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수의 지식카페>빛마저 굴절시키는 중력의 렌즈로 87억 광년 떨어진 천체를 보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우주의 은하수에서 먼 별과 가까운 별 사이에 숱한 중력효과가 일어나고 있다. 이론적으로는 만일 탐사선이 태양으로부터 지구-태양 거리의 550배 이상 떨어지면 태양이 일으키는 중력렌즈 효과를 관측할 수 있다고 한다.

■ 우주과학사

이관수의 멀티버스 - ⑦ 중력렌즈

1979년 초 37억 광년 떨어진 은하에 의해 굴절돼 2개로 보이는 쌍둥이 퀘이사 첫 발견
한국 여성 물리학자 장경애·이선홍 박사 마이크로렌징 효과 규명에 큰 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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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볼록렌즈가 빛을 모으는 것처럼 별의 중력도 빛을 모은다. 그렇다면 별의 중력을 천체 망원경의 렌즈처럼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 모두가 알듯이 빛은 볼록렌즈를 통과하면 한 점에 모이게 된다. 그런데 일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질량은 공간을 구부리고, 구부러진 공간을 지나는 빛은 휘어져 나간다. 별의 중력과 볼록렌즈는 현상의 원인은 다르지만 빛을 모은다는 점에서 같다. 따라서 원리적으로 별이나 은하의 중력은 마치 볼록렌즈처럼 더 멀리서 오는 빛을 모으고 확대하는 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바로 중력렌즈다.

몇몇 사람이 이런 발상을 떠올렸지만 정작 일반상대성이론의 창안자 아인슈타인은 1936년 “이런 현상을 관찰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우주는 아인슈타인의 상상 이상으로 다채롭다. 오늘날 천문학자들은 다양한 중력렌즈 현상을 관측하고 있다. 심지어 아인슈타인이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별급 천체’는 물론, 행성이 일으키는 중력렌즈 현상도 확인했다. 여기에는 한국 출신 여성 물리학자들도 요긴한 역할을 했다.

교과서에는 1929년 허블이 우주팽창을 발견하면서 빅뱅우주론이 시작됐다는 식으로 요약하지만, 그것은 결과론적 해석일 뿐이다. 실제로는 1950년대 말까지 일반상대성이론이나 빅뱅우주론을 확신한 과학자는 소수였다. 허블이 우주팽창을 발견할 때 가까운 은하들만 관측했었다. 은하가 멀수록 빛의 파장이 길어지는데, 그가 관측한 은하의 빛은 0.6∼1%정도만 파장이 늘어난 것에 불과했다. (z값=0.006∼0.01) 여기서 z 값이란 천체에서 나온 빛의 파장이 지구에 도착할 때까지 우주팽창에 의해 늘어난 정도를 말한다. 실험실에서 관측하는 빛과 똑같을 때는 z=0. 파장이 1.5배로 늘어나면 z=0.5. 11배로 늘어나면 z=10이다. 그가 처음 발표한 우주팽창속도를 역산하면 우주의 나이는 20억 년쯤 된다. 그런데 이미 지질학자들이 30억 년이 넘는 암석을 발견한 이후였다. 우주가 지구보다 젊을 수는 없으니, 무엇인가가 잘못됐다는 점만 분명했다. 일반상대성이론도 극소수가 수학이나 철학의 관점에서 연구하고 경쟁이론을 제안하는 정도로만 연구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1948년 빅뱅우주론을 처음 제시한 조지 가모브도 일반상대성이론을 콕 집어 언급하지 않았다(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이론이 원리적으로 옳을 수밖에 없다고 여기고 다른 분야를 연구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1985년 처음 발견된 아인슈타인 십자가. 80억 광년 정도 떨어진 퀘이사가 4억 광년 떨어진 은하가 일으키는 효과 때문에 4개로 보인다.

