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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지식카페 게재 일자 : 2020년 05월 25일(月)
神·영웅에 식상한 청중… 뒤틀기·슬랩스틱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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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 프랑수아 르가르의 코메디아델라르테 ‘분명한 상속자’를 2018년 필라델피아 랜턴시어터에서 현대 공연으로 재연한 모습을 그린 그림.

김학민의 오페라 문화사 - ⑨ 코믹 오페라의 탄생

■ 예술 미학

17~18세기 伊 정식 오페라 막간에 ‘하인들의 코믹 에피소드’ 공연서 시작… 인기 높아지며 장르로 발전
가면 뒤 가리워진 지배계급에 대한 조롱과 풍자… 특권층의 전유물 오페라 서민들도 향유


오페라는 궁정 오페라에서 시작된 태생의 고상함 때문에 심각한 경우가 많지만, 재미있고 가벼운 ‘코믹’ 오페라의 자취도 무시할 수 없다. 철없던 천재 작곡가 모차르트는 인생의 쓰디쓴 맛을 본 후 죽기 전 5년에 걸쳐 세 편의 희가극(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여자는 다 그래)과 ‘마술피리’로 오페라사에 위대한 흔적을 남겼다. 그의 희가극은 비극 오페라보다 더 심오하고, 그의 삶보다도 더 성숙했다. 한편 베르디는 54년 동안 젊은 시절 한 편을 제외하고 모두 심각한 오페라만 쓴 끝에 희가극 ‘팔스타프’로 치열했던 삶의 발자국을 마무리했다. 평생을 낭만적 격정과 여성 편력으로 치달았던 푸치니도 만년의 희가극 ‘잔니 스키키’에서만큼은 세상살이의 지혜와 인간 내면에 대한 성찰이 엿보인다.

가벼움과 심오함이 함께하는 매력적인 코믹 오페라의 역사는 초창기 오페라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코믹 오페라는 처음에는 진지한 오페라의 주변을 맴돌며 미약하게 시작했다. 바로크 시절 코믹 오페라는 아직 전격 오페라로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에 유명 가수나 화려한 무대 장치의 호사를 누릴 형편이 못 됐다. 호사스러운 대형 오페라 하우스가 아닌 소규모 극장에서 공연됐고 시장 바닥에서 공연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신과 영웅 일색의 진지한 오페라에 식상한 청중은 차츰 코믹 오페라의 진가를 알게 됐고, 자연스레 진지한 오페라의 존재마저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오페라 부파의 기원

이탈리아에서 코믹 오페라는 오페라 부파(우스꽝스러운 오페라)라 불렸다. 넓은 의미에서 오페라 부파의 역사는 몬테베르디가 ‘포페아의 대관’을 작곡하던 17세기 중반, 코믹 장면과 진지한 장면을 마구 뒤섞어 만든 베네치아 오페라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이후 18세기 전반 제노바, 나폴리 등지에서는 비극과 희극의 혼합 현상이 심화하자, 메타스타시오(1698∼1782)와 같은 궁중의 ‘진지한’ 오페라 작가들이 코믹 장면에 메스를 가하기 시작했다. 고상한 인물의 행위에 통일성을 기하고 오페라의 품격을 유지하기 위해, 서브플롯에 해당하는 하인들의 코믹 에피소드 장면들을 제거한 것이다.

하지만 청중의 줄기찬 요구로 극장 측은 제거한 코믹 장면들을 다시 모아 공연해야만 했다. 정식 오페라의 막간에 공연됐다 해서 ‘인테르메조’(막간극)라 부른 이 코믹 공연은 3막으로 된 정식 공연의 중간, 즉 1막 끝과 2막 끝(때로는 3막 끝도 포함)에 이뤄졌고, 정식 공연의 다음 무대를 준비해야 했기에 무대 세트 앞에 막을 치고 거행됐다. 인테르메조의 최초 기록은 1706년 베네치아의 산 안젤로 극장으로, 이후 산 카시아노 등 북부 이탈리아의 도시들과 로마 등지로 급속도로 번져나갔다. (Parker, 1996, 58∼59) 인테르메조는 함께 공연된 정식 오페라보다 더 인기가 높았고,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레 본 공연과는 별도로 독립되면서 본격적인 오페라 부파가 생겨났다.

▲  코메디아델라르테 공연단의 마을 순회공연 모습(1640년, 플랜더스 화가 장 미엘(Jan Miel) 그림).

◇우스꽝스러움과 통속성

오페라 부파의 토양에는 서민 연극의 통속적인 전통이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오페라 부파의 선조 격에 해당하는 옛 ‘코메디아델라르테’가 그랬듯, 오페라 부파의 매력은 우스꽝스러운 인물들의 법석과 모략을 통한 이야기 뒤틀기와 슬랩스틱(‘라찌’)의 재미에 있었다. 특히 초기의 오페라 부파는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와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처럼 후대에 만들어진 세련되고 정화된 오페라 부파보다 훨씬 더 거칠었다. “가면의 즉흥성과 음탕함, 우스꽝스러움”이라는 오페라 부파의 매력(Mordden, 55)은 다른 지방 사람들이 알아듣기 힘들 정도의 심한 사투리로 이뤄진 통통 튀는 노랫말과 나이 든 귀족남을 조롱하기 위한 ‘패터 수법’(말처럼 빨리 노래하기), 익살스러운 가면 연기 등으로 더욱 강화됐다.

