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습니다>손주가 내민 카메라 앞에서 희미하게 웃던 엄마…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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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군자(1941∼2015)

그리운 엄마. 누군가 세월이 유수와 같다고 했던가요. 초록이 무르익고 철쭉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오월. 오랜 투병생활로 지쳤던 당신. 손주가 내민 카메라 앞에서 희미하게 웃음 띠며 찍힌 엄마의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엄마, 보고 싶습니다. 저 흰 구름 속으로 떠나신 지 어언 5년의 세월이 흘렀네요. 제가 어릴 적 엄마는 외항선을 타는 아버지가 부재했던 공간을 채우기 위해 남다른 억척스러움을 가지셨고, 또 음식 솜씨와 말주변이 좋았으며 노래 잘 부르시고 춤까지 잘 추셨던 멋쟁이 엄마였지요.

겉보기엔 활달하셨지만 외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친정 동생들 뒷바라지하느라 정식교육을 받지 못했기에 엄마의 글씨는 엉성하고 맞춤법에 맞지 않아 남들 앞에 내보이는 것이 창피하다고 말씀하셨지요. 그래서 타국에 있는 아버지에게 보고픈 그리움을 전할 때엔 엄마는 으레 절 앉혀놓고 그 마음을 말로 불러주곤 했어요. 편지의 처음은 늘 “보고 싶은 남편에게, 우리는 잘 있어요”, 마지막은 “할 말은 태산 같지만 만나서 합시다”였습니다. 이역만리 떨어진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손수 전하지 못해 저의 손을 빌리려고 하니 얼마나 갑갑하고 한스러웠겠어요.

엄마는 또 아버지가 그리우면 넋두리처럼 남진의 ‘가슴 아프게’를 혼자 주문처럼 부르시곤 했습니다. “당신과 나 사이에 저 바다가 없었다면 쓰라린 이별만은 없었을 것을…….”

엄마, 정말 보고 싶어요. 아버지와의 젊은 날의 사랑을 오랜 이별로서 감내한 엄마가 대소변을 조절하지 못하고 의식을 잃어 응급실을 밤낮으로 다닐 때에는 엄마의 고통보다 제 생활이 더 힘들어 엄마에게 화와 짜증을 많이 내곤 했어요.

생각하고 싶지는 않은 순간이지만 돌아가시던 그 날이 떠오르네요. 삶에 대한 끈을 놓지 못하는 엄마는 “나는 죽고 싶지 않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데 살 만하니까 내가 왜 죽어야 하느냐”며 우시는데, 저는 위로는커녕 되레 “엄마만 죽는 것이 아니지 않으냐, 모든 사람이 다들 태어나고 죽는 것인데”라며 무심코 말했었죠. 제 말에 엄마는 마치 마법에서 풀린 사람처럼 안색이 하얗게 되며 풀죽은 모습으로, “그렇지. 미장원 엄마도 죽었고 옆집 상기 할미도 죽었지”라고 하시더니 이내 의식이 떨어지고 이틀 만에 돌아가셨지요. 제 인생에서 가장 후회가 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엄마, 정말 죄송해요. 이제는 엄마와의 모든 기억이 제 인생의 과거형이 돼 버렸지만 먼 훗날 엄마를 다시 만나는 날이 오면 엄마 손 잡고 용서를 빌게요. 철부지였던 엄마 딸도 세월을 피해가지 못해 이마에 주름이 잡히고 그 딸의 자식 또한 장성해 가정을 이룰 정도의 나이가 됐어요. 엄마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던, “할 말은 태산 같으나 만나서 합시다”라는 그 말을 떠올리며 젊은 날의 엄마 인생이 어떠했는지 다시 생각해 봅니다. 배군자 씨, 당신의 딸로 태어나게 해줘서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딸 연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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