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오스카 와일드 우화, 49×35㎝, 종이에 채색.
■ (34) 파리를 열광시킨 오스카 와일드
아일랜드 더블린 출신의 작가지만
본국 떠난 뒤 런던·뉴욕·파리 등서 주목받아
미성년자 동성애 사건, 유럽사회 최대 이슈로
작품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처럼
쾌락속 쓸쓸하게 생애 마감
아일랜드 더블린의 문학박물관에 갔을 때 들었던 몇 가지 단상. 우선 세계문학의 수도답게 이 자그마한 전원풍의 나라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네 명씩이나 거느리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그에 반해 문학박물관의 전시형태는 다분히 구시대적이며 아날로그적이라는 데 다시 한 번 놀랐다. 우리가 그토록 목마르게 고대해 마지않던 노벨문학상이 이곳에서는 손에 잡히는 하나의 현실일 뿐이었다.
다른 하나는 오스카 와일드에 관한 것. 제임스 조이스나 사뮈엘 베케트 같은 작가들에 비해 어쩐지 서자취급을 받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뭐랄까, 고향에서 추방된 이교도처럼 와일드라는 이름은 그곳에서 겉돌고 있었다. 사실 그는 명문 트리니티 칼리지를 졸업한 데다 그 부친 또한 더블린대의 교수였으며 어머니는 시인으로 이름을 날렸으니 그 나라의 문학 적통을 이어받은 작가인 셈이었지만 조이스의 우레 같은 명성에 비하면 유독 그곳에서는 변방의 이름이었던 것이다.
무릇 예술가든 학자든 종교인이든 할 것 없이 고향에서 인정받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긴 하다. 모차르트도 유럽에서 명성이 뜨르르하게 퍼지자 사후 그의 고향에 기념관을 세우려는 시도들이 있었지만 그와 그 집안을 아는 고향 사람들의 반대에 부딪혀 결국 세워지지 못했을 정도였으니까.
어쨌거나 와일드라는 이름은 분명 아일랜드에 뿌리를 둔 것이 사실이었고 그 문학의 자양분이 바로 그 땅에서 올라온 것도 사실이었지만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한 대표적인 이름 가운데 하나였던 것이다. 그는 트리니티 칼리지 졸업 후 런던으로 와 옥스퍼드대에 입학했고 이미 재학 중 발표한 시(詩)로 ‘뉴디기트’라는 유명 문학상을 받았다. 어쩌면 와일드라는 이름이 제대로 평가받고 떠오르기 시작한 것은 고향 더블린을 떠나면서부터였을 것이다. 우리식으로 얘기하자면 역마살(驛馬煞)을 타고난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출향(出鄕)하면서부터 빛을 보기 시작했으니까 말이다.
서른 살도 되기 전인 당시에 이례적으로 뉴욕으로 건너간 그는 집필보다는 강연으로 유럽 문화 전통을 미국에 알림으로써 젊은 지성으로 주목받게 됐고 다시 파리로 와서는 여러 문인, 화가 등과 교류하면서 문화사교계에 그 이름이 알려지게 된다. 수려한 외모와 뛰어난 패션 감각의 덕도 봤을 것이다. 거기에다가 유려한 레토릭의 언변까지…. 서른다섯이 되던 해 저 유명한 장편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발표하게 되는데 이 작품으로 그는 문학적 성공과 함께 그 이름에 심각한 흠집을 내게 된다. 미남 청년 도리언이 마치 삶의 목표인 양 쾌락에 중독된 나날을 보내다가 스스로 파멸해 간다는 내용의 이 작품은 장차 진행될 작가의 삶에 대한 자전적 예표처럼 작용했던 것이다.
