유연의 왕족 -‘대단’(大檀) 씨 ④산융(원흉노) 왕족-‘단’(檀) 씨 ⑤철륵(정령, 원돌궐) 왕족-‘아사나’(阿史那) 씨

대동강 유역에는 고조선 왕족의 무덤들이 다수 있는데, 문헌이 없어서 어느 왕족의 것인지 판별할 수 없다. 이 가운데 1958년 건축공사 중 우연히 발견된 무덤의 출토 유물 중에 ‘부조예군(夫租예君)’이라는 인장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부조예군묘’라고 통칭하는 무덤이 발굴되었다. 이 무덤의 출토품을 통하여 고조선 말기(BC 2세기) 고조선 후국인 예족 군주 말단 왕족의 생활실상의 극히 일부를 들여다볼 수 있다.

‘부조예군묘’의 부장품으로는 먼저 무기류로 ①고조선식 세형동검 1개(조립식 세형동검으로 손잡이를 제외한 검 몸체의 길이 39.6㎝·그림 1)를 비롯하여 ②다수의 청동제 마구류 ③청동제 수레부속품 ④무기류 등이 출토되었다.

고조선 후국의 몰락왕족도 화려한 무장을 하고, ‘기마’를 했을 뿐 아니라, ‘수레’도 애용하였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었음을 알 수 있다.

고조선 후기와 말기·민족이동기에는 후국민족의 족장 또는 군장들이 ‘가’(加, Ka, Ga)의 명칭에 머물지 않고 ‘한’(Han, 제왕·왕)을 칭하여 ‘가한’(가+한) ‘칸’ ‘간’(Kahan, Gahan, Khan, Gan)이라고 호칭한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후국민족 ‘칸’ ‘간’들도 신분이 왕족으로 상승된 경우라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세계사에서 왕 또는 제왕을 ‘칸’(Khan), ‘간’(Gan), ‘한’(Han), ‘가한’(Gahan)이라고 호칭한 왕족의 부계는 모두 고조선 후예계통이라고 볼 수 있다. 유럽중세사를 읽으면, 군주국들 가운데, ‘칸 군국(君國)’(‘Khanate’)이라는 군주국들이 10여 개 나오는데, 이들은 고조선 연방제국 해체 후 기마부대를 이끌고 서방이동한 고조선 문명 후예들이 유럽에 세운 중세국가들이다. 오직 고조선문명에서만 왕을 ‘한’ 또는 ‘칸’으로 호칭했기 때문이다.

고조선의 사회신분제도에는 왕족의 바로 아래 ‘귀족’ 신분이 형성되어 있었다. 특권적 행정관료 또는 부하 무장(武將)이 되어 위로는 제왕의 통치를 보좌하면서 아래로는 평민지배를 담당하고, 전쟁이 일어나면 군사의 장군·장교 또는 지휘관의 일부가 되어 국방을 담당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고조선 사회의 귀족신분은 ①관료귀족과 무장 ②일반귀족 ③천군(천군·天君, 산군·神官)의 세 집단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고조선에서는 최고위 관료귀족을 ‘가’라고 불렀다. 한자 발음표기에는 加, 伽, 可, 柯 등의 여러 가지 한문글자로 ‘가’ 발음이 표기되었다. 후국 부여에서는 관직명으로 ‘가’를 붙여서 ‘마가’(馬加)·‘우가’(牛加)·‘저가’(저加)·‘구가’(狗加) 등과 같이 ‘가’(加)가 장관직 명칭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고조선의 도읍 아사달 주변과 후국들의 수도 국읍들의 주변에는 ‘소도’(蘇塗)라는 별읍(別邑)을 설치하고, 여기에 ‘단군신’(檀君神, 天神, 단굴, Dangun, Dangur)의 제사를 담당하는 제사장인 ‘천군’(天君)이라는 호칭의 ‘신관’(神官)을 두었다. 이 소도별읍의 ‘천군’은 특수한 귀족신분의 하나였다.

권세 있고 부유한 귀족(大加)은 ‘수레’를 소유했으며, 거의 모든 귀족이 ‘말’을 기마용으로 소유했다. 고조선의 요서지역 영성현 남산근 102호 귀족무덤에서 출토된 뼈에 두 마리의 말이 끄는 수레의 그림(그림 3)이 새겨져 있어서 ‘고조선식 수레’를 복원할 수 있게 되었다.

