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자의 클래식>상남자의 품처럼 푸근한 사운드… 고독한 사람에 건네는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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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작곡가 브람스

바흐·베토벤과 ‘독일의 3B’
카리스마보다 친근한 이미지
추상적 표현 대신 상상력 중시
고전주의 뿌리 둔 낭만주의자

클래식 음악사 중 가장 위대한 독일 작곡가 셋을 꼽으라면 단연 바흐(Bach), 베토벤(Beethoven), 브람스(Brahms)다. 이 세 사람을 일컬어 이른바 ‘독일의 3B’라고 부른다. 이름의 앞글자를 땄다. 하지만 세 사람의 이미지는 제각각이다. 평생을 종교 음악에 헌신한 바흐는 ‘음악의 아버지’란 별명처럼 근엄하고, 악성 베토벤은 그의 교향곡처럼 초월적이고 직설적이다. 브람스의 이미지는 ‘고전적 낭만주의자’라는 수식어처럼 푸근하고 인간적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유독 친근한 브람스에게만 장난 섞인 별명처럼 또 다른 3B를 붙여주었다. 브람스의 3B는 바르트(Bard·수염), 비어(Bier·맥주), 바우흐(Bauch·배)다. 그의 초상화에서처럼 무심한 듯 덥수룩하게 기른 수염과 뱃살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을 것 같은 애주가의 모습에 딱 어울리는 별명이다. 이런 전형적인 중년 아재의 모습은 바흐의 성스러움이나 베토벤의 범접하기 어려운 카리스마보다 훨씬 친근하게 느껴진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자신의 덥수룩한 수염이 나름 멋지다며 자부했을 것 같고, 불룩 나온 술배를 ‘이건 인격이야’ 하며 너스레를 떨었을 것만 같다. 그리고 무뚝뚝해 보이는 얼굴 표정엔 포장된 의지나 환희가 아닌 애수보다 더 짙은 고독함이 배어 있다. 그의 음악이 멜랑콜리(우울)해서인지, 쓸쓸한 초상화의 이미지 때문인지 마음이 어수선하거나 고독감이 느껴질 때면 브람스가 생각난다. 힘들고 외롭지만 타인의 충고 따위가 거추장스러운 그런 순간엔 바흐의 설교도 베토벤의 꾸지람도 무용지물이다. 이성으로 꽁꽁 싸맨 브람스의 사운드는 연륜 있는 상남자의 품처럼 푸근하다. 요란스럽게 공감하지도 않고, 괜찮다며 함께 울어주지도 않는다. 가만히 들어주며 차분히 정제된 언어와 충만한 사운드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는 고독을 아는 자만이 줄 수 있는 공감이자 위로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안우성 클래식 월담 대표

브람스가 살았던 낭만주의 시대 예술가들은 그동안 갇혀 있던 고전주의 형식의 틀을 깨고 자신의 정서와 직관에 따라 구체적으로 작품을 표현했다. 낭만주의 예술가에게 중요한 것은 추상적 표현이나 형식에서 오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자신의 자유로운 상상력이었다. 하지만 브람스는 달랐다. 고전주의 음악에 자신의 뿌리를 굳게 내리고 그 안에서 낭만의 서정을 담아낸 작곡가다. 브람스의 음악은 맥주와도 같다. 탄산을 쏘아 올리며 유려한 라인의 글라스로 사람들의 눈과 귀를 끌어당기는 샴페인과는 대조되는 것이다. 동시대 다른 작곡가들이 표제 음악(Program music : 제목에서 음악의 내용을 암시하며 구체적·추상적으로 묘사하는 음악)이라는 기치 아래 요란한 제목을 내세우며 이목을 끌었을 때도 브람스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스스로 자기가 이상으로 삼는 음악을 향해 순수 음악(Absolute music : 문학·미술과 연관성을 갖지 않고 음의 조합에 의한 예술성만으로 작곡한 음악)에 전념했다.

안우성 클래식 월담 대표

오늘의 추천곡 : ‘클라리넷 오중주’

브람스의 ‘클라리넷 오중주’는 그가 말년에 작곡한 작품이다. 1890년 57세의 브람스는 자신의 현악 오중주 2번 작품, 111(String Quintet No.2 op.111)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결심한다. 자신의 창작력에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듬해인 1891년 마이닝엔 궁을 방문한 브람스는 우연히 당대 클라리넷의 비르투오소인 뮐펠트의 연주를 듣게 된다. 그는 우수에 젖은 클라리넷의 음색에 매료돼 잃었던 창작의 열정을 되찾는다. ‘클라리넷 오중주’는 브람스 말년의 작품답게 짙은 애수와 고독 속에 젊은 날의 초상과 회한이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