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습니다>홀로 된 시아버지 모시고, 암투병 남편 수발하고, 두 아들 키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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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박경숙에게

우리 집은 구순이 넘은 아버지를 모시고 있다. 설령 부모가 계시더라도 함께 사는 가정은 요즘 거의 볼 수 없다. 그런데도 아내는 30년 가까이 홀로 된 시아버지를 조석으로 챙기고 있다. 아버지는 보청기를 해도 귀가 어둡다. 눈도 갑자기 나빠졌다. 그렇게 정정해도 하루하루 쇠잔해지는 얼굴이 안쓰럽다. 가족들과의 대화는 자연 불편해지고 당신께서도 무척 힘들어하신다. 이럴수록 점차 내 역할이 늘어났다. 아버지와 소소한 일상과 추억을 만들려고 애쓰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한들 종일 곁을 지키는 아내에 비하면 ‘시늉’에 불과하다.

지금으로부터 18년 전 나는 병원에 있었다. 위장에서 발병한 암은 대장과 폐로 전이된 상태였다. 말기 암 선고를 받았다. 직장을 그만두고 뭔가 새로 시작할 즈음 병을 얻고 말았다. 그게 ‘한계’라며 모든 것을 정리했다. 조만간 닥칠 죽음도 기다렸다. 그러나 6년 만에 나는 거짓말처럼 살아났다. 기적적으로 지금까지 버티고 있다. 이때도 늘 아내가 옆에 있었다. 낮에는 생계를 맡아 밥집을 운영하고 밤에는 내 병상을 지켰다. 투병하면서 최고의 ‘항암제’는 아내의 정성과 보살핌이었다.

아내는 내가 쓰러지면서 팔자에 없는 식당을 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만 남편으로서 죄지은 심정이었다. 병상에서 일어나 앙상한 몸으로 아내가 하는 식당 일을 잠시 거든 적이 있다. 식당 일이 험하기 때문이다. 일손이라도 덜까 했는데 역부족이었다. 나는 식당 일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직업이라 생각한다. 주변에 자영업으로 식당을 개업하는 이가 많은데 정말 말리고 싶다. 성공하지 못하면 생계는 고사하고 건강도 잃어버리는 것이다. 아내는 허리와 손목을 무리하게 써 10년 만에 식당을 포기했다.

두 아들의 오늘이 있기까지 지지하고 밀어준 것도 아내다. 애들은 그새 결혼할 나이가 됐다. 할아버지의 외로움을 이해하는지 잘 따른다. 자기 엄마를 끔찍이 여긴다. 내가 평소 소망하던 모습이다. 일찍이 홀로 된 시아버지를 지금까지 무탈하게 지켜준 것도, 병든 남편을 내치지 않고 끝까지 살려낸 것도, 애들을 기죽지 않게 반듯하게 키워낸 것도 아내가 아니라면 불가능했다.

그와 반대로 나는 내 몸 하나 건사하며 이기적으로 살아왔다. 그렇다고 여태 인내와 기다림으로 버틴 아내의 바람도 제대로 들어준 적 없다. 남편과 가장으로서 무능하고 솔직히 부끄럽다. 부모와 자식 등 가족 중에는 여러 ‘만남’이 있다. 이 중에서 누구보다 울타리가 돼 준 아내와의 만남은 내게 너무도 소중하다. 아내에게 평생 감사해도 부족하다. 미안할 뿐이다. 여보, 건강하시오!
못난 남편 이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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