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숭현의 지구문답>‘지오이드’는 지표 전체가 물로 덮여있다 가정해 만든 지구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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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48m 산, 1만1034m 해연
최고·최저간 변이 20㎞ 달해
지구, 매끈한 타원일 수 없어

“그래도 지구는 돈다.” 화형이 무서워 종교 법정에서 자신의 신념인 지동설을 부인하고 물러나던 갈릴레이가 나직이 뇌까린 것으로 알려져 있는 이 말은 지구 중심설은 물론 교황 권위의 자연성에 대한 부정이었다. 여기서 ‘돈다는 것’은 지구의 공전을 지칭하지만, 18세기 조선의 유학자 홍대용의 지전설에서의 ‘전’은 지구의 자전이었다. 홍대용은 지구의 공전을 몰랐던 것이다.

동아시아 전통에서 운동은 기본이었기에 조선 사회에서는 지구가 구형이라는 사실이 더 큰 충격이었다. 땅이 네모라는 세계관에서는 대륙의 중원이 중심일 수밖에 없지만 땅이 구형이라면 특별한 중심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내가 있는 여기, 바로 이 장소가 중심일 수 있다는 것이 홍대용의 깨달음이었던 것이다.

19세기 철학자 헤겔은 문명의 빛이 아시아에서 시작해 서쪽으로 이동하여 성숙해졌다고 주장한 바 있는데, 헤겔의 계승자인 현대 철학자 비토리오 회슬레는 문명이 계속 서쪽으로 전개한다면 지구는 둥글기 때문에 결국 발원지인 동아시아로 회귀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지구가 둥글다는 자연적인 인식은 이처럼 문명론이나 철학적 상상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상상은 가슴을 뛰게 하지만 과학은 이 거대 담론에 만족하지 않는다. 이론 없는 과학 활동은 무의미한 것으로 여겨 보편이론을 추구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과학은 디테일과 정확성을 추구한다. 즉 ‘지구는 둥글다’는 기초적 인식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둥글다면 얼마나 둥근가? 실제 지구에 가장 가까운 모양은 무엇일까?라는 식의 질문을 계속해서 던지는 것이다.

지동설에 대한 과학적 설명 체계를 만든 뉴턴은 지구가 타원체일 것이라는 가설을 제시한다. 지구는 빠른 속도로 자전하기 때문에 자전축과 수직을 이루는 부분이 부풀어 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 관측에 따르면 지구는 과연 구가 아닌 타원체다. ‘구’라는 것은 한 점을 중심으로 같은 거리에 있는 점들로 이루어진 3차원 단일 도형인 반면, 타원체는 두 초점으로부터 거리의 합이 같은 점들로 이루어진, 다양한 형태의 3차원 도형이다.

타원체는 두 초점이 하나로 포개져 있으면 구형이 되지만 두 초점 거리가 멀어질수록 더 납작해진다. 지구가 타원체라면 얼마나 납작한 것일까? 납작한 정도를 나타내는 ‘편평도’는 적도 반지름에서 극 반지름을 뺀 다음 적도 반지름으로 나눈 값인데, 구의 편평도는 0이고 숫자가 커질수록 타원체는 더 납작해진다. 지구의 편평도는 약 300분의 1로서 목성이나 토성보다 훨씬 더 구형에 가깝다. 왜 이런 차이가 나타나는 것일까? 행성의 편평도는 구성 물질과 자전 속도에 관계된다. 지구의 빠른 자전 속도를 고려하면 지구는 구형에 매우 가까우며 그 이유는 내부에 무거운 물질이 들어 있기 때문으로 추정한다.

우리가 경험하는 지구의 표면은 울퉁불퉁하다. 가장 높은 산인 에베레스트는 8848m며 바다 중 가장 깊은 챌린저 해연은 약 1만1034m니 변이의 폭이 거의 20㎞에 달한다. 지구는 매끈한 타원체일 수 없으며 아무리 지구 형태에 가까운 완벽한 타원체 모델을 만든다고 해도 인간의 경험을 기술하기에는 너무 큰 척도다. 그렇다면 어떤 모델이 울퉁불퉁한 지구를 기술하기에 더 적절할까?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의 모습은 푸르다. 그 이유는 지표의 70%가 바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해수면이야말로 지구의 모양에 가깝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이 생각을 발전시켜 대륙을 지우고 지표 전체가 바다, 즉 물로 덮여 있다고 가정했을 때 나타나는 지구의 모양이 바로 ‘지오이드’다. 타원체는 매끈한 반면 지오이드의 모양은 지구 내부의 밀도 변화를 반영하기 때문에 울퉁불퉁하며 지구의 실제 모양에 더 가까워진다.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해발 고도’의 기준면이 바로 지오이드다. 저 에베레스트산의 높이도, 챌린저 해연의 깊이도 모두 지오이드를 기준으로 측정한 것이다. 지오이드는 우리가 자주 활용하는 지도의 근저에 깔려 있는 모델인 셈이니 우리의 일상생활에 깊게 들어와 있는 모델인 것이다.

극지연구소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