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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고전의 향기 게재 일자 : 2020년 06월 09일(火)
역경 뚫고 피어난 선율… 2020년을 어루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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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토벤 250th(1770~1827)

탄생 250주년… 국내 음악축제도 잇따라

뮤지컬·드라마 삽입곡까지… 문화계 ‘베토벤 붐’
유튜브 등 SNS채널 관련 영상 물결…책·기념와인도
“청각 장애 이기고 수많은 걸작 남겨
앞이 안 보이는 상황서 앞을 보는 지혜를 찾아야”


- 최은규 평론가가 권하는 베토벤 명반 3

1. 베토벤 - 바이올린 소나타 9번 A장조 op.47 ‘크로이처’(바이올린 = 오귀스탱 뒤메이/피아노 = 마리아 주앙 피레스. 도이치 그라모폰)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대적하며 싸움을 벌이듯 연주되는 크로이처 소나타는 2중주 소나타의 모범. 뒤메이의 바이올린은 날카롭고 힘찬 반면, 피레스의 피아노는 부드럽게 흐르듯 달콤해 성격다른 남녀가 조화를 이루는 것 같다.

2. 베토벤 -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op.61(바이올린 = 레오니다스 카바코스/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소니)

바이올리니스트 사이에선 모든 바이올린 협주곡을 다 연주해본 후 가장 마지막에 연주하는, 어려운 곡으로 꼽힌다. 그리스 바이올리니스트 카바코스는 군더더기 없는 바이올린 음의 정수를 선보인다. 그의 독특한 카덴차는 감흥을 배가한다.

3. 베토벤 - 피아노 협주곡 3번 c단조 op.37(피아노 = 루돌프 부흐빈더/빈필하모니관현악단. 소니)

간결한 주제와 철저한 주제 전개 방식이 돋보이는 피아노 협주곡으로, 베토벤의 개성이 드러나기 시작한 작품. 론도 형식의 3악장 중간에 푸가가 들어가는 형식은 후에 브람스가 모방할 정도로 빈틈없는 구성을 보여준다. 부흐빈더는 묵직하고 꽉 찬 음색으로 베토벤이 환생한 듯한 연주를 선보인다.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기리는 국내 음악축제들이 여름에 잇따라 열린다. 전국 각지의 크고 작은 연주회장에서 베토벤 음악을 주제로 한 콘서트도 활발해지고 있다. 올해 감염병 사태로 베토벤 관련 행사도 위축될 수밖에 없었으나, 7월과 8월 여름을 바라보며 베토벤 붐이 서서히 일어나고 있다. 온갖 역경을 이기며 작품을 완성했던 베토벤의 삶이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현재 상황에 주는 메시지가 크다는 의미도 부각되고 있다.

평창대관령음악제 예술감독인 손열음 피아니스트는 “올해 각지에서 베토벤 음악이 울려 퍼질 줄만 알았지 이렇게 우리 삶에서 공연이 사라지는 한 해가 되리라고 누구도 예상 못했을 것”이라며 “베토벤의 삶과 음악 속에 담긴 ‘어려움’이라는 키워드를 전 인류가 공유하게 된 상황이 너무도 공교롭게 느껴진다”고 했다. 손 감독이 이끄는 평창대관령음악제는 내달 하순부터 8월 초까지 열릴 예정이다. 17회를 맞는 이 음악제는 올해 베토벤을 주제로 삼고 있다. 예년 같으면 연주 프로그램을 확정했을 시기이지만, 올해는 변동 상황이 워낙 많아서 개최 기간조차 계속 수정 작업을 하고 있다. 손 감독은 “몇 개월을 준비하면서 스태프들 모두가 지쳤지만, 베토벤이 삶을 통해 보여준 불굴의 정신이 큰 위로가 돼주었다”며 “베토벤 음악의 특징인 ‘역경을 딛고 일어나는 승리’가 우리 삶에도 찾아오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롯데문화재단은 세계 유명 음악축제들을 염두에 두고 올해 대형음악제 ‘클래식 레볼루션’을 시작하는데 그 첫 번째 주인공이 베토벤이다.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8월 17일부터 30일까지 ‘클래식 레볼루션 2000- 베토벤’을 연다. 독일 출신의 지휘자 겸 바이올리니스트 크리스토프 포펜이 예술감독을 맡아 8개의 교향악단과 5개의 실내악 팀이 참여하는 축제를 이끈다. 피아니스트 임동혁, 김기경, 임현정과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 첼리스트 문태극, 앙상블 에스메 콰르텟 등 정상급 연주자가 대거 참여한다. 테너 김승직, 소프라노 서선영 등의 노래도 들을 수 있다.

▲  독일 문호 괴테가 황족을 만나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데 음악가 베토벤이 뒷짐을 진 채 스쳐 지나가는 모습. 칼 롤링 그림

베토벤 선율은 연주회장에만 머물지 않는다. 오는 30일 막을 올리는 뮤지컬 ‘루드윅: 베토벤 더 피아노’는 청력을 잃고 사랑하는 사람마저 떠난 후에 고독 속에 남겨진 베토벤의 인간적 면모를 다룬다. 이범재, 이동연 등 피아니스트들이 극의 전개에 맞춰 베토벤의 명곡을 라이브로 들려준다.

현재 인기를 얻고 있는 드라마 ‘화양연화’ 속에서도 베토벤 소나타 17번이 연주됐다. ‘템페스트’란 이름을 지닌 이 곡은 폭풍우 같은 시련이 휩쓸고 간 다음에 남는 사랑을 암시하기 위한 상징으로 사용됐다.

유튜브 등 SNS 채널에서 ‘베토벤 250주년’을 치면 관련 연주 장면을 숱하게 만날 수 있다. 이른바 베덕(베토벤 덕후)들이 올린 동영상들은 유머러스하면서도 친근하게 베토벤 음악을 소개한다. 베토벤 250주년의 아우라는 와인 출시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국내 한 유통사는 베토벤 교향곡의 이름을 빌린 와인을 시판하며 라벨 하단의 QR코드를 휴대전화 사진기로 찍으면 음악이 흘러나오도록 했다.

음악전문가들은 이처럼 일상에서 베토벤을 만나는 것이 그의 삶에 근접한 경배라고 한다. 피아니스트 임현정 씨는 책 ‘당신에게 베토벤을 선물합니다’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극히 인간적인 삶을 산 베토벤은 단지 자신의 모든 경험을 위대한 소리의 과학을 통해 악보에 표현했을 뿐이다. 그러니 베토벤을 신격화해 거리감을 두고 그의 음악을 듣거나 연주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평등하다고 생각한 베토벤은 돈과 권력을 지닌 귀족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청각을 잃어간다는 걸 안 후에 목숨을 끊으려고 유서를 쓰는 나약한 면모도 있었으나, 음악을 통해 새로운 길을 열겠다는 의지로 다시 일어섰다.

순천만국제교향악축제 예술감독인 박평준 티엘아이 아트센터 관장은 “베토벤은 우리 한국인들의 삶에도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했다. 음악가에겐 사형 선고나 다름없는 청각 상실의 장애를 이겨내고 수많은 걸작을 탄생시킨 그의 생애가 절대빈곤을 이겨내고 경제 강국으로 도약한 한국인의 현대사와 닮아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각 분야에서 앞이 안 보이는 상황을 맞았지만, 그래도 앞을 보는 지혜를 찾아야 합니다. 그게 오늘의 우리에게 베토벤이 주는 메시지입니다.”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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