이런 분위기는 1950년대 말에 일신됐다. 아인슈타인 사망 이후, 흩어져 있던 추종자들이 그의 유산을 발전시키기 위해 뭉쳤다. 때마침 퀘이사(Quasar·준항성체)가 발견되기 시작했다. 퀘이사는 별 하나 정도의 작은 점에서 엄청난 세기로 전파가 꾸준히 나오는 현상이었다. 퀘이사 z값은 그때까지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엄청난 크기였다. 최소한 30%에서 60% 정도 파장이 늘어난 빛이었다. 1970년대 중반 200%, 심지어 350% 정도까지 파장이 늘어난 퀘이사도 발견됐다. 만일 보통 은하의 적색편이가 그렇게 크다면 아주 멀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 하지만 퀘이사는 은하이기에는 너무 작았다. 반면에 적당히 멀리 떨어진 거대한 폭발이라고만 여기면, 당시로는 엄청나게 큰 z값을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연구자들은 우주론과 상대론을 결합해서 두 가지 해석을 내놓았다. 한쪽은 우주팽창이 허블 시대보다 훨씬 더 큰 규모로 확인된 것이라고 보았고, 다른 한쪽은 비교적 가까운 블랙홀 근처에서 발생한 빛이 블랙홀의 중력을 탈출하느라 겉보기에 z값이 커진 것이라고 보았다. 10여 년의 논쟁 끝에 노르웨이 출신의 슈 레프달을 비롯한 1960년대 젊은 연구자들은 중력렌즈가 해답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첫 중력렌즈 현상은 1979년 초에 발견됐다. 소위 쌍둥이 퀘이사가 발견된 것이다. 약 87억 광년 떨어진 퀘이사의 전파가 37억 광년 떨어진 가운데 은하에 의해 굴절돼 두 개로 보이는 것이었다. 이렇게 먼 물체의 모양이나 개수가 확연하게 달라져 보이는 현상을 강한 중력렌즈 현상이라고 부른다.

1985년에는 ‘아인슈타인 십자가’가 발견됐다. 약 80억 광년 떨어진 퀘이사가 4억 광년 떨어진 은하 때문에 4개로 보이는 현상이다. 1988년부터는 수백 개의 아인슈타인 고리가 발견됐다. 멀리 떨어진 은하가 가운데 은하 때문에 둥근 고리로 보이는 현상이다. 이렇게 한 장의 사진에 먼 은하나 퀘이사의 모양이 확실하게 변형돼 찍히는 현상을 강한 중력렌즈 현상이라고 부른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아인슈타인 고리. 먼 은하의 빛(파란색)이 가운데 은하(노란색)의 강한 중력렌즈 효과 때문에 대칭적으로 굴절돼 고리로 보이는 현상.

첫 중력렌즈 현상은 1979년 말 중력렌즈 연구의 방향을 틀어버린 획기적인 논문에서 나왔다. 독일에서 레프달의 지도로 연구하던 장경애 박사의 학위논문 일부가 네이처지에 실린 것이다. 한 은하 안에서 별들은 언제나 움직인다. 가운데 은하에서 벌어지는 별들의 운동이 먼 퀘이사의 이미지에 어떤 변화를 일으킬 것인가? 결론은 쌍둥이 퀘이사의 밝기가 조금씩 달라질 것이고, 대략 몇 달 정도를 계속 관찰하면 측정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이런 현상은 10년 후 실측됐다(퀘이사의 자체 밝기가 계속 조금씩 바뀌기 때문에 오로지 가운데 은하의 별 때문에만 퀘이사의 겉보기 밝기가 달라졌다는 것을 확인하는 데 오래 걸렸다).

은하 속 별급 질량이 은하 전체의 중력렌즈 효과에 변화를 준다면, 별급 질량이 홀로 일으키는 중력렌즈 현상도 관찰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현상을 작은 중력렌즈 현상이라는 뜻에서 마이크로렌징(Microlensing)이라고 부른다.

강한 중력렌즈 현상은 가운데 은하가 먼 은하의 겉보기 모습을 바꾸는 반면, 마이크로렌징 현상은 가운데 별이 먼 별의 밝기를 수십 일 동안 밝혔다가 원래대로 돌려놓는다. 레프달-장경애 논문 이후 마이크로렌징 현상의 이모저모가 진지하게 연구됐다. 1990년대 초 관측 천문학자들이 마이크로렌징 현상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이론가들은 더 작은 질량, 즉 행성급 물체가 일으키는 현상을 계산해보기 시작했다.