수십 명의 등장인물로 된 진지한 오페라와 달리, 오페라 부파의 등장인물은 적게는 2명에서 많게는 7명까지 작은 규모였다. 작품마다 인물들의 이름과 사연은 달랐으나, 오페라 부파에 나오는 대부분 인물은 코메디아델라르테 스톡 캐릭터(정형화된 인물)의 변형이었다. 나이 든 귀족남은 판탈로네에 해당했고, 어린 하녀는 콜롬비나, 똘똘한 하인은 아를레키노(혹은 피에로, 풀치넬라)였으며, 사랑에 빠진 귀족 여인은 이나모라티, 허영심많은 늙은이는 도토레에 해당했다. 가령 모차르트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에 나오는 하인 피가로는 아를레키노고, 하녀 수잔나는 콜롬비나며, 백작 부인은 이나모라티, 백작은 판탈로네, 의사 바르톨로는 도토레다.

◇하녀와 주인

오페라 부파의 진정한 매력은 스톡 캐릭터의 가면 뒤에 가려진 지배계급에 대한 조롱과 세태를 풍자하는 정신에 있었다. 특히 우둔하고 추한 귀족 남자와 영리하고 매력적인 젊은 하녀, 그녀가 사랑하는 젊고 똘똘한 하인 등이 펼치는 변장과 계략의 드라마는 오페라 부파의 참된 매력이었다. 초기 예인 알레산드로 스트라델라(1639∼1682)의 ‘트레스폴로 선생’(1679)은 남자 선생을 사랑하는 여제자와 그녀를 사랑하는 두 형제, 남자 선생이 사랑하는 하녀 사이에서 벌어지는 엎치락뒤치락 사랑 이야기로, 궁중 이데올로기를 대변하던 바로크 오페라에 귀족과 하인의 대립 테마를 도입해 계급 갈등의 이슈라고 하는 오페라 부파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이후 전 유럽에 유행한 ‘마님이 된 하녀’(1733)는 예치 태생인 조반니 바티스타 페르골레시(1710∼1736)의 작품으로, 1시간 분량의 짤막한 길이에 등장인물도 말 없는 역을 포함해 3명밖에 안 되지만, 궁중 세계와 시민 세계의 대립이라고 하는 희극 오페라의 전형을 제공했다.

이 오페라는 꾀 많은 하녀가 독신주의 귀족 남자를 마음대로 주무른 끝에 안방마님이 된다는 코믹한 내용으로 조심스럽게 계급의 이슈를 다룬다. 귀족 남자인 우베르토(베이스)는 하녀 세르피나(소프라노)가 아침 식사로 초콜릿을 가져다주지 않아 잔뜩 화가 나 있다. “딸처럼 키워줬더니 마님 행세를 한다”고 주인이 불평을 터트리자, 하녀는 미안해하기는커녕 되레 주인에게 “외출을 금지한다”고 명령한다. 주인과 하녀 사이에 한바탕 말다툼이 벌어진 끝에 주인은 말 없는 하인 베스포네에게 결혼할 여인을 찾으라 명령하며 세르피나를 쫓아낼 수 있음에 쾌재를 부른다(1막). 하지만 하녀는 주인의 머리 위에 앉아 있다. 그녀는 하인을 매수해 주인에게 거액의 지참금을 요구하게 하고, 결국 “지참금을 내든지 아니면 저 여자(세르피나)와 결혼하라”는 협박에 굴복한 주인은 하녀와 결혼하기로 한다. 끝에 모든 것이 속임수였음이 밝혀지지만 주인은 하녀를 진정으로 사랑해왔음을 깨달으며 기꺼운 마음으로 하녀를 아내로 맞는다(2막).

신분 상승과 계급 간 갈등의 이슈는 이후 오페라 부파에도 계속된다. 베네치아 태생의 극작가이자 대본작가였던 카를로 골도니(1707∼1793)가 작곡가 니콜로 피치니(1728∼1800)와 함께한 ‘착한 하녀’(1760)와 후속작 ‘결혼한 착한 하녀’(1761)는 영국 작가 새뮤얼 리처드슨의 인기 소설 ‘파멜라’(1740)의 1부와 2부를 각기 원작으로 한 것이다. 후작(콘칠리아)과 하녀(체키나)의 신분을 초월한 사랑 이야기에 하녀를 사랑하는 가난한 남자(멘고토)와 그녀를 시기하는 다른 두 하녀(산드리나, 파오루치아) 등에 의한 갈등의 사연이 얽힌다.