귀족신분의 특징은 생산노동에는 종사하지 않고 정치·행정·군사(장교)에만 참가하여 활동하는 데 있었다. 부여의 경우와 같이 전쟁이 일어나면 고조선의 귀족 남자는 모두 군인으로서 전쟁에 참가했다. 고조선사회 인구의 절대다수를 점했던 기본신분은 평민이다. 평민신분의 지위와 역할은 제왕과 귀족신분의 지배 아래에서도 일종의 ‘자유민’으로서 고조선사회를 지탱하는 모든 ‘생산활동’ 담당 역할을 수행한 것이었다. 평민신분의 생산활동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농경과 목축이었고, 다음 보조적인 것이 수공업과 상업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평민신분은 조세, 군역, 부역의 의무도 담당했다. 마을에 남아 있는 공유지경작, 수로시설, 고인돌축조, 대건축·제단·성곽 등의 토목공사들도 두레를 편성하여 주로 평민신분이 담당했다.

평민은 ‘소가족제도’의 독립가족 생활을 했다. 고조선 시대의 집자리 발굴 결과를 보면, 한 집자리는 평균 약 5명이 거주할 수 있는 공간이어서 고조선의 가족제도는 평민의 경우 ‘소가족제도’였다고 볼 수 있다. 고조선사회의 평민은 3개 층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①호민(豪民) ②소민 ③하호가 그것이다. ‘호민’은 부유한 평민을 가리킨 것이다. 소민(小民)은 평민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자유민이었으며, 농업 종사의 경우 자영농민(그림 2)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고조선시대에는 인구에 비해 개간가능한 미간지가 많았으므로 소민(小民)은 가족노동력을 활용하여 미간지를 ‘개간’해서 경작하여 농민적 토지소유를 정립하고 얼마든지 ‘자영농민’이 될 수 있었으리라고 추정된다.

고조선 사회의 ‘소민’은 인구 구성에서 절대다수를 점했으며, 신분은 ‘자유민’이었으나, ①조세납부와 ②병역의무와 때로는 ③부역의 의무가 있었다. 조세는 생산물의 20분의 1인 이십취일세(二十取一稅)가 기준이었다. 고중국 맹자는 이 세율이 가볍다하여 ‘맥도’(貊道)라고 호칭했다.

‘삼국지’ 위서 부여전에서 (소민이) “활·화살·칼·창을 병기로 사용하며, 집집마다 자체적으로 갑옷과 무기를 보유했다”고 서술한 것은 ‘소민’이 전쟁시기에는 모두 스스로 무장한 ‘병사’가 되는 ‘전민개병(佃民皆兵)’ 신분이었음을 쓴 것이다. ‘소민’은 스스로 무장할 수 있었다는 면에서 명백히 ‘자유민’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하호’는 평민 신분층 가운데서 최하위층에 있던 가난한 평민을 가리킨다. 그들은 사회신분은 평민이고 자유민이었으나, 경제적으로 영락하여 노비신분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는 빈곤한 평민이었다.

고조선사회에서는 ‘천민신분’으로서 ‘노비’신분이 형성되어 있었다. 고조선 노비신분의 사회적 지위는 주인(노비주)의 재산으로 규정되어 자유와 권리가 전혀 없는 예속된 천민으로서, 우마처럼 사역당하고 매매되는 최하층 신분이었다. 고조선 노비신분의 역할은 주인의 지시에 따라서 ①가사노동을 주로하고 ②생산노동 ③기타 온갖 잡역 노동을 수행하는 것이었다. 고조선의 ‘범금8조’의 한 조항에, “도둑질한 남자는 가노(家奴)로 삼고, 여자는 비(婢)로 삼는다. 단 재물로 죄를 면하여 속량하고자 할 때에는 1인당 50만을 배상하도록 한다”는 조항은 고조선사회에 ‘노비제도’가 실재했었고, 노비는 우마처럼 매매되었으며, 속량가격은 약 50만이었음을 잘 알려주고 있다. 고조선사회 전체의 신분 구성에서 수적으로 대부분을 점유하면서 생산을 담당한 것은 ‘평민’이었고, 왕족과 귀족이 그들을 지배하면서 4신분이 함께 고조선 문명을 만들어 나갔다고 볼 수 있다.
(문화일보 12월 31일자 16면 11 회 참조) 서울대 명예교수


■ 용어설명

부조예군(夫租예君) : 대동강 유역에서 1958년 건축공사 중 발견된 고조선 왕족의 무덤. 출토 유물 중에 ‘부조예군’이라는 인장이 포함돼 있어 ‘부조예군묘’라고 통칭한다. 이 무덤의 출토품을 통해 고조선 말기(BC 2세기) 고조선 후국인 예족 군주 말단 왕족의 생활상 일부를 들여다볼 수 있다. 고조선식 세형동검, 다수의 청동제 마구류와 수레부속품, 무기류 등이 출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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