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독재 닮아가는 자칭 민주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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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 워싱턴 특파원

백인 경찰에게 체포되는 과정에서 사망한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건 이후 미국에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장녀 이방카 백악관 선임보좌관을 둘러싸고 ‘표현의 자유’ 논쟁이 벌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5월 29일 트위터가 “약탈이 시작되면 총격이 시작된다”는 자신의 글에 경고 문구를 달자 “표현의 자유를 억압했다”며 반발했다. 이방카 보좌관은 7일 예정됐던 한 대학 가상 졸업식 영상 축사가 학생들 거부로 무산되자 “대학 캠퍼스는 표현의 자유를 수호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선뜻 이해하기 힘든 트럼프 대통령과 이방카 보좌관의 반발은 표현의 자유가 수정 헌법 1조에 규정된 중요한 국민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국민의 권리 중 하나인 표현의 자유를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의 대북 전단 비난에 청와대·정부 여당이 일제히 대북 전단 살포 금지법 추진으로 화답했기 때문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김 부부장 담화 후 “대북 전단은 백해무익한 행동”이라며 단호한 대응을 언급했고, 여당과 통일부는 대북 전단 살포 금지 법률안 제정을 예고했다. 헌법 21조 1항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는 조항에 반하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에 민감한 미국에서는 한국 정부에 대해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일이라는 강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뉴욕에 본부를 둔 인권재단(HRF)은 성명을 통해 “대북 전단 살포 금지법은 한국 내 탈북자들의 활동을 막고,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는 성명에서 “과거 인권 옹호자로서 한국의 권위주의 지도자들에게 표현의 자유를 요구했던 문재인 대통령이 자신의 원칙을 저버린 게 놀랍다”고 비판했다. 이 비판처럼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자신들을 군사 독재 정권과 싸워 민주화를 이뤄낸 세력이라고 지칭해왔다. 현재 헌법도 1987년 민주화 운동의 산물이다. 그런데 대북 정책에 매달려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민주주의 원칙을 무시하는 행동을 자행하고 나선 것이다. 대북 전단 살포를 막기 위해 군 병력 동원을 주장한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의 말은 자신들이 비판해온 군사 독재 정권 행태와 다르지 않다. 자신들의 정체성마저 내던질 정도로 북한에 저자세를 보인 셈이다.

정부와 여당은 북한의 비핵화 협상 거부와 잇단 도발에도 저자세로 일관해왔다. 4·15 총선 승리 이후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등 남북 경협 재개 목소리를 높이고, 5·24 제재 조치마저 실효성이 상실됐다고 선언했다. 자신들처럼 주민들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라며 민주주의 파괴를 부추기는 북한의 말에 호응하기까지 했다. 이러한 저자세 대북 정책이 가져온 성과는 ‘한국은 적(敵)’이라는 북한의 선언이다. 북한에 ‘한국은 협박하면 된다’는 인식을 심어준 결과다. 정부와 여당은 대북 정책의 목표를 북한과 적대 관계를 벗어나 한반도 평화를 이루는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이는 북한의 핵 포기를 전제로 하고 있다. 하지만 3년간의 저자세 대북정책은 단 하나의 핵무기도 해결하지 못하고 한국 무시와 한·미 동맹 균열이라는 상처만을 남겼다. 자칭 민주화 세력이 민주주의 원칙에 눈 감을 정도로 저자세로 임했던 대북 정책을 포기하지 않는 한 북한의 협박과 조롱은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