그는 파리에서 소설, 희곡, 시, 예술비평 등 전방위적 문필활동을 펼치면서 늘 열광하는 팬들 속에서 지냈지만 가슴속에는 심연 같은 공허와 알 수 없는 두려움, 그리고 허무주의가 자리 잡고 있었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이 출판되고 3년 후 고통과 환희, 절망과 쾌락이 뒤범벅된 시극 ‘살로메’를 불어로 발표했는데 역시 비상한 주목을 받으면서 런던에서도 출판된다. 그런데 이 생의 정점에서 마치 소설 속 도리언처럼 와일드도 스스로 파멸의 길을 가게 된다. 당시로는 충격적인 미성년자와의 동성연애 혐의로 기소돼 2년 동안을 교도소에 수감됐던 것. 이는 실로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를 선망하던 작가 지망생들은 비탄에 잠겼고 흠모하던 수많은 여성팬은 대경실색해 한숨을 쉬었으며 특히 청교도적 전통의 나라였던 그의 조국 아일랜드는 수치심에 분노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김병종 서울대 명예교수, 가천대 석좌교수
사실 기소되기 석 달 전에 발표했던 희곡 ‘정직함의 중요성’은 셰익스피어 이래 영어로 쓰인 최대의 걸작이라는 찬사를 들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성공의 정점에서 다른 누구에 의해서도 아닌 스스로 자신을 파멸시켜버린 것. 그야말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선언이라도 하듯 이 사건으로 그는 스스로를 침몰시켰다. 마치 가톨릭적 세계관에 입각한 문학의 도덕주의에 발길질을 하듯 일부러 도발한 듯한 느낌까지 주었던 것이다.
1897년 1월 어느 추운 날 출옥한 이후 틀어박혀 쓴 ‘옥중기’를 출간했지만 반응은 냉담했다. 결국 고향 더블린은 물론, 제2의 고향인 런던으로도 돌아가지 못한 채 그는 병든 몸을 이끌고 파리의 싸구려 호텔에 지친 몸을 누이게 된 것이다. 한때 그에게 열광했던 파리였지만 잠시만 밖으로 나가도 사람들은 그의 뒤통수에 대고 수군거렸으며 그 때문에 호텔 바깥으론 거의 나가지도 못할 정도였다. 그렇게 은둔하다가 재기를 꿈꾸었지만 결국 일어서지 못했다. 그는 생의 마지막에 이르러 벽지를 향해 ‘네가 끝이 나든지 내가 끝이 나든지 둘 중 하나는 끝이 나겠구나’라는 비탄과 자조의 소리를 유언처럼 내뱉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그 시신마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파리 교외의 공동묘지 페르라셰즈에 묻히게 된다.
서울대 명예교수, 가천대 석좌교수
■ 세관원 ‘신고물품’묻자… 와일드 “없다, 내 천재성 외엔”
오스카 와일드의 명언들
시인이자 극작가이며 소설가이자 문예평론가였던 오스카 와일드(1854∼1900)는 그 수려한 외모에 순발력 있는 지적 유머를 구사해 런던·파리·뉴욕 등 가는 곳마다 문화예술계의 주목받는 인물이 되곤 했다. 특히 수많은 여성 팬들이 늘 그의 주위를 에워싸곤 했다.
그는 본격적 작품 외에도 위트와 패러독스를 담은 아포리즘 같은 언어구사로도 정평이 났는데 예를 들면, 미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 “신고할 물건이 없느냐”는 세관원의 질문에 “없다. 나의 천재성 외에는”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작은 성실함은 위험한 것이며 과도한 성실함은 치명적이리만큼 위험하다’ ‘나는 늘 새 친구들에 대해 알고 싶으며 옛 친구들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다’ ‘쾌락을 굴복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먼저 그 쾌락에 굴복해 버리는 일이다’ ‘도덕적이거나, 비도덕적인 책이란 없다. 책은 잘 썼든 못 썼든 그 둘 중 하나일 뿐이다’ ‘나 자신의 일은 항상 지겨워 죽겠다. 나는 남의 일이 더 좋다’ ‘도덕은 그림과 같이 어딘가에 선을 긋는 일일 뿐이다’ ‘대중은 놀라우리만치 관대하다. 천재를 제외한 모든 것을 용서한다’ ‘이기주의란 내가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살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등등….
그가 떠나고 나서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그의 책을 접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그의 이 기발하고도 전복적 사고의 멘트들은 회자될 만큼 유명했다.
;){kind=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