‘착한 하녀’의 선풍적 인기(1766, 런던 킹스 시어터, 코벤트가든)로 런던에는 하녀 여주인공의 이름을 딴 드레스(‘라 체키나’)가 유행했다. 그 덕분에 6년 후 마리 앙투아네트에 의해 파리에 초대된 작곡가 피치니는 프랑스 오페라의 거장 륄리가 작곡했던 ‘롤랑’과 ‘아티스’의 개작을 맡아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왕립 파리 오페라단(팔레 루아얄 극장)에서 공연을 올리는 영예를 누렸다. (Hogarth, 1838)

같은 골도니의 대본(1764, 페릴로 작곡)에 12세 된 어린 모차르트가 곡을 붙인 ‘순진한 척하는 여인’(1769, 잘츠부르크 초연)은 대령의 부하(시모네)와 하녀(니네타)의 사랑 이야기에 여혐(여자혐오) 성향의 백작(카산드로)과 남동생(폴리도로)에 대한 귀족녀(로지나)의 유혹 작전이 코믹하게 얽힌다.

▲  ‘마님이 된 하녀’에 나오는 하녀 세르피나와 귀족 남자 우베르토의 장면(2008년, 베네치아 말리브란 극장-소냐 욘체바, 푸리오 자나시).

◇청중의 변화와 사회적 맥락

오페라 부파는 이탈리아 지역에 따라 청중 층이 달랐다. 농업 경제가 중심이었던 남부 이탈리아에서는 귀족 계급의 청중이 주된 고객으로 하인·하녀의 익살을 초연하게 즐겼으나, 북부 이탈리아는 오스트리아의 지배 아래 상공업이 발달한 덕분에 중산층 청중의 후원이 큰 몫을 차지했다. 중산층 사람들은 귀족들보다 무대 위에 등장한 하인·하녀의 사연에 더 공감할 수 있었다. (Parker, 1996, 58)

오페라 부파는 진지한 오페라와 가수 층이 달랐다. 진지한 오페라의 가수들이 시즌별로 계약해 오페라 하우스들을 옮겨 다녔던 데 비해, 오페라 부파 가수들은 한 오페라단에 속해 있는 경우가 많았다. 노래보다 연기력이 뛰어난 가수들은 오페라 부파를 택했다. 이야기가 복잡할 뿐 아니라 여럿이 함께 노래 부르며 연기도 해야 하는 앙상블 노래 때문에 탁월한 연기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Parker, 1996, 57)

대본작가도 가수처럼 오페라 부파 혹은 진지한 오페라 중 하나를 특화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작곡가들은 진지한 오페라와 희가극 사이를 자유롭게 이동했다. 나폴리음악원을 졸업한 젊은 작곡가는 이 도시의 작은 극장들에 속한 코믹 오페라단에서 일정 기간 숙련기를 거치면서 큰 오페라 하우스에서 진지한 오페라의 위촉받을 날을 기다렸다. 시즌공연의 방식도 오페라 부파는 진지한 오페라의 경우와 달랐다. 이탈리아는 가톨릭 국가였기 때문에 사순절 기간에는 공연할 수 없었으나, 오페라 부파만큼은 사순절에도 공연이 허용됐고 귀족 청중에 의존하지 않았기에 귀족이 시골로 내려가야 하는 여름 농번기 기간에도 공연할 수 있었다. (Parker, 1996, 57∼8)

초기 오페라 부파의 발전 과정으로 본 희가극의 역사는 특권층의 전유물인 오페라의 향유층이 아래 계층으로 확대돼가는 사회적 변화 과정의 역사다. 왕과 귀족들이 꿈꾸던 질서정연한 유토피아적 세계에 머물렀던 오페라는 세상을 함께 사는 다양한 계층을 포괄하는 오페라로 변해감으로써, 곧이어 역사의 페이지에 등장할 모차르트 희가극의 심오한 예술 세계를 예견해준다.

경희대 연극영화학과 교수


■ 용어설명

코메디아델라르테 : 1570년경 베네치아의 카니발 축제에서 유래한 이탈리아의 코믹 연극. 정식 대본 없이 대강의 줄거리를 토대로 한 즉흥극의 성격이 강했고, 가면을 쓴 스톡 캐릭터들이 우스꽝스러운 슬랩스틱으로 사람들을 웃겼다.

카를로 골도니 : 오페라 부파의 개혁으로 모차르트의 성숙한 코믹 오페라를 예견한 대가였다. 그의 오페라 부파는 지나친 도덕성과 계급 갈등의 화해를 강조하다 보니 “코메디아델라르테의 즉흥성과 음탕함, 우스꽝스러움의 맛을 희석시킨 중산층적 발상”이라 비판받기도 하지만(Mordden, 55), 슬랩스틱에 의존하던 오페라 부파에 인간적 느낌을 부여하고, 정형화된 스톡 캐릭터를 코믹 역(‘파르티 부페’), 진지한 역(‘파르티 세리에’), 중간 성격의 역(‘파르티 디 메조 카라테레’)으로 구분해 살아 숨 쉬는 인물로 발전시켰다는 것이 중론이다. (Parker,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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