1992년 이선홍 박사는 남편 데이비드 베넷과 함께 지구급 질량도 마이크로렌징 현상에 관찰 가능한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는 점을 입증했다. 지구의 질량은 태양의 33만분의 1에 불과하지만, 태양급 가운데 별이 일으키는 밝기 변화 그래프에 지구급 질량도 관찰 가능한 작은 뿔을 만들 것이라는 거였다. 그 이전에도 행성급 질량이 마이크로렌징 그래프에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는 계산들이 있었지만, 가운데 별을 점으로 단순화시키고, 딸린 행성도 지구보다 300배 무거운 목성급으로 가정한 계산이었다.

이때부터 마이크로렌징 관측을 통해 외계행성을 찾는 발상에 실제로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부터 2020년 2월까지 86개의 외계행성이 마이크로렌징 기법으로 확인됐다. 대부분 은하수 중심부 방향에서 찾은 외계행성이다. 별들은 은하수를 공전하면서 제각기 나름대로 고유운동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태양에서 은하수 중심부를 바라보면 은하수 중심부의 먼 별 근처를 가운데 별들이 서서히 지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먼 별과 가운데 별들이 가까워졌다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구에서 겉보기에 서로 가까워졌다가 멀어지는 것이지만, 어쨌든 겉보기에 두 별이 가까워지면 먼 별의 빛이 가운데 별의 중력을 통과해서 지구에 온다는 뜻이다. 이때 먼 별의 겉보기 밝기가 가운데 별이 일으키는 마이크로렌징 효과 때문에 몇 십 일에 걸쳐 밝아졌다 어두워진다. 다만 마이크로렌징 효과는 원할 때 원하는 만큼 관찰할 수 없고, 실제로 그런 현상이 벌어지는 시기를 포착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먼 별의 밝기가 원래 달라지는 것인지 아니면 마이크로렌징 효과 때문에만 달라지는 것인지 판별해야 한다.

1936년 아인슈타인은 은연중 태양이 일으키는 중력렌즈 효과를 가정했다. 만일 탐사선이 태양으로부터 지구-태양 거리의 550배 이상 멀어지면 태양이 일으키는 중력렌즈 효과를 실제로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 떨어져도 태양의 코로나 때문에 태양의 중력렌즈 효과를 제대로 보기 힘들 것이다. 더구나 40년 전에 출발한 보이저 탐사선들이 이제야 지구-태양 거리의 120배가량 나아갔다. 그러니 아인슈타인이 중력렌즈 효과가 쓸모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다만 우주에는 그도 상상하지 못한 천체와 현상들이 가득한 것이다(장경애 박사는 청주대에서 은퇴했고, 이선홍 박사는 몇 년 전 요절했다. 선구자들의 영향인지, 한국이 마이크로렌징 분야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투자와 연구인력 규모에 비해 매우 높은 편이다). 과학사학자

■ 용어설명

퀘이사 : 퀘이사(Quasar·준항성체)는 블랙홀이 주변 물질을 집어삼키는 에너지에 의해 형성되는 거대 발광체이다. 퀘이사의 중심에는 태양 질량의 10억 배나 되는 매우 무거운 블랙홀이 자리 잡고 있고 그 주위에는 원반이 둘러싸고 있으며, 그 원반의 물질은 회전하면서 블랙홀로 떨어지고 있고 이때 물질의 중력에너지가 빛에너지로 바뀌면서 거대한 양의 빛이 나온다.

마이크로렌징 : 마이크로렌징(Microlensing)은두 천체가 시선 방향에 겹칠 때 앞 천체가 렌즈 역할을 해 뒤 천체의 밝기가 증폭되는 현상이다. 블랙홀과 같은 거대한 천체가 항성 앞을 지나갈 때 발생한다. 만약 천체의 정렬이 완벽하게 이뤄질 경우 무거운 천체가 마치 렌즈처럼 작용해 그 뒤에 위치한 천체의 빛을 왜곡하거나 증폭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