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사회주의 독재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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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우 논설고문

인천공항공사의 정규직 전환
사회 곳곳에 분란 불러일으켜
포퓰리즘 정치의 전형적 폐해

평등 구현엔 강제조치 불가피
저항세력 탄압 일상화 뒤따라
사회주의 독재가 필연적 귀결

사랑하노프라는 이름의 정치인이 권력을 잡자 인민 사랑을 과시하기 위해 3D 업종 중 하나인 탄광 광부들을 위로 방문했다. 그는 현장에서 광부들의 노고를 격려한 후 임금 인상을 위한 재정 지원과 해고 금지를 약속했다. 광부들은 성은(聖恩)에 감격했으나 불행히도 이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언론 보도가 나가자 전국의 환경미화원들이 도대체 ‘노고’의 잣대가 뭐냐며 들고일어났다. 지도자는 이들에게도 똑같은 인상을 약속했다. 그러면서 ‘실질적 자유’가 실현됐다고 선언했다. 며칠 후, 의사들이 코로나19 사태의 현장에서 애쓴 자신들이야말로 인민 사랑의 상징 아니냐며 지나치게 낮은 의료비 산정에 분통을 터뜨렸다. 파업 시위로 병·의원이 마비되자 당황한 사랑하노프는 의료비를 대폭 인상해주었다. 곧바로 약사들이 생명을 다루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왜 우리만 빼놓느냐며 정부의 특혜에 항의했다.

연쇄반응이 일어났다. 여기저기서 차별 철폐와 노동 해방을 외치는 각종 직능단체의 파업 시위로 나라 전체가 벌집 쑤신 듯했다. 불만이 나올 때마다 특혜로 때우다 보니 재정 적자가 폭증하기 시작했다. 재정으로는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다고 판단한 지도자는 근본적 해법으로 대중의 의식개조에 나섰다. 무엇보다 지도자의 권위와 신뢰 회복이 시급했다. 지도자는 무오류라는 확신을 심어주기 위해 ‘사랑하노프 어록’을 대량으로 찍어내 학교 교육과정에 포함시켰다. 정권의 통치방식에 의문을 제기할 만한 근현대사 사건들을 전부 자기들 입맛에 맞춰 재해석하고, 다른 주장에 대해서는 온갖 이름의 특별법으로 재갈을 물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신통한 효과가 없었다. 복종하지 않는 자들을 상호 비판의 무대에 올려봤지만, 오히려 불평불만의 판만 벌여준 셈이었다. 보다 효율적 수단이 필요했다. 역시 무력 탄압이 즉효라고 판단했다. 그러자 불온(?) 인민들이 지하로 잠적해 저항을 이어갔다. 사랑하노프는 불만 세력의 씨를 말리기 위해 비밀경찰을 창설, 감시와 처벌을 일상화했다. 이것이 평등 실현을 기치로 내건 사회주의 체제가 전체주의·독재로 가는 필연적 경로이고, 역사에서도 확인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사흘째이던 2017년 5월 12일 첫 외부 행사로 인천국제공항공사를 찾아 “임기 내에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0) 시대를 열겠다”고 약속했다.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그의 뜻대로 인천공항공사 협력업체 소속 보안검색요원 1902명이 최근 공사 직고용 형태로 정규직 전환됐다. 기존 정규직 1400명을 훨씬 웃도는 인원이다. 하지만 이게 웬일인가. 뜻하지 않은 곳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취업을 앞둔 청년들이다. 공무원 시험 준비생들의 인터넷 카페 회원들 사이에서는 “기회는 공정할 거라더니 엽관제 국가를 만들어버렸다”거나 “공채는 관심도 없으면서 (대통령이) 노량진 와서 컵밥은 왜 드셨나”는 비판이 쏟아졌다.

젊은이들만이 아니다. 분란은 인천공항공사 내외부로 확산되고 있다. 기존 정규직 직원들은 ‘과도한 무임승차’라며 반발했고, 정규직과 새 정규직, 그리고 자회사 소속으로 정규직이 된 직원들끼리 특혜와 박탈감을 둘러싸고 감정 대립 양상을 보였다. 당황했나? 청와대의 해명이 가관이었다. 이번 결정은 비정규직 대상자 전원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문 대통령이 인천공항을 방문한 당일 이전의 입사자에게만 자격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그러자 ‘최고 존엄의 현지시찰’이냐는 비아냥이 등장했다. 아니나 다를까, 대통령의 ‘인천공항 발언’ 이후 부산교통공사·분당서울대병원·국민건강보험공단·한국남동발전·한국도로공사·한국가스공사 등에서도 정규직을 둘러싸고 홍역을 겪는 중이다.

이대로 방치하다가는 대통령 권위와 신뢰가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벌써 국민의 입을 봉쇄하려는 조짐이 눈에 띈다. 대학에서 문 대통령을 풍자한 대자보를 붙인 한 취업준비생이 법원으로부터 유죄 판결을 받았다. 대학 측이 문제없다는 데도 검·경과 법원이 합세해 권력 비판과 표현의 자유에 재갈을 물린 것이다. 대통령에 대한 불온한 비판은 엄두도 내지 말라는 암묵적 경고인 셈이다. 필자는 최근의 ‘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와 ‘대통령 풍자 대자보 처벌’을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문 대통령의 얼굴에 인민의 따뜻한 지도자 사랑하노프의 이미지가 겹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