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 속의 ‘낯섦’… 홍상수, 세계를 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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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친…’베를린영화제 감독상
“비꼬는 듯한 불편함도 사라져”

“홍상수 감독은 만남을 미니멀리즘적으로 묘사한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간) 폐막한 제70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심사위원단은 은곰상 감독상 수상작인 홍상수(사진) 감독의 ‘도망친 여자’에 대해 이같이 평했다. 홍 감독의 24번째 장편 연출작인 이 영화는 결혼 후 한 번도 남편과 떨어져 지낸 적이 없던 여인이 남편이 출장 간 사이, 두 번의 약속된 만남과 한 번의 우연한 만남을 통해 세 명의 옛 친구들을 만나는 이야기를 그렸다. 김민희가 홍 감독 영화에 7번째 주연을 맡았으며 서영화, 송선미, 김새벽, 권해효 등이 출연했다. 심사위원단은 “이 영화는 많은 부분이 드러나지 않지만 무한한 수의 세계가 가능하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밝혔다.

홍 감독 작품은 매번 비슷한 형식으로 전개돼 ‘자기 복제’라는 비판도 나온다. 즉흥적으로 만든 듯한 느낌을 전하는 그의 작품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밑도 끝도 없는 대화를 펼치는 상황이 반복된다. 술자리 장면이 빠지지 않는 것도 특징이다. 이번 영화도 전작들과 비슷한 틀로 펼쳐진다. 하지만 이런 ‘익숙함’ 속에 담긴 ‘낯섦’이 세계 영화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요소로 작용한다. 이번 베를린영화제에서 ‘도망친 여자’를 관람한 김영덕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프로그래머는 “형식은 홍 감독 전작들과 비슷하지만, 완전히 다른 이야기라는 느낌이 들었다. 홍 감독은 화가가 자기만의 색으로 그림 그리듯 특유의 형식으로 작품을 풀어내지만 ‘자기 복제’라는 표현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며 “이번 작품은 직설적이거나 자조적이지 않고, 비꼬는 듯한 불편함도 없어졌다. 남자들의 허세와 지질함을 유쾌하게 보여주는 여성 시각의 영화”라고 설명했다.

홍 감독은 수상 후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서 “나는 큰 그림을 그리거나 큰 의도를 갖는 그런 세계에 살고 있지 않다”며 “작은 세계에서 조그맣게 사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되도록 큰 의도를 갖고 만들려는 유혹을 떨쳐버리려고 노력한다”며 “강한 것이 아니라 섬세하고 세부적인 것에 집중하려고 노력한다”고 강조했다.

해외 매체들의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스크린 데일리는 “여성 캐릭터 중심의 스토리텔링이 만들어 낸 섬세함은 절제돼 있으면서도 매력적”이라고 전했고, 인디와이어는 “통렬한 스케치를 통해 절제된 톤으로 많은 깨달음을 줄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김구철 기자 kc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