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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이인세의 골프역사… 그 위대한 순간들 게재 일자 : 2020년 03월 18일(水)
왓슨, 그림같은 ‘칩 인’… 니클라우스 두번 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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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백주의 혈투’서 승리후
1982년 디오픈 최종일 공동선두
17번홀 ‘칩 인’ 버디로 우승 차지
니클라우스 “또한번 날 죽이는군”


1988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바닷가에 자리 잡은 페블비치의 클럽하우스 내 레스토랑. 이곳에선 태평양이 한눈에 들어온다. 톰 왓슨과 몇몇 지인이 함께 저녁을 먹기 위해 자리를 잡았다. 다음 주 미국프로골프(PGA)투어 US오픈 참가를 위해 일찌감치 페블비치를 찾은 선수들이었다.

와인을 곁들인 식사를 하다 왓슨이 느닷없이 의미 있는 말을 꺼냈다. “그 샷을 한번 해보고 싶은 사람 없어?”

불쑥 꺼냈던 ‘그 샷’이란 1982년 이곳 페블비치에서 벌어진 US오픈 17번 홀에서 왓슨 자신이 연출한 ‘칩 인’샷을 뜻했다. 왓슨은 페블비치 클럽하우스에 앉아 6년 전 일을 회상했다. 골프 역사에서 위대하다고 일컬어지는 샷이었다. 왓슨은 어느덧 6년 전 페블비치 17번 홀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LA타임스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기술했다. “제82회 US오픈 마지막 날 17번, 18번 등 두 홀을 남겨놓고 왓슨과 잭 니클라우스가 공동 선두였다. 경기를 먼저 마친 니클라우스는 클럽하우스에서 TV로 왓슨의 마지막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17번 홀(파3)에서 친 왓슨의 공이 그린을 넘어 벙커와 벙커 사이의 왼쪽 깊은 러프에 빠졌다. 잘해야 파고, 보기가 일반적이었다. 어프로치를 꺼내 든 왓슨은 캐디를 봤다. 캐디는 왓슨에게 ‘되도록 가까이 붙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왓슨은 듣는 듯 마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린이 업 힐이어서 약간 뒤쪽으로 중심을 두고 클럽을 잡은 왓슨은 캐디의 조언처럼 샷을 붙이려는 동작을 보이지 않았다. 대신 그는 홀을 직접 겨냥하는 듯했다.

▲  이인세 골프역사칼럼니스트
왓슨은 생각했다. ‘만약 이 속도로 공이 핀을 넘어가면 1.5m는 더 지나가겠지. 하지만 나는 다음 샷을 하기 싫어. 나는 이 샷을 그대로 집어넣을 거야.’ 클럽을 떠난 공은 공중으로 떠올라 빠르게 그린으로 향했다. 그러고는 일직선으로 핀을 향해 굴러가더니 홀 속으로 사라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주위에 있던 갤러리들의 환호에 왓슨은 자신이 머릿속에 그려 넣은 대로 일이 진행됐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의 예감은 적중했다. 왓슨은 클럽을 든 채로 그린 주위로 뛰어다니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칩 인 버디를 기록하며 1타 차 선두가 됐다. 이제 마지막 남은 18번 홀에서 파만 하면 우승할 수 있었다.

왓슨으로서는 첫 US오픈 우승에 한발 다가서는 순간이었다. 마스터스와 디오픈에서는 이미 여러 번 우승했지만 US오픈 트로피는 들어 올리지 못했다. 승기가 오른 왓슨은 마지막 홀에서도 여유 있게 세컨드샷으로 공을 그린 위에 올려놨다. 3m로 다소 먼 거리였지만 주저 없이 퍼팅했고 공은 또다시 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갤러리들은 열광했다. 17번 홀에서 균형을 깨더니 2타 차로 벌리면서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통쾌한 승리였다.

클럽하우스에 있던 니클라우스가 18번 홀 그린으로 걸어 나왔고 왓슨에게 악수를 청했다. 니클라우스가 먼저 말했다. ‘나를 또 한 번 죽이는군.’ 니클라우스가 말한 것은 ‘태양 아래에서의 혈투’로 불린 1977년 디오픈이었다. 니클라우스는 이어 ‘하지만 당신은 자랑스러운 골프선수고, 당신과 경쟁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클럽하우스에서 와인을 손에 든 왓슨은 6년 전 니클라우스가 했던 말을 친구들에게 전하면서 “당시 경쟁자에게 그런 말을 건네준 니클라우스가 존경스럽다. 그는 스타의 자질을 갖춘 골퍼”라고 회상했다. 당시 니클라우스가 우승했더라면 5번째 US오픈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왓슨은 당시 6번째 메이저대회 타이틀을 차지했고 그 후 디오픈에서 2차례 우승했다.

골프역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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