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탄소년단 ‘온’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기도했던 윤동주는 끝내 제목을 붙이지 않았다. 유고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내면서 편집자가 이 시를 맨 앞에 실은 연유로 그냥 제목이 ‘서시’가 됐다. 제목이 뭐 그리 중요한가. 내용만 좋으면 됐지. 하지만 창작자, 제작자들은 제목을 허투루 짓지 않는다. 함축적 메시지와 이미지, 그리고 청각 인상의 가치는 종종 가격과 맞물리기 때문이다.
제70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대된 홍상수 감독의 영화제목은 ‘도망친 여자’다. 의미를 묻자 편리한 답변을 했다. “영화를 보고 관객이 느끼길 바란다.” 골수 팬들은 옛날제목들도 소환할 성싶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2009) 예단하지 마. 살다 보면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2015)는 경우가 적잖으니까.”
방송 PD들도 제목탄생의 산고를 겪는다. 시즌3까지 이어온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EBS 1TV)와 후발주자 ‘개는 훌륭하다’(KBS 2TV)를 보자. 개도 여러 종류 듯 세상엔 좋은 사람, 나쁜 사람, 싫은 사람, 훌륭한 사람 등이 두루 섞여 있다. 한없이 좋은 사람이었다가도 꼴도 보기 싫은 사람이 되기에 결혼식장과 이혼 법정은 의외로 멀지 않다. 반대로 무척이나 싫은 사람이었는데 나중에 보니 훌륭한 사람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속단은 금물이다. 들은 얘기와 겪은 얘기는 사뭇 다르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주철환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노래채집가
공교롭게도 방탄소년단(사진)의 새 앨범 타이틀곡 제목이 ‘온’(on)이다. 그들의 행보, 아니 등정은 좀체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4집 ‘맵 오브 더 솔(MAP OF THE SOUL): 7’은 미국 빌보드, 영국 오피셜 앨범차트와 함께 일본 오리콘차트마저 정복했다.
PD 시절 스튜디오 녹화 시작을 알리는 신호는 ‘인’(in)이었다. 그에 반해 시청자가 프로그램을 만나는 지점은 ‘온’(on)이다. 궁금증이 생긴다. 방탄소년단은 창작과 공연이 늘 즐거울까.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보자. ‘나의 고통이 있는 곳에/내가 숨 쉬게 하소서’(‘온’ 중). 타이틀에 적힌 7은 멤버 7명과 데뷔 7년, 거기에 행운의 뜻(러키세븐)도 포함됐다. 일곱 청년이 그리는 ‘영혼의 지도’가 행운에 머물지 않고 행복으로 연결되려면 리더 RM이 말한 것처럼 언어, 국가, 인종을 초월해야 한다. 세상에 나쁜 음악은 없다. 그것이 널리, 멀리, 오래 퍼지면 그때 훌륭한 음악으로 인증될 뿐이다.
‘네가 뭐라던/누가 뭐라던’(‘온’ 중). 핵심은 초심과 진심이다. ‘한 발자국 떼면/한 발자국 커지는 shadow’처럼 그림자는 결국 스스로가 만든다.
그러므로 ‘제 발로 들어온 아름다운 감옥’에선 최고, 최초보다 최후가 중요하다. 그래서 그들은 지혜롭게 노래한다. ‘언젠가 이 함성 멎을 때 stay hey/내 옆에 함께 있어 줘’(방탄소년단 ‘친구’ 